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돼지 VS 소

돼지와 소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동물이다. 우리에게 고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돼지와 소가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 번쯤 고기로서의 돼지와 소가 아닌 살아있는 동물로서의 돼지와 소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가장 보편적인 고기, 돼지와 소

돼지는 약 9천 년 전 중국과 근동 지역에서 야생 멧돼지를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가축화되었다. 처음 돼지를 사육한 것은 순전히 고기를 얻기 위함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돼지는 태어난 지 8개월이 되면 바로 짝짓기를 할 수 있고, 114일의 임신 기간이 지나면 한 번에 8~12마리를 낳을 정도로 뛰어난 번식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돼지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부와 다산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돼지를 도축하여 얻는 돼지고기를 고지방 식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삼겹살 부위만 빼면 대부분이 고단백 저지방 식품이다. 영양학적으로 부위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보통 비타민 B1은 쇠고기의 10배에 가깝고, 우리 몸이 합성해내지 못하는 여러 가지 필수 아미노산을 포함하고 있어 양질의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 또한, 돼지의 지방에는 아라키돈산, 리놀산 등의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이지 않도록 도와준다. 

소는 돼지보다 가축화는 조금 늦었지만, 그 가치는 금방 돼지를 추월했다.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한 것은 기본이고 소에게서는 풍부한 소젖까지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뛰어난 노동력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인류가 농사를 지으며 정착 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소가 그저 농경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아니다.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농경 생활과 거리가 먼 몽골이나 아프리카 내륙, 그리고 일부 서아시아 지역의 유목민들에게도 소는 중요한 재산이었다. 소고기는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고기다. 육식이 주식일 뿐만 아니라 미식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인들이 소 한 마리를 25개의 부위로 분류하고 약 60%를 먹지만, 한국인은 39개 부위, 85%를 먹어치운다. 게다가 우리 국어사전에는 소고기 부위를 지칭하는 용어가 120가지나 등록되어 있고 또, 부위마다 조리법을 달리하여 먹기를 즐기니 과연 소에 대한 미각 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닌가 싶다.
 
돼지고기에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지만, 소고기 지방의 대부분은 포화지방산이기 때문에 소고기가 몸에는 더 해롭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이런 논쟁은 두 식품의 영양학적 가치가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전문가들은 어떤 고기를 먹느냐보다 어떤 부위를 어떻게 조리해 먹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돼지고기에도 다량의 포화지방이 섞여 있는 데다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돼지 부위인 삼겹살이나 목살의 경우에는 고지방과 고열량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소고기의 등심 부위는 저지방, 저열량에 단백질 함유량까지 높다. 돼지고기 삼겹살과 소고기 등심을 비교하면 소고기 쪽이 훨씬 몸에 이롭다는 이야기가 된다.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돼지 부위인 삼겹살

 

돼지와 소를 먹지 않는 사람들

돼지와 소는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가장 흔한 가축이지만 문화, 종교적인 이유로 이를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돼지고기는 이슬람과 유대인이 절대 먹지 않는 금기의 음식이다. 이들과 뿌리가 같은 기독교의 성경에서도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 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신명기 14장 7절)”라고 가르치며 한때 돼지를 금기시했다. 사실 이들 종교가 태동한 중동지방은 유목을 주로 했던 덥고 건조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돼지는 사육하기에 적합한 동물이 아니었다. 생태 인류학적 측면에서 보면 중동 지역이 기후 변화로 인해 점점 척박해지면서 돼지의 먹이와 서식지가 부족해졌고 체온 조절 능력이 없는 돼지가 고온 건조한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몸에 물이나 진흙을 바르는 것이었다.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돼지의 이런 습성은 인간에게 중요한 식수를 오염시켰고 그도 모자라 체온 유지를 위해 자신의 배설물까지 몸에 묻히는 모습을 보게 되자 사람들은 돼지가 더러운 동물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무더위에 방치된 돼지고기에는 기생충에 쉽게 오염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가까이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사회, 경제, 지리 등의 요인이 만들어낸 종교적 금기는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힌두교도들에게는 소고기가 금기의 음식이다. 인도에 있는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는 소고기가 아닌 닭고기나 양고기로 만든 패티를 넣어 햄버거를 만들 정도다. 이들이 소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절대 인격신 바가반 크리슈나가 소를 돌보는 목동이었고 소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윤회설을 믿는 힌두교도들은 소가 인간으로 환생하기 바로 전 단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신성시하고 있다. 하지만 힌두교도가 원래부터 소를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나타나는 인도의 기후상 가뭄이 들면 사람들은 소를 잡아먹었고, 비가 오면 밭갈이를 위해 소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도의 인구가 증가하고 점점 농작지가 늘어나게 되자 가뭄이 들 때마다 소를 잡아먹는 일이 반복되면 넓어진 농작지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인도의 지배층들은 이제 소를 먹는 것보다 소의 노동력을 유지해 보다 많은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소젖은 각종 인도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중요한 식재료였고 말린 소똥은 연료로서 추운 겨울을 나게 하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소를 지켜야 할 이유를 갖게 된 사람들은 이제 방법을 찾아야 했고, 지배층들은 소가 신의 운송수단이고, 신성한 가축이라는 이유로 먹는 것을 금지했다. 
 

▲ 한국인은 소 한 마리의 85%를 먹어치운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

많은 사람이 매일 돼지고기를 먹고 소고기를 먹지만 살아있는 돼지와 소를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현대의 돼지와 소는 인간의 위장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지만, 그 존재 자체는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고민하기 시작했다. 돼지와 소와 같은 동물들이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성찰과 함께 보다 윤리적인 고기 먹기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극단적으로 채식을 하고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동물의 생명권을 생각하고, 이들의 사육환경을 생각하고, 생태계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 동물, 자연이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여있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간에게 편리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매일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대세가 되어버린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태어나 도축되는 순간까지 흙 한번 밟아보지 못하는 동물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떼어져 좁고 더러운 우리에서 살면서 질병 예방을 위한 각종 백신을 투여받고 있는 동물들을. 그리고 그런 동물들이 제공하는 고기를 먹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말이다. 
 

<월간탁구 2018년 5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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