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수권 우승컵만 18개, 올림픽에선 ‘불운의 아이콘’

중국의 세계적 탁구스타 왕하오가 은퇴했다. 왕하오는 중국대표팀에서의 입장을 정리한 뒤, 지난 23일 자신의 메타블로그를 통해 은퇴를 공식화했다. 은퇴발표문에서 왕하오는 “2012년 런던올핌픽 이후부터 은퇴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세대교체기 중심을 잡아줄 인물이 필요하다는 대표팀 사정으로 올해 세계대회까지 왔다. 이제는 후배들이 완전한 자리를 잡았으므로 홀가분하게 현역생활을 접는다.”고 말했다.
 

▲ ‘이면타법의 완성자’ 왕하오가 마침내 현역 생활을 접었다. 월간탁구DB(ⓒ안성호).

1983년생인 왕하오는 최근까지 중국탁구대표팀의 간판으로 활약했던 인물이다. 1998년 대표선수로 데뷔해 무려 16년간 국제탁구 무대를 누볐다. 공링후이, 류궈량의 ‘공유시대’를 이어받아 왕리친, 마린과 함께 ‘트로이카’를 구축하며 세계 최강 중국탁구의 위용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그의 은퇴는 곧 중국탁구의 한 시대가 완전한 막을 내렸음을 의미하는 일이다. 중국의 전력에 상당부분 좌우돼 왔던 세계탁구사도 하나의 장을 닫은 셈이다.

왕하오는 기술적으로 류궈량, 마린의 뒤를 이은 ‘이면타법의 완성자’로 꼽힌다. 이면타법의 개척자들인 류궈량과 마린은 단면 펜 홀더식의 직선 쇼트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으나 왕하오는 이면의 러버로 백핸드에서도 강력한 직선타구를 날리며 이른 바 ‘중펜(중국식 펜홀더)탁구’를 완성했다. 완성된 이면타법을 앞세워 단체전 단복식, 혼복을 모두 포함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월드컵 등 메이저대회에서 모두 18회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 기록은 여자부의 장이닝(24), 왕난(19)에 이은 중국탁구 역대 3위에 해당한다.
 

▲ 많은 우승기록에도 불구하고 한국팬들에게는 ‘불운의 아이콘’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월간탁구DB(ⓒ안성호).

하지만 한국팬들에게 왕하오는 ‘불운의 아이콘’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왕하오는 최강의 기량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단식에서는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그 불운의 시작이 바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었고, 당시 결승전 상대가 바로 한국의 유승민(현 삼성생명 코치)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왕하오는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에서도 계속 결승에 올랐으나 베이징에서는 선배 마린에게, 런던에서는 후배 장지커에게 패하며 3회 연속 은메달에 머물렀다.

왕하오의 은퇴가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현재 중국탁구는 장지커, 쉬신, 마롱 3인방과 10대의 강자 판젠동 등이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더 이상 왕하오가 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최강 선배들의 자리를 이어받았던 왕하오가 자신의 자리를 미련 없이 물려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최강의 후배들이 있기 때문이다. 세대교체기의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좀처럼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중국탁구의 두터운 저변이 다시 한 번 부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런던올림픽 단체전 이후 류궈량 감독과 함께 인사하던 왕하오. 은퇴 후 대표팀 지도자로 계속 활약할 예정이다. 월간탁구DB(ⓒ안성호).

알려진 소식통에 따르면 은퇴 후 왕하오는 선수가 아닌 코치로 중국 국가대표팀에서 계속 활약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왕하오 스스로도 자신의 은퇴발표문에서 밝힌 것과 일치한다. 왕하오는 “나는 항상 이 위대한 팀과 함께 할 것이다. 더 많은 연구와 공부를 통해 이론적 지식도 축적할 것이며, 그 결과들을 선수시절의 경험과 함께 대표팀에 충실히 반환하겠다”고 말했다. 선수 왕하오는 은퇴했지만 세계의 탁구팬들은 앞으로도 자주 그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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