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했던 세계대회, 아시안게임에서 반전 이룰 것"

"부진했던 세계대회, 아시안게임에서 반전 이룰 것"

1986년 서울, 2002년 부산(울산)에 이어서 세 번째다. 한국에서의 대회마다 감동의 역사를 써왔던 한국탁구가 인천(수원)에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의 부진을 씻고 아시아 탁구강국의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각오다. 이번 아시안게임 탁구경기는 9월 27일부터 10월 4일까지 수원체육관에서 8일간 경기를 벌인다. 9월 19일 공식 개막 이후 약 일주일 후부터 열전에 들어간다. 정말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 격전지가 될 수원체육관에서 훈련 중인 대표단을 찾아 선수들을 이끌고 있는 세 감독을 만났다. 강문수 총감독, 유남규 남자감독, 김형석 여자감독. (존칭, 경어 생략)

▲ (수원=안성호 기자) 왼쪽부터 김형석 여자감독, 강문수 총감독, 유남규 남자감독.

▷ 이제 아시안게임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대표팀 분위기는 어떤가?

김 :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선수들 분위기는 절정에 가깝게 올라있다. 오히려 해내고자 하는 의지가 지나쳐서 시합 때 부담감으로 작용할까봐 걱정될 지경이다. 너무 넘쳐도 역효과가 난다. 자칫 의욕만 앞서서 마음이 들떠있어도 문제다. 코칭스태프가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자주 미팅을 갖고 안정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유 : 솔직히 말해서 남자대표팀은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무엇보다도 주력인 김민석이 부상 때문에 완벽하게 훈련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빠른 재활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불안요소인 것이 사실이다. 그 외에 큰 문제는 없다. 주세혁과 이정우는 이미 많은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표단에 큰 힘이 되고 있고, 이번이 첫 출전인 정상은과 김동현은 대표단의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훈련을 충실히 따라오고 있다.

▷ 최근 세계대회에서의 부진 때문인지 이번 아시안게임에 대한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표팀의 입장은 어떤지 듣고 싶다.

강 : 지난 세계대회 결과는 결과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새로 선발전을 치러서 구성된 대표단에 대한 불안한 시선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팀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대표팀은 그렇기 때문에 더 잘하려는 자극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방에서 치러지는 대회에서만큼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선수들이 똘똘 뭉쳐있다. 평가는 아시안게임이 끝났을 때 다시 듣고자 한다.

김 : 그런 시각들은 사실 낯선 것이 아니다. 김경아 박미영 당예서가 빠지고 현재 선수들이 주전급으로 올라섰을 때부터 줄곧 들어오는 말이다. 하지만 파리에서 혼복 은메달 따고 코리아오픈에서 단복식 우승하고 부산에서 혼복 금메달 따고 그러면서 애초 예상보다 빠르게 기대치가 높아졌다. 냉정하게 볼 때 대표팀 전력이 예전보다 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지난 세계대회는 거기다가 부족했던 경험과 주력의 예상치 못했던 난조까지 겹치면서 부진한 결과를 냈지만 과정으로 볼 때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엘리트 탁구인들 스스로도 현 상황과 전력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겠나. 변명하자는 게 아니라 지금은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선수들에게 질책보다는 용기를 주고 힘을 줘야 할 때라는 거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게 이번 아시안게임이면 좋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믿는다. 선수들에게 항상 말한다. 성적을 떠나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경기를 하자고, 최선 다했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불안한 시선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서 대표단에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시면 좋겠다.

유 : 그런 시선은 사실 여자팀보다 남자팀에 더할 지도 모르겠다. 대표단 구성이 일반적인 예상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지난 몇 년간 주력으로 뛰던 선수들이 빠졌다. 게다가 아까도 말했듯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하는 김민석이 부상 중이다. 일찍부터 구상했던 개인복식이나 혼합복식도 일부 노선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비관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선발전을 통과한 만큼 개인능력은 충분한 선수들이다. 첫 출전의 부담감과 긴장감을 털어내는 것이 관건인데, 그 부분을 나와 유승민 코치가 멘토로서 보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민석의 부상은 재활 속도를 봐가면서 조치를 강구할 생각이다. 일단은 본인의 출전의지가 강한 만큼 빠르게 회복되리라 믿고 있다. 솔직히 지난 세계대회 결과는 개인적으로도 충격이었다. 대표단을 이끄는 동안 단체전에서 성적을 내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아시안게임에선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 (수원=안성호 기자) 김형석 감독과 박지현 여자코치. 김 감독은 질책보다는 '용기'와 '힘'을 부탁했다.

▷ 유남규 감독은 한국에서 치러진 2002년 아시안게임 때 처음 국가대표 코치로 데뷔했었다. 그리고 더 이전 86년 아시안게임 때는 ‘영웅’이었다. 세 번째로 맞는 한국에서의 아시안게임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유 : 그렇긴 하다. 86년은 마침내 중국을 따라잡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대등하던 시절을 거쳐 2002년에도 의미 있는 금메달을 땄었다. 안타까운 건 현 대표팀 전력이 당시 상황과 비교하기 힘들다는 거다. 한때 한국남자탁구는 중국 외에는 적수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이나 타이완, 싱가포르 등등은 중국과 한국 다음 순위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웠다. 하지만 이젠 우리 팀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잘 알겠지만 베테랑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후배들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이상수의 거리조절, 정영식의 체력, 김민석의 관리능력 등등 기술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들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그동안 나름 성장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지난 세계대회처럼 중요한 대회에서 믿음을 심어주지 못했고, 한국의 무게감은 확실히 예전에 비해 떨어져 있다. 나를 포함해서 이 친구들이 성장하는 시기에 코칭을 해온 지도자들의 책임도 없지 않을 거다. 협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지금은 우리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선수들을 끌고 가야 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그 좋은 출발점이 됐으면 한다.

▲ (수원=안성호 기자) 아시안게임마다 '역사'를 만들어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유남규 남자감독.

▷ 그렇다면 이번 대회 목표는 어떻게 잡고 있나?

강 : 중국과의 전력 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지레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과는 백중세지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세계대회 때 우리가 패했던 타이완이나 북한은 다시 만나면 지지 않을 거다. 객관적인 전력은 분명 우리가 우위에 있다. 일단은 남자단체전 결승 진출을 목표로 잡고 있다. 중국 말고도 일본이나 싱가포르, 홍콩 등등 상대적으로 더 힘든 싸움을 벌여야 하는 여자단체전은 4강 진출이 우선 목표다. 개인전에서는 복식과 혼합복식 등에서 밝은 색깔의 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김 : 혼합복식은 사실 금메달이 가능할 거라고 판단한다. 우선 중국이 상대적으로 다른 종목에 비해 덜 신경을 쓰는 종목이므로 틈새를 파고 들 필요가 있다. 많은 팬들이 기대했던 이상수-박영숙 조가 출전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쉽지만 이정우-양하은 조가 그 이상을 해줄 거라고 믿는다. 왼손 펜 홀더 이정우는 복식에 강점이 있다. 이정우의 경험과 노하우에다 양하은이 흔들림 없는 페이스를 지킬 수 있다면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자단체전은 4강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4강에서 중국을 피할 수 있는 대진이 나온다면 결승까지도 노려보겠다. 개인전은 역시 복식에 승부를 걸 생각이다. 박영숙-양하은 조는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으니 기본은 해줄 것이다. 전지희-이은희 조 역시 이은희가 갖고 있는 핌플이라는 희소성을 전지희가 받쳐줄 수 있다면 충분히 ‘일’을 낼 수 있는 조합이다. 귀화 후 국가대표로 메이저대회에 처음 출전하는 전지희가 긴장감을 어느 정도나 털어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코칭스태프가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다.

유 : 단체전은 조 편성도 누구와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조 수위를 하고 올라가면 그래도 더 많은 가능성이 생기겠지만 만일 2위로 내려앉는다면 8강전부터 훨씬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모든 시합을 방심하지 않고 싸워야 하는 아시안게임이 될 것이다. 말했듯이 단체 결승 진출과 혼합복식 금메달을 우선 목표로 한다. 혼복에서는 세계대회 금메달 조인 북한의 김혁봉-김정 조가 나오지만 국제무대에 노출되지 않은 우리 선수들이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내심으로는 정상은-김동현 조의 개인복식도 눈여겨보고 있다. 아시안게임에 첫 출전하는 선수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표단의 어느 누구보다도 혹독한 훈련을 하고 있다. 결과와 상관없이 훗날을 향한 좋은 경험을 쌓기 바란다. 베테랑 주세혁의 개인단식도 재미있는 시합이 될 것이다.

(국가대표 탁구선수단 코칭스태프 인터뷰 ②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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