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오 왕리친 마린의 흥미로운 ‘삼각관계’

현재 중국 남자탁구에는 ‘3인방’으로 칭해지는 선수들이 있다. 쉬신, 마롱, 장지커다. 그런데 이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중국 남자탁구에는 ‘원조 3인방’이 있었다. 바로 지난해 모두 은퇴한 왕리친, 마린, 왕하오다. 이 세 선수는 자국에서 개최됐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단체전 금메달 멤버다. 뿐만 아니라 여러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합작했다. 그 이전에 비해 훨씬 더 강력한, 소위 ‘넘사벽’의 중국탁구는 이들이 토대를 닦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탁구를 좌지우지했던 이들은 국제대회에서도 수차례 맞대결을 펼쳤다. 현 3인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와중에 왕하오는 2007년 10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무려 27개월 동안 세계랭킹 1위를 고수하는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이는 역대 세계 남자탁구선수들 중 최장기록이다. 2위는 왕리친이 2000년 9월부터 2002년 9월까지 기록한 25개월이다. 내친 김에 연속 최장기간 세계랭킹 1위 기록을 갖고 있는 왕하오를 중심으로, 동시대 중국대표팀 주전으로 뛰었던 왕리친, 마린과의 국제무대 역대전적을 알아보자.
 

▲ 왕하오는 역대 최장기간 세계1위를 고수했던 기록을 갖고 있다. 꾸준한 면모를 보여준다. 월간탁구DB(ⓒ안성호).

왕하오는 공교롭게도 은퇴할 때까지 왕리친, 마린 두 선수를 상대로 똑같은 25번씩의 국제대회 맞대결을 펼쳤다. 왕리친을 상대로는 25전 14승 11패를 기록했고, 마린을 상대로는 25전 10승 15패를 기록했다. 왕하오는 왕리친에게 56%의 승률을 기록했고, 마린을 상대로는 정확하게 40%의 승률을 기록했다.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지만 왕리친을 상대로는 강했고, 마린을 상대로는 약했다.

왕리친을 상대로 전체적인 기록에서는 왕하오가 앞서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전반기와 후반기의 기록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하오는 데뷔 후 왕리친과 11번의 맞대결을 하는 동안 11전 1승 10패의 절대 약세를 보이다가, 2006년 홍콩 그랜드파이널스 결승에서 4대 2(7-11, 11-8, 4-11, 11-2, 11-8, 12-10)로 승리한 이후부터 압도적 승수를 쌓기 시작했다. 당시 경기 포함 무려 13승 1패가 후반기에 만들어졌다. 전반기 왕하오가 1승 11패를 기록하는 동안 거둔 유일한 1승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단식 4강전이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당시 승패가 바뀌었다면 결승전 판도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어쨌든 왕하오는 홍콩 그랜드파이널스 결승전 승리 이후로 왕리친에게는 거의 지지 않았다. 2009년 톈진 중국오픈 남자단식 4강까지 무려 10연승을 기록했다. 그 연승기록에는 2009년 요코하마 세계선수권대회 개인단식 결승전도 포함돼 있다. 왕리친은 2010년 하모니 중국오픈 남자단식 8강에서 4대 3(6-11, 7-11, 13-11, 11-7, 7-11, 11-3, 11-8) 역전승으로 겨우 연패를 끊었는데, 이후에도 왕하오의 강세는 계속 유지됐다. 중국오픈에서도 이기지 못했다면 왕리친은 은퇴할 때까지 왕하오를 상대로 14연패의 수모를 당할 뻔했다. 두 선수의 역대전적만 보자면 올림픽 4강전보다, 세계대회 결승전보다 강자와 약자의 위치가 바뀌는 시점인 홍콩 그랜드파이널스 결승전이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승부였던 셈이다.
 

▲ 왕하오와 왕리친(사진)의 역대전적은 전후반이 극명하게 갈린다. 올림픽과 세계대회에서의 중요한 승부처들이 눈길을 끈다. 월간탁구DB(ⓒ안성호).

왕하오는 전후반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왕리친과 달리, 똑같은 중국식 펜 홀더를 사용한 마린을 상대로는 은퇴할 때까지 계속 약세를 보였다. 그나마 마지막 세 번의 맞대결에서 3연승을 기록하며 겨우 두 자리 승수를 채울 수 있었지만 선수생활 내내 마린에게는 약한 면모를 보였다. 특히 마린에게는 결승 맞대결에서 많이 패했다. 두 선수는 총 10번의 결승 맞대결을 벌였는데, 그 중에서 왕하오가 이긴 것은 단 두 번뿐이다. 마린을 상대로 한 결승 맞대결 승률을 조금만 더 높였더라면 왕하오의 역대 성적은 더욱 화려했을 것이다. 결승전 패배 중에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단식 결승전 1대4(9-11, 9-11, 11-6, 7-11, 9-11) 패배도 포함돼있다. 2004년과 2006년 두 번의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모두 패했다.

왕하오와 마린은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딱 한 번 맞붙었다. 2007년 자그레브 세계선수권대회 개인단식 4강전이었는데, 그 경기 역시 왕하오가 2대 4(11-6, 9-11, 10-12, 11-4, 9-11, 6-11)로 졌다. 당시 왕하오를 이기고 결승에 올랐던 마린은 최종전에서는 왕리친에게 3대 4(11-4, 11-8, 5-11, 11-4, 9-11, 8-11, 6-11)로 역전패를 당하며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다. 마린으로서는 전 대회였던 상하이 세계대회에 이어 두 번 연속 왕리친에 패해 준우승에 머문 아쉬운 승부였다. 반면 왕리친은 이 승부로 세계선수권 개인단식 3회 우승을 달성했다. 마린과는 반대로 전 대회에 이은 개인단식 2연패의 기쁨이기도 했다.
 

▲ 마린은 자국에서 치러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세 선수 중 유일하게 세계선수권 단식은 정복하지 못했다. 월간탁구DB(ⓒ안성호).

역대전적만을 놓고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가정이 가능하다. 만약 2007년 세계선수권 남자단식 준결승에서 왕하오가 마린을 꺾었다면 왕리친의 세계대회 3회 우승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무렵은 왕하오가 왕리친에게 절대 우세를 보이던 시기였으니까(2년 뒤 세계대회 결승전에서는 실제로 왕하오가 왕리친을 결승에서 이기고 우승했다). 하지만 어쨌든 2007년 대회 최종 결과는 왕리친의 우승이었고, 그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식 3회 우승자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반대로 마린은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물론 가정은 가정일 뿐이다. 만일 왕하오가 약세에 있던 전반기 유일한 1승을 아테네올림픽 4강전에서 거두지 못했다면 왕리친은 올림픽 단식에서도 금메달리스트가 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대회 금메달리스트는 왕하오도 왕리친도 마린도 아닌 한국의 유승민이었다. 왕하오에게 강했던 마린은 올림픽 단식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셋 중 유일하게 챔피언에 오르지 못했다. 과정(過程)도 중요하고 가정(假定)도 해볼 수 있지만 어쨌든 스포츠에서 최고의 덕목이 결과(結果)라는 사실은 결과가 말해준다. 탁구는 스포츠다.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