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만의 탁구공 혁명! 플라스틱 볼 시대!

‘플라스틱 볼 시대’가 열렸다. 국제무대에서는 지난해 중반부터 모든 대회 공인구로 플라스틱 볼을 채택해왔고,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12월 17일에 치러진 제68회 종합탁구선수권대회부터 플라스틱 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탁구시장의 중심에 있던 셀룰로이드 볼은 지난 인천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더 이상 공식대회에서 볼 수 없게 됐다. 플라스틱 볼은 셀룰로이드 볼과 어떻게 다른가. 이 새로운 변화 앞에서 선수들은 적응을 위해 여전히 힘든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소재 변경의 이면과 함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플라스틱 볼’을 2회에 걸쳐 탐구해본다.
 

▲ 본격 유통을 시작한 플라스틱 볼은 각 브랜드마다 뚜렷한 구질 차이를 보이고 있다. 월간탁구DB(ⓒ안성호)

셀룰로이드와 플라스틱의 차이 : 규격의 변화

탁구공의 규격은 지름과 무게, 탄력성 등 기본적인 세 가지로 공인된다. 지름은 40mm, 무게는 2.7g이다. 탄력성은 ‘305mm 높이에서 자유낙하(중력 외에 힘을 가하지 않고 초속 제로에서 낙하)로 두께 20mm의 스틸 블록 위에 바운드시켰을 때 튀어 오르는 높이가 240mm에서 260mm 사이여야 할 것’으로 정해져 있다. 이와 같은 규격에서 셀룰로이드 볼과 플라스틱 볼은 기본적으로는 동일하지만 미세한 차이가 있다.

우선 지름이 통상 40mm로 알려져 있지만, 규격을 보다 엄밀하게 살피면 종전 셀룰로이드 볼은 ‘39.50mm에서 40.50mm 사이’였다. 40mm를 기준으로 ±0.5mm의 오차범위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게에 관한 규정을 같은 시각으로 보면 2.67~2.77g으로 역시 2.7g을 기준으로 최소한의 허용범위가 있었다. 플라스틱 볼은 이 지름 허용범위가 ‘40.00mm~40.60mm’로 변경됐다. 기준은 같지만 셀룰로이드 볼과 비교할 때 +0.6mm로 플라스틱 볼의 지름이 약간 커진 것이다. 실제로도 셀룰로이드 볼 제품들은 39.7mm 정도의 것이 많았던 것에 비해 최근 출시된 플라스틱 볼들을 측정한 결과 평균 40.2mm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플라스틱 볼의 지름이 셀룰로이드 볼보다 약 0.5mm 커진 셈이다.
 

 

종전 셀룰로이드 볼

현행 플라스틱 볼

지름

39.50mm~40.50mm

40.00mm~40.60mm

무게

2.67~2.77g

동일

탄력성

305mm 높이에서 두께 20mm의 스틸 블록 위에 자유낙하로 바운드시켰을 때 튀어 오르는 높이 240mm~260mm

동일

<표1> 탁구공의 국제규격

 

셀룰로이드와 플라스틱의 차이 : 스피드와 스핀의 저하

재질 차이와 관계없이 지름의 증가만을 놓고 계산하더라도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볼 지름의 제곱에 비례하는 회전 에너지에 있어서 크기가 0.5mm 커진 플라스틱 볼은 셀룰로이드 볼과 비교할 때 종전과 같은 회전을 거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2.5% 증가한다. 볼에 대한 공기저항 계수와 속도가 동일하다면 공기저항 역시 지름의 제곱에 비례하는데, 플라스틱 볼의 공기저항 역시 셀룰로이드 볼에 비해 2.5% 증가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볼 표면과 공기의 접촉, 즉 마찰에 영향을 받는 볼의 회전수는 반대로 2.5% 감소한다. 또한 러버 표면으로 볼을 쓸어 올려 회전을 걸 때 러버와 볼의 만나는 방향과 속도가 일정하다고 할 때 볼의 회전은 지름에 반비례한다. 이 경우 플라스틱 볼의 회전은 셀룰로이드 볼에 비해 1.2%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0.5mm라는 미세한 크기지만 탁구의 섬세한 특성을 감안할 때 선수들은 새로운 공에서 스피드와 스핀의 저하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위의 계산들은 재질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단순한 이론값이지만, 실제 타구에 대한 측정으로 그와 같은 이론을 증명한 자료도 있다. 일본의 세계적인 탁구용품사 (주)다마스버터플라이의 고문으로 있는 니시다 카오루 박사가 진행한 연구결과다. 니시다 박사는 ‘타구 직후’ ‘비행 중’ ‘바운드 전후’로 나눈 세 가지 장면에서 셀룰로이드와 플라스틱 볼의 차이를 실제 측정해 도출한 결과를 일본의 탁구전문지 탁구왕국 2014년 10월호에 게재했다.

빠른 속도의 ‘강타’와 중간 정도 속도의 ‘연타’ 등 두 가지 패턴으로 나눠 진행한 이 연구 결과 ‘타구 직후’에는 셀룰로이드 볼과 플라스틱 볼의 속도와 회전수가 거의 동일하며, ‘비행 중’에는 두 경우 모두 플라스틱 볼이 더 작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바운드 전후’에는 플라스틱 볼의 회전수가 오히려 줄지 않았는데, 바운드의 높이와 방향이 셀룰로이드 볼과 비교해서 강타의 경우는 낮고, 연타의 경우는 높아진다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구분

회전수

속도

타구 직후

강타

거의 동일

거의 동일

연타

거의 동일

거의 동일

비행 중

강타

플라스틱 볼 약 5% 감소

약 3% 감소

연타

거의 동일

약 1.5% 감소

바운드 전후

강타

셀룰로이드 볼의 감소가 많음

플라스틱 볼이 약간 빠름

연타

셀룰로이드 볼의 감소가 약간 많음

거의 동일

바운드 방향

강타

바운드 직후 플라스틱 볼이 더 낮아짐

연타

바운드 직후 셀룰로이드 볼이 더 낮아짐

<표2> 셀룰로이드 볼 / 플라스틱 볼 실측 비교


셀룰로이드와 플라스틱의 차이 : 적합한 용구는?

실측 결과에서 나타난 것처럼 지름 0.5mm의 미세한 차이지만 플라스틱 볼은 공기저항이 증가하여 이전보다 회전이 잘 걸리지 않게 된다. 이론적으로 수치화할 경우 두 볼의 차이는 약 1~3%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일정 수준에 올라있는 엘리트 선수들의 경우는 두드러지게 체감할 수 있을 만한 수치다. 반면 초급자나 중급자 정도 동호인이라면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의 위화감은 경험할 수 있다. 어쨌든 이 차이는 38mm에서 40mm로 변경됐을 때보다는 확실히 작은 변화다. 어느 정도 적응기간을 거치면 익숙해질 정도라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두 공의 소재, 즉 재질의 차이다. 실측결과에 따르면 타구 이후 비행 중에는 플라스틱 볼이 회전과 속도 모두에서 약간 저하된 한편 바운드 시 플라스틱 볼의 튕기는 높이나 속도가 셀룰로이드 볼의 경우처럼 비행 중 속도와 비례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플라스틱 볼의 경도가 셀룰로이드 볼에 비해 단단하기 때문에 바운드에서의 에너지 손실이 적은 것을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셀룰로이드 볼을 사용할 때의 스윙반경이나 타점에 익숙한 선수들이 플라스틱 볼에 대한 적응에 한 동안 애를 먹을 수도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플라스틱 볼에 적합한 용구’에 관한 추론도 가능할 수 있다. 좀 더 단단한 플라스틱 볼은 이전보다 러버를 파고들기 쉬우므로 파워 있는 선수가 빠른 볼을 타구할 경우를 가정하면 러버도 보다 단단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반대로 초급자는 볼의 컨트롤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오히려 보다 부드러운 러버를 사용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가정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추측이자 추론일 뿐이다. 실제 공을 사용하여 랠리를 해보고 본인에게 적합한 용구를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선수들 스스로에게 달려있는 일이다.
 

▲ 용구의 변화가 기술의 발전을 앞지를 수는 없다. 여전히 세계의 탁구는 중국을 향한 도전을 계속할 것이다. 플라스틱볼을 사용한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장지커. 월간탁구DB(ⓒ안성호)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탁구가 생긴지 120년, 개척시대에 함께 사용되다가 존재를 감췄던 플라스틱 볼은 ‘혁명’의 주인공으로 다시 돌아왔다. 현재 모든 국제대회에서는 플라스틱 볼이 공인구로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치러진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일본 닛타쿠의 플라스틱 볼이 사용됐고, 12월에 치러진 방콕 그랜드파이널스에서는 DHS 플라스틱 볼이 공인구로 사용됐다. 플라스틱 볼이 사용되는 최초의 세계선수권대회인 올해 쑤저우 세계대회 공식 사용구는 ‘버터플라이’로 결정됐다.

문제는 현재 본격 유통을 시작한 플라스틱 볼이 각 브랜드마다 뚜렷한 구질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각 대회 공인구마다 별도의 적응훈련이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문제는 플라스틱 볼의 내구성이다. 애초 각 제조사들은 셀룰로이드 볼보다 더 길게 사용할 수 있다고 자신했으나 연습을 시작한 선수들의 말로는 “공이 깨져나가는 횟수가 셀룰로이드의 몇 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볼은 셀룰로이드 볼에 비해 눈에 띄게 비싸졌다. 각각의 적응훈련과 비싼 가격으로 인해 일선 팀들은 훈련과정에서 한동안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합에서는 사용할 수 없지만 저렴한 연습용 볼의 수요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  선수들 입장에서는 잦은 실전을 통해 빠르게 적응해나가는 길만이 최선이다. 플라스틱 볼을 사용한 첫 번째 국내대회였던 제68회 종합선수권대회 남자개인단식에서 우승한 정영식(KDB대우증권). 월간탁구DB(ⓒ안성호)

어쨌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핑퐁’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던 셀룰로이드 볼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고, ‘탁구공은 플라스틱’이라는 등식이 오래 탁구계를 지배할 것이다. 당분간은 새로운 공의 적응 훈련에 대한 지원에서 혼란을 최소화하는 팀이 우위에 설 것이다. 협회나 연맹의 지원이 국제무대에서 한국탁구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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