경험부족 아쉬웠던 이상수, 그리고 정영식의 눈물

지난 밤사이 한국 남자탁구에 무슨 일이 있었나.

넘치는 자신감으로 리우에 입성했던 한국 남자대표팀 선수들이 지난밤 치러진 승부에서 차례로 패했다. 브라질 현지 시간으로 8일 오전부터 저녁 늦게까지 리우센트로 파빌리온 제3경기장에서 계속된 개인단식 3, 4라운드, 연이어 출전한 이상수(삼성생명·26), 정영식(미래에셋대우·24)이 아쉽게도 둘 다 패했다. 두 번의 패배는 그저 아쉽고 억울하게 넘겨버릴 수만은 없는 승부였다.
 

▲ (더핑퐁=안성호 기자) 남자탁구가 개인단식 일정을 모두 접었다. 잘 싸웠지만 아쉽게 패한 정영식이다.

간과했던 ‘경험의 무게’

먼저 출전한 한국의 남녀단식대표들이 모두 16강 진출을 확정한 가운데 마지막으로 32강전에 나선 이상수(세계16위)는 루마니아의 아드리안 크리산(세계90위)에게 풀-게임접전 끝에 역전패를 당했다. 70위 이상 차이나는 랭킹에서 보듯 애초에는 이상수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던 경기였다. 실제로도 경기는 전반적으로 이상수가 지배했다. ‘닥공’이라는 닉네임답게 시종일관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리드를 할 때도 당할 때도 대부분은 이상수의 공격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스코어 양상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대표팀 벤치가 간과한 게 있었다. 아드리안 크리산의 경험이었다. 36세로 이상수보다 열 살이나 많은 아드리안 크리산은 체력적인 문제로 최근 랭킹은 쳐졌지만 4년 전 런던올림픽 개인단식에서 이미 8강까지 진출했었던 강자다. 올림픽이라는 긴장되는 무대에서 강한 적수를 상대로 어떻게 경기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반면 올림픽에 첫 출전한 이상수는 자신의 뜻대로 랠리가 전개되지 않을 때마다 조급해지는 모습으로 게임을 망쳤다.

아드리안 크리산의 ‘관록’은 의표를 찌르는 서브와 리시브 등 결정적 승부처마다 빛을 발했고, 이상수는 선제를 잡고도 서두르다가 상대의 노련한 페이스에 말려들기를 반복했다. 일곱 게임을 벌이는 동안 듀스 접전만 네 번이었다. 장신에서 터져 나오는 높은 타점의 백핸드에 고전하며 마무리에 실패한 이상수는 게임스코어 3대 1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3대 4(11-9, 11-13, 11-5, 12-10, 10-12, 6-11, 11-13) 통한의 역전패를 허용하고 말았다. 올림픽에서 대세의 향방은 기술력의 우위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준 승부였다.
 

▲ 누워버린 아드리안 크리산. 경험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 승부였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정영식의 눈물

역시 패했지만 정영식은 이상수가 남긴 아쉬움을 해소할만한 선전을 펼쳤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치러진 정영식의 16강전 상대는 세계랭킹 1위로 현역 최강자인 마롱(중국). 처음부터 마롱의 압승이 점쳐지던 승부는 독하게 마음먹고 출전한 정영식의 패기 넘치는 플레이로 예상 밖 접전으로 전개됐다. 정영식은 장기였던 백핸드 연결력에 파워를 더해 마롱을 괴롭혔다. 마롱의 강점인 포어핸드 드라이브 코스도 정확하게 예측해내며 초반 랠리를 이끌어갔다. 경기 시작 전만 해도 정영식이 두 게임을 먼저 따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사실 정영식은 올해만 세 번이나 마롱과 싸웠다. 주요 오픈대회마다 항상 16강 길목에서 마롱을 만나 돌아섰다. 올해만 네 번째 승부였으니 오기에 찰만도 했다. 태릉에서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정영식은 시드배정 상 또 다시 16강에서 마롱을 만날 것을 예상했고, 내내 마롱의 플레이를 연구하며 대비해왔다고 밝혔다. 굳이 예상대로가 아니어도 좋았을 대진은 얄궂게도 ‘또’ 마롱과의 승부를 주선했고, 정영식은 준비해온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쏟아 부었다.

하지만 마롱은 마롱이었다. 중국탁구는 자신들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덤벼드는 상대에 대한 대응책을 경기 중에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고전은 하지만 여간해서는 패하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그것이 곧 ‘세계 최강’의 위용이다. 고전하던 마롱은 힘을 앞세워 정영식을 테이블에서 밀어냈다. 중진에서의 랠리전을 유도하며 정영식의 힘을 뺐고, 좌우코스를 가리지 않는 고집스런 포어핸드 드라이브로 득점을 쌓아갔다. 정영식의 저항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지만 결국 승자는 마롱이었다.

정영식으로서는 5, 6게임 연속된 듀스접전을 내준 것이 못내 아쉬웠다. 특히 마지막이 된 6게임에서는 게임포인트를 3점이나 먼저 잡고도 역전을 허용하며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정영식의 눈물에는 오랜 연구와 단련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패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 스며 있었을 것이다. 마롱과의 승부는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했지만 세계 최강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연구와 노력 외에도 필요한 뭔가가 있음을 알게 해준 한판이었다. 경기 중에도 강해지는 중국과 맞서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임기응변력도 필요하다. 일단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해준 정영식의 선전은 그런 면에서도 가치 있었다.
 

▲ (더핑퐁=안성호 기자) 아직 단체전이 남아있다. 단식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은 이상수의 활약이 필요하다.

아직 단체전이 있다!

이로써 한국 남자탁구는 이번 올림픽 개인단식 일정을 모두 접었다. 아직 16강전이 진행 중인 상황이므로 조금 일찍 끝낸 감이 있지만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12일부터 시작되는 단체전이 있기 때문이다. 단체전에는 베테랑 주세혁(삼성생명·36)이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몸을 풀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주세혁은 자신이 획득했던 개인단식 출전권을 후배 이상수에게 양보했었다. 그 이유에는 올림픽 경험이 없는 후배에게 먼저 치러지는 개인단식에서 분위기를 익히고 단체전에서 최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하려는 까닭도 있었다. 주세혁에게, 한국대표팀에게 단체전 메달은 그만큼 절실하다. 그리고 의도대로 후배들은 개인단식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새로 시작되는 단체전에서 우리 선수들이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을지 남다른 기대가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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