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만의 탁구공 혁명! 플라스틱 볼 시대!

‘플라스틱 볼 시대’가 열렸다. 국제무대에서는 지난해 중반부터 모든 대회 공인구로 플라스틱 볼을 채택해왔고,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12월 17일에 치러진 제68회 종합탁구선수권대회부터 플라스틱 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탁구시장의 중심에 있던 셀룰로이드 볼은 지난 인천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더 이상 공식대회에서 볼 수 없게 됐다. 플라스틱 볼은 셀룰로이드 볼과 어떻게 다른가. 이 새로운 변화 앞에서 선수들은 적응을 위해 여전히 힘든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소재 변경의 이면과 함께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플라스틱 볼’을 2회에 걸쳐 탐구해본다. 
 

▲ 플라스틱 볼 시대가 열렸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이 셀룰로이드 볼을 사용한 마지막 국제대회가 됐다. 월간탁구DB(ⓒ안성호)

‘탁구 100년’을 지배해왔던 셀룰로이드 볼

탁구의 기원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으나 19세기에 더운 나라에서 식민 지배를 하던 영국인들이 더위를 피해 즐길 수 있는 실내 놀이로 창안했다는 주장이 통설이다. 초기에는 실내 바닥에 네트를 치고 코르크나 피륙으로 엮어 만든 공을 나무나 마분지 같은 것으로 쳐서 넘기는, 그야말로 ‘실내 테니스’나 다름없는 형태였다.

탁구가 현대와 비슷한 모양을 갖춘 것은 셀룰로이드 공의 사용 이후부터다. 1898년 영국인 제임스 깁이 미국 여행 중 가져온 장난감 공을 이용한 것이 시초였는데, ‘핑퐁’이란 이름도 이때 생겼다. 쇠가죽 라켓으로 이 공을 칠 때 나는 소리를 본 딴 것이라 한다. 이전까지 탁구는 고시마, 프림프람, 위프와프 등등 제 각각으로 불렸었다.

이후 탁구는 용구개발, 기술변화와 더불어 빠르게 발전했는데, 1900년경에는 전 유럽에 널리 보급됐다. 러버가 발명된 1902년에는 영국핑퐁연맹이 처음 조직됐고, 1923년에는 몇 몇 유럽 국가에서 ‘핑퐁’을 ‘테이블테니스’로 개칭했다. 1926년에는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등의 대표가 모여 국제탁구연맹을 결성했다. 국제탁구연맹은 결성 직후 규칙과 용구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탁구는 전 세계인이 즐기는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었다.

당시 제정된 용구규정에는 당연히 ‘공’도 포함돼 있었다. ‘셀룰로이드, 혹은 플라스틱계 비셀룰로이드로 만들어야 한다. 지름 38mm, 무게 2.5g’이라는 내용이었다. 주목할 것은 공의 재질에 이미 ‘플라스틱계’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 즉, 애초부터 탁구공이 꼭 셀룰로이드여야 했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공인용구로 활용되지 못했을 뿐 플라스틱 공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단지 소리와 타구감 등에서 월등한 우위를 보인 셀룰로이드 공에 밀려 시장에서 도태됐고, 오랜 기간 탁구공은 ‘셀룰로이드’라는 등식이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38mm, 2.5g으로 오랫동안 유지돼왔던 탁구공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작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2001년 오사카세계선수권대회를 전후하여 지름을 2mm 늘린 40mm 볼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탁구연맹은 2000년 10월부터 모든 국제대회에서 지름 40mm에 무게도 0.2g 증가한 2.7g 볼을 공식 사용구로 채택했고, 약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3년 이후부터는 이전까지의 38mm 볼을 전면 사용 금지했다.

일명 ‘라지볼’로 불렸던 40mm 볼은 이전보다 회전력과 스피드가 떨어질 것이란 전망과 함께 세계 탁구의 지각변동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당시의 전망과 예상은 단지 예상에 그쳤을 뿐 국제무대에서의 탁구판도는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힘 좋은 유럽에 유리할 거라는 예상이 무색하게 40mm 볼 사용 이후 중국탁구의 독주체제는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 변화에 대처하는 선수들의 기술 발전이 공의 변화보다 더 강력했다. 현대 탁구는 38mm 볼 시대보다 더 빠른 랠리가 지배하는 ‘스피드 시대’다.
 

▲ 현재 국제탁구연맹은 20개가 넘는 브랜드의 플라스틱 볼 공인을 완료했는데, 80% 이상이 이음새가 있는 볼이다. 월간탁구DB(ⓒ안성호)

다시 찾아온 변화의 시기, 플라스틱 볼 시대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2014년, 탁구공은 다시 한 번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이번에는 공의 지름이나 무게가 아닌 재질이다. 100년 가까이 탁구공 시장을 지배해왔던 셀룰로이드를 플라스틱 소재로 바꾸기로 한 것. 지난 2011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세계선수권대회 기간 중 아담 샤라라 당시 국제탁구연맹 회장의 발언이 플라스틱 볼에 관한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발화성이 있는 셀룰로이드는 주된 제조지인 중국에서도 위험물로 지정돼 있어 향후 그 제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발언이었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셀룰로이드 탁구공은 위험물로 취급되기 때문에 비행기로는 운반할 수 없고, 배로 반입하는 경우에도 위험물 전용 컨테이너로 옮겨야 했었다. 게다가 셀룰로이드의 재료인 면화 확보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아담 샤라라 전 회장의 발언은 탁구의 필수 용구인 공의 현재와 미래를 다각적으로 고려한 것이었다.

국제탁구연맹의 입장 표명 이후 ‘플라스틱 볼’은 탁구계의 화두로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2012년 도르트문트 세계선수권대회 기간 중에는 중국의 훙솽시(紅雙喜)사가 만든 샘플 볼이 각 제조사로 배포됐다. 이후 일본의 닛타쿠를 비롯한 주요 볼 제조사들은 플라스틱 볼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유럽에서 치러지는 모든 대회들은 2014년 중반부터 플라스틱 볼을 공인구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인천아시안게임까지 셀룰로이드 볼을 사용한 아시아 지역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수용하는 중이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 12월에 치러진 제68회 전국종합선수권대회부터 플라스틱 볼을 공인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볼은 이음새가 없는 볼과 두 개의 반구를 합체하는 이음새가 있는 볼 두 가지가 있다. 현재 국제탁구연맹은 20개가 넘는 브랜드의 플라스틱 볼 공인을 완료했는데, 80% 이상이 이음새가 있는 볼이다. 하지만 두 종류의 제조방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실험과 개발 과정 속에서 장단점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거 셀룰로이드 볼이 대세로 자리 잡은 것처럼 플라스틱 볼 중에서도 탁구 랠리에 적합한 하나의 제조방식이 곧 탁구공의 대세로 굳어질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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