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딛고 거듭난 챔피언

인천아시안게임이 남긴 상처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 결과를 놓고 많은 탁구인들이 술렁였었다. 선발선수들의 면면에 대한 의심이라기보다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정영식의 탈락이 주된 이유였다. 성인대표팀에 발을 들여놓은 2010년 이후, ‘베테랑 3인방’이 나섰던 런던올림픽을 제외한 모든 국가대항전에서 한 번도 태극마크를 놓치지 않았던 선수. 아시안게임이 코앞이던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도 대표팀 주전으로 많은 경기를 뛰었고, 국내 실업랭킹은 줄곧 1위를 고수했던 선수. 바로 그 ‘정영식’이 다른 대회도 아닌 인천아시안게임의 대표팀 주전에서 밀린 것이다.
  정영식의 탈락은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는 스포츠의 진부한 진리를 확인시킨 일이었지만, ‘좌절’을 모르고 성장해왔던 정영식 개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유명 생활탁구 동호인인 아빠(정해철 씨다)의 권유로 다섯 살부터 라켓을 잡은 정영식은 학창시절에도 별다른 고비가 없었다. 탁구메카 부천에서 내동중-중원고로 이어지는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남자탁구 미래로 꾸준히 주목 받았던 ‘차세대 5인방’ 중 한 명으로 호프스, 카데트, 주니어 각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쳤다. 국가대표팀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고 안도한 순간 반납하고 만 태극마크는 이를테면, 정영식의 탁구인생에서 처음 겪은 ‘좌절’이었다.
  “자만하고 있었어요. 이전까지 선발전에서는 떨어져본 적이 없었고 무조건 될 거라고 마음을 놓았었죠. 게다가 선발전 직전에 이상하게 공이 잘 맞았어요. 잘 안 될 때도 선발됐었는데 플레이까지 잘 되면서 오히려 집중력을 잃었던 것 같아요. 초반에 패를 먹고 들어가면서 뒤늦게 긴장하다보니 오히려 기술도 안 나오고 결국 떨어졌죠.”
  첫 경험이나 다름없는 좌절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탈락 직후 정영식은 한 순간 목표를 상실한 채 훈련을 소홀히 했다. 집중력을 흐릴까봐 멀리했던 컴퓨터게임에도 손을 댔고, 알 수 없는 허기를 폭식으로 메우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좌절도 첫 경험이었지만 ‘연습벌레’로 정평이 나있던 정영식으로서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탈들도 모두 첫 경험이었다. 그러기를 한 달 가량, 눈에 띌 정도로 몸무게가 늘기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정영식이 그대로 주저앉은 것은 아니다. 짧은 방황을 끝내고 그는 곧 특유의 ‘성실한 선수’로 돌아왔다. 아시안게임에서는 아픔을 딛고 진심을 다해 대표팀을 응원했다. 컨디션을 회복한 뒤에는 아시안게임을 전후해 치러진 실업연맹전과 대통령기도 석권했다. 연말의 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절친 라이벌’ 김민석(KGC인삼공사)을 결승에서 꺾고 2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뜻밖의 아픔을 겪었지만 정영식은 여전히 한국 남자탁구 ‘챔피언’이다.
 

▲ (사진=안성호 기자) 정영식, 그는 여전히 한국탁구 챔피언이다.

강력해진 챔피언
  그런데 놓쳐선 안 될 것이 있다. 정영식이 달라졌다는 게 그거다. 정작 출전은 하지 못했지만 인천아시안게임 전의 정영식과 후의 정영식은 전혀 다른 선수다.
  이전까지 정영식은 ‘성실함의 대명사’였다. 훈련 중 탈진까지 할 정도로 누구보다 많이 연습했고, 실전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통했다. 하지만 그는 압도적인 경기는 보여주지 못하는 선수였다. 버텨내는 끈기는 무기였지만 결정력이 돋보인 적은 드물었다. 어렵게 끌고 가 이기는 패턴은 강자를 만나도 약자를 만나도 항상 비슷했다. 자주 승리했지만 강력한 인상으로는 각인되지 못했다. 줄곧 국내1위를 지키면서도 한국탁구 에이스로서는 완전한 신뢰를 받지 못했던 것도 국제무대에서 한계를 보이는 경기스타일 때문이었다. 국제무대 데뷔 후 정영식의 세계랭킹은 30위권 후반에서 60위권 사이에서 정체돼 있었다.
  그랬던 정영식이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시안게임 대표들이 출전하지 않은 실업연맹전에서 단복식과 단체전을 모두 우승하며 ‘몸을 푼’ 그는 작년 연말에 치러진 국내 최고 권위의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달라진 면모를 과시했다. ‘4대 3’ 승리의 단골이던 정영식의 스코어보드는 대부분 ‘4대 0’으로 찍혔다. 김민석과의 결승전도 마찬가지였다. 새해 들어 치러진 국가상비군 선발전에서도 정영식은 이길 경기는 확실하게 이기며 여유 있는 경기운영을 지속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 열심히만 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시안게임에 못 나가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실력이 좋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부족하다고 무조건 지는 것도 아니라는 거죠. 집착을 덜어냈다고 할까요? 전에도 열심히는 했지만 그건 그저 불안함을 스스로 잊기 위한 노력들이었던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부딪치면 어려운 상대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 물론 저도 언제든지 질 수 있으니 방심은 하지 말아야죠.”
  아시안게임 선발전 탈락 이후 정영식은 ‘덜’ 열심히 하던 바로 그 기간 훈련방법을 달리했다고 한다. 아마도 당장의 목표가 사라지면서 생긴 예정에 없던 여유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집착을 덜어낸, 아니 집착할 것이 사라진 정영식은 이전까지의 자신과는 다른 스타일의 스윙을 시험했다. 스윙스피드를 올려 포어핸드 타점을 앞으로 끌어냈다. 결정하는 탁구! 그로서는 확실히 ‘새로운’ 기술이었다. 애초부터 강점을 갖고 있던 백핸드도 어디가지 않았다. 거기에 결정력이 더해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정영식이 덜어낸 집착의 빈자리에 자연스럽게 스몄고, ‘달라진 정영식’의 디딤돌이 됐다. 인천아시안게임이 남긴 상처도 빠르게 치유됐다.
  긍정의 마인드는 다른 것이 아니다. 승패에 연연하며 끊임없이 버텨내던 정영식은 질 수도 있는 게 스포츠라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했다. 누구든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보다 과감해지는 길을 택했다. “내 실수를 줄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했는데 이제는 상대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보인다”고 말하는 정영식이다. 좌절의 두려움을 맹목적인 연습이라는 ‘자기최면’으로 감추던 정영식은 좌절의 첫 경험을 통해 그렇게 거듭났다.
 

▲ (사진=안성호 기자) 좌절을 여유로 승화시켰다. 한층 넉넉해진 정영식이다.

올림픽, 또 하나의 ‘첫 경험’ 되길
  지난 2월에 중동의 쿠웨이트와 카타르에서 ‘슈퍼시리즈’로 치러진 ITTF 월드투어에서 정영식은 두 대회 연속 개인단식 8강에 올랐다. 쿠웨이트에서는 월드투어 최다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삼소노프(벨로루시)와 김민석을 이기고, 현 세계1위 쉬신(중국)에게 졌다. 카타르에서는 유럽선수권자 드미트리 옵챠로프(독일)와 8강전에서 대등한 접전을 펼쳤다. 적극적으로 변모한 정영식의 플레이는 국제무대에서도 충분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국선수단 중 단연 최고의 성적으로 희망을 건져 올렸다.
  중동으로 가기 전 정영식은 “달라진 모습을 국제무대에서 시험해보고 싶다”고 했었다. 두 대회 모두 4강 이상은 달성 못했지만 올 시즌 출발로는 훌륭한 성과였다. 일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일수도 있으나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스스로 말한 ‘시험’에서도 어느 정도는 합격점을 받아낸 셈이다. 30위권 후반에 머물러있는 세계랭킹도 수직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랭킹 관리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에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상처는 인천아시안게임만으로 충분합니다. 선수생활 최고의 목표였던 올림픽에서만큼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아요. 출전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스스로 포기하는 일 만큼은 없을 겁니다. 일단은 최대한 많은 시합에 나가서 랭킹을 끌어올려야죠.”
  정영식은 올해 목표를 “세계랭킹 10위권 안쪽”이라고 말했다.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남자탁구의 에이스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포함해서 ‘5인방’으로 지목되던 선수들의 성장속도가 빠르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정영식은 “확실하게 치고 올라가 라이벌을 자극하는 선수가 없었다”는 데서 찾는다. “이제는 그 역할을 내가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림픽에는 한 나라에서 두 명에게만 단식 출전권이 주어진다. 지역예선에 참가할 두 명만 기회를 잡을 수 있는데, 예선 참가선수 선발기준은 아무래도 세계랭킹이 될 가능성이 높다. 2월 말 기준으로 정영식의 세계랭킹은 국내 선수들 중에서 네 번째에 해당한다. 중동 슈퍼시리즈가 반영될 3월 랭킹에서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내년 초 치러질 것으로 보이는 올림픽 아시아예선 출전선수 명단에 과연 ‘정영식’이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가 밝힌 올해 목표는 모두 달성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확실한 에이스’가 이끄는 한국 탁구의 경쟁력도 올라서 있을 것이다. 올림픽 출전은 정영식에게 또 하나의 ‘첫 경험’이다.
 

▲ (사진=안성호 기자) 정영식이 목표를 달성할 때 한국 탁구의 위력도 배가될 것이다.

달라지지 않았으되 달라진
  그런데 놓쳐선 안 될 것이 또 있다. 사실 정영식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그거다. “집착을 덜어냈다”고 말했지만, 다시 요즘 하는 고민이 뭐냐고 물으니 “더 덜어내야 하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영식은 여전히 모든 생각의 기준이 ‘탁구’다. 내면을 비워내는 정도 역시 탁구의 성취를 놓고 하는 고민이다. “이제는 쉬어야 할 때 쉴 줄 알게 됐다”고 말하지만, 다시 쉴 때 뭐하냐고 물으니 “탁구생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전히 정영식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탁구를 떠올리며, 탁구와 함께 보낸다.
  그러니 대표급 선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정영식의 변화는 ‘변화’ 그 자체보다 탁구계에 흔한 말로 ‘한 단계 올라섰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는 분명 달라지지 않았으되 달라졌다. 여전히 온통 탁구생각 뿐이되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탁구는 전에 비해 한층 폭넓고 넉넉해진 느낌이다. ‘이기고 있으면서도 쫓기듯 시합하던’ 정영식은 이제 없다. 이 ‘성실한 챔피언’이 심적인 여유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면 그 폭발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정영식은 엄밀히 말해 ‘천재형’의 선수는 아니었다. 재능만으로는 ‘차세대 5인방’ 중에서도 돋보이는 편이 아니었으나 오로지 노력으로 단점을 극복해왔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그럼에도 그는 실업 입단 이후 차세대 주역들 중에서 늘 선두에 서있었다. 그러니 ‘천재적인 노력’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적어도 이 시대 한국 탁구계에서는 정영식을 두고 할 수 있는 말이다. 지난해 뜻하지 않았던 좌절은 그처럼 남다른 ‘천재성’에 깊이를 더해준 사건이었다. 전과 다름없는 노력에 새롭게 눈 뜬 재능이 더해진다면 그 성취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누구보다 힘차게 새해를 시작하고 있는 정영식에게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도 그거다. 그가 스스로 밝힌 목표 “남자탁구의 확실한 에이스”를 성취할 수 있다면 한국탁구의 존재감도 다시 강력함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금년을 넘어 올림픽이 열리는 2016년에는, 또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좌절이 아닌 기쁨이 가득한 ‘첫 경험’들이 정영식의 탁구를 가득 채우기를 기원해본다. 물론 반짝이는 메달이 그 안에 있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가능하면 오래 선수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힘들던 시간에 질책보다는 격려와 배려로 힘을 준 팀에 그래서 더욱 큰 고마움을 느껴요. 덕분에 탁구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았습니다. 이 팀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실감을 다시 했었죠. 올림픽 출전으로 꼭 보답하고 싶습니다. 한국 남자탁구의 위기도 꼭 제 손으로 극복하고 싶습니다. 계속 응원해주십시오.”


  * 위 글은 [월간 탁구] 2015년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더 핑퐁]에서는 오프라인 독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일정 시간이 지난 시점에 매 월호 주요기사 한두 꼭지를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 정영식 선수는 2월의 활약이 반영된 3월 ITTF 세계랭킹에서 20위에 랭크됐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세계10위권 대에 진입하며 목표를 향해 한 발 더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3월에도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쑤저우 세계선수권대회 전 유일한 슈퍼시리즈였던 독일오픈에서는 2월 랭킹으로 시드를 배정한 까닭에 예선부터 경기를 치러야 했지만 까다로운 선수들을 모두 꺾고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복식에서는 김민석과 함께 중국의 최강조합 마롱-장지커 조를 꺾고 4강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정영식 선수는 태릉선수촌 승리관에서 쑤저우세계선수권대회를 대비한 훈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역시 많은 랭킹포인트가 걸려있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선전하고, 그를 바탕삼아 절실한 ‘첫 경험’들을 하나하나 달성해나가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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