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찰리 채플린 VS 버스터 키튼

 

채플린, 배우, 스토리텔러
흑백 무성영화와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처럼 보이는 찰리 채플린은 사실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인이다. 그의 아버지는 런던 뮤직홀에서 노래하는 가수였고 어머니는 연극무대에서 잡다한 단역을 도맡아 하던 무명 배우였는데 채플린이 3살이 되던 해에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다. 이후 몸이 좋지 않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어린 채플린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지만 부모 모두 무대에 오르는 일을 해온 만큼 그도 자연스럽게 아역배우의 일을 시작하게 된다. 10살 때부터 극단 생활을 시작한 채플린은 여러 인물을 실감 나고 코믹하게 묘사하여 점차 큰 호응을 얻기 시작했는데 특히 스무살 무렵, 그가 속한 카노 극단이 미국 순회공연을 갈 때엔 주연으로 발탁될 정도였다. 

그런 찰리 채플린이 미국 영화판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순회공연 중에 키스턴 영화사에서 받은 고액의 전속 계약제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막 영화산업이 태동하던 시기였던 만큼 키스턴 영화사에서 제작되는 영화들은 원시적이고 조잡하기만 했다. 허술한 줄거리에 단순한 슬랩스틱만 반복해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영화를 제작하는 방법을 재빠르게 습득해나갔고 마침내 스스로 감독까지 맡으며 지금껏 키스턴 영화사에서 만들어낸 조잡한 코미디물과는 차별된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출연한 두 번째 영화인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1914)’에서 헐렁한 바지, 짧고 작은 상의와 작은 챙모자, 짧은 지팡이에 칫솔 모양의 콧수염을 조합한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며 명성을 얻게 된다. ‘떠돌이(The Tramp)’라는 이름의 이 전매특허 캐릭터는 현재까지도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 속의 찰리 채플린. 

당시의 영화들은 15분 정도의 짧은 흑백 영상에 소리는 나지 않는 무성 영화였기 때문에 시각적인 표현에 집중해야 했다. 당연히 표정과 동작은 과장되고 등장인물을 짓밟거나 발로 차는 등의 자극적인 폭력 장면도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려들던 이 시기, 언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채플린의 영화는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후 1926년부터 유성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무성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채플린은 오랫동안 이를 거부하다가 1940년이 되어서야 완전한 유성 영화 ‘위대한 독재자’를 선보인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던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 영화로 히틀러를 패러디한 채플린을 탐탁지 않아 했고, 이후 용공주의자로 몰리게 되면서 FBI의 집중 감시를 받거나 보수반공단체들의 비난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런던에서 무대에 오르던 시절을 회고하는 영화 ‘라임 라이트(1952)’를 만들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런던을 방문했을 때 미국은 기습적으로 채플린의 추방 명령을 내리게 된다.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미국의 결정에 채플린은 ‘이런 상황에서 더이상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 수 없다. 나는 미국 영주권을 포기한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키튼, 연출가, 스턴트맨
다양한 표정과 몸짓으로 사랑받은 채플린과는 달리 버스터 키튼은 ‘위대한 무표정(The Great Stone Face)’이란 호칭을 가지고 있을 만큼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연기자로 유명하다. 또한 채플린과 마찬가지로 연극을 하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이미 3살 때부터 ‘세 명의 키튼’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했다. 하지만 당시 어린 키튼의 역할은 보는 사람들이 아동 학대로 신고할 정도로 위험한 스턴트나 슬랩스틱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무대 밖으로 그를 던지면 어린 키튼은 천연덕스럽게 벌떡 일어나 자기 자리를 찾아가곤 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당시 유명 마술사였던 해리 후디니가 그런 그에게 ‘버스터(Buster)’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1917년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으로 쇼를 해체하고 뉴욕으로 간 키튼은 로스코 아버클을 만나 함께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 이미 성공한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아버클은 키튼의 슬랩스틱 연기를 매우 높이 평가했는데 재미있게도 그는 채플린의 코미디 영화 스승이자 그에게 헐렁한 바지를 빌려주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뚱보와 홀쭉이’ 콘셉트를 최초로 시도하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이후 아버클이 살인사건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키튼은 자신만의 작품을 감독하기 시작한다. 특히 이즈음 이미 대스타였던 채플린이 소속 영화사를 옮기면서 자신이 쓰던 개인 영화 스튜디오를 키튼에게 넘겼고 그는 이 공간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21년부터 1928년까지 약 20편의 단편 영화와 12편의 장편 영화를 제작하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 <제너럴> 속의 버스터 키튼.

뛰어난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 채플린의 영화에는 언제나 확실한 드라마가 있었다. 빈약한 스토리 라인에 배우들의 슬랩스틱이나 반복해서 선보이던 당시의 영화들 사이에서 그런 채플린의 영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키튼의 영화는 그런 채플린의 영화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온 몸을 이용해 역동적인 슬랩스틱을 보여주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해냈고, 대역이나 눈속임을 쓰지 않고 맨몸으로 위험한 연기까지 직접 해냈다. 그의 영화는 완벽하게 짜여진 연출과 절묘한 타이밍으로 보는 이들에게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으며, 주변 환경을 이용해 코믹한 상황을 꾸며내면서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 영화의 주인공인 키튼은 언제나 무표정으로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초연함을 보여준다.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표정을 가진 채플린과는 전혀 달랐지만 키튼의 무표정은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더하는 또 하나의 장치였던 것이다. 

키튼에게도 유성 영화의 시대가 열렸지만, 채플린과는 달리 그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유성영화의 시대를 환영했다고 한다. 키튼은 훌륭한 말솜씨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마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소한 체격으로 슬랩스틱을 선보이던 키튼에게 남자다운 저음의 목소리는 뜻밖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다. 그 누구도 코미디언의 ‘멋있는 목소리’를 환영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거액을 쏟아부은 영화 ‘제너럴(1926)’이 제작비의 1/5의 수익을 거두는 데 그치고 흥행에서 참패하면서 결국 그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영원한 광대들
채플린이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영화 ‘라임 라이트’는 늙은 코미디언 칼베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당시 63세의 노인이었던 채플린은 이 영화에서 분장하는 장면을 찍으며 대중들에게는 낯선 자신의 민낯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준비하며 파트너와 대화를 나누는데 그 파트너가 채플린만큼이나 나이를 먹고 늙은 키튼이었다. 칼베로는 이 공연을 끝으로 무대 위에서 숨을 거두고 키튼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영화는 끝난다. 

채플린과 키튼이 함께 출연한 영화 <라임 라이트>의 한 장면. 

채플린은 당시 단역에 출연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키튼에게 이 영화를 함께 하자는 제의를 했고 키튼은 고민 끝에 그의 제안을 수락한다. 미국 정부와 대중들에게 외면당하던 채플린과 짧은 전성기를 한참 전에 지나쳐버린 키튼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혼신의 코미디 연기를 펼친다. 얄궂게도 이후 채플린은 미국을 영영 떠나야 했고 키튼은 영화계에서 재평가를 받으며 1960년 아카데미에서 평생 공로상을 받았고, 1965년에는 베니스영화제 회고전에서 ‘제네럴’을 상영한 후 무려 20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는 등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기도 했다. 

한 평론가는 채플린과 키튼에 대해 ‘채플린은 사랑스러운 방랑자지만 사회에 대해 냉소적이다. 채플린의 영화 속에서 그는 대부분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방랑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반면 키튼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결국 사회에 편입되는 것으로 끝난다.’라고 분석했다. 생각해보면 이 두 배우의 실제 인생도 이와 비슷한 길을 갔던 것 같다. 채플린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미국 영화계를 떠나 버렸고, 키튼은 영광의 뒤안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거장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월간탁구 201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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