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별선수권대회 함께 출전한 오상은-오준성 부자

명확히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어쩌면 전 종목을 통틀어도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또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두 세대가 이어서 선수생활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강한 체력과 움직임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스포츠세계에서 아빠와 아들이 같은 대회에 동시 출전해 각각 시합을 벌이는 경우가 또 있었나.

오상은-오준성 부자 얘기다. KDB대우증권 소속의 국내 실업최고참 오상은(39)과 그의 아들로 서울 홍파초등학교 선수인 오준성(10)은 전북 전주화산체육관에서 치러지고 있는 제61회 전국남녀종별탁구선수권대회에 나란히 출전했다. 초등부부터 일반부까지 모든 엘리트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종별대회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일반부와 초등부 단체전이 동시에 치러진 대회 첫 날, 부자는 바로 옆 테이블에서 서로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스윙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중요한 단체전이었기 때문에 준성이가 어떤 경기를 하는지 쳐다볼 여유는 사실 없었어요. 선수로 테이블 앞에 섰으니 알아서 잘하기를 바랄 뿐이죠.”
 

▲ (전주=안성호 기자) 오상은-오준성 부자가 종별선수권대회에 함께 출전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종별대회였기에 가능했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실은 아빠가 오상은이어서 실현될 수 있었던 ‘꿈’이다. 오상은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현역 레전드’다. 최고 권위의 전국종합선수권 단식 최다우승(6회) 기록 보유자다. 90년대부터 2천년대까지 약 27년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톱랭커로 활약하며 네 번의 올림픽, 일곱 번의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아쉽게도 메이저대회 금메달 방점은 찍지 못했지만 획득한 메달수로는 한국탁구계에서 그의 기록을 넘어설 수 있는 이가 없다. 게다가 그의 선수생활은 ‘현재진행형’이다. 1977년 생, 내년이면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여전히 전성기 못지않은 경기력을 과시하고 있다. 아빠의 ‘탁구피’를 이어받은 둘째 아들 준성이가 같은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되기까지.
 

▲ (전주=안성호 기자) ‘현역 레전드’ 오상은은 여전히 전성기 못지않은 경기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의 선수생활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을까. 준성이는 사실 아빠의 반대로 탁구를 하지 못할 뻔했단다. 훈련의 고통을 아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아빠는 어린 아들이 집에서 라켓과 공으로 통통거리는 소리조차 시끄럽다고 싫은 내색을 했을 정도였다고. 그렇지만 타고난 피는 어디 가지 않는다. 게다가 준성이는 엄마도 탁구선수 출신이다(잘 알려진 대로 오상은의 아내는 대구의 탁구명문 경일여고 출신 이진경 씨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뭘 시켜도 최고의 재질을 보이는 준성이를 두고 부부의 선택은 결국 탁구였다. 아니, 엄마 아빠의 선택 이전에 “지가 먼저” 선수를 하겠다고 졸랐다는 걸 보면 준성이는 어쩌면 처음부터 탁구를 하도록 정해져 있었던 건지 모른다.

일곱 살 후반이었으니 요즘 추세로는 빠르지 못한 시작이었지만 최고 선수의 아들답게 준성이는 빠르게 실력을 쌓았다. 1학년 때 기본기를 다지고, 2학년 때 4강권에 머물렀던 성적은 3학년이 된 올해 우승권으로 올라섰다. 지난달 치러진 초등연맹 회장기 대회 3학년부 단식에서 당당 우승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초등학생으로서는 어려운 ‘플릭’ 같은 고급기술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섣부른 얘기일지 모르지만 한국탁구는 또 한 명의 기대주를 만났다. 엄마 이진경 씨의 말이다.

“준성이가 워낙 탁구를 좋아해요. 간만에 쉬는 일요일도 아빠만 보면 탁구를 하러 가자고 졸라대죠. 덕분에 쉬지도 못하고 또 탁구를 하지만 아빠도 이젠 싫은 내색 없이 잘 쳐줘요. 준성이 꿈이 뭔지 아세요? 아빠가 못 딴 금메달을 자기가 따준다고 해요. 중국한테 져서 은메달만 많다는 걸 준성이도 알거든요.”
 

▲ (전주=안성호 기자) 빠르게 실력이 늘고 있는 준성이다. 한국탁구는 또 한 명의 기대주를 만났다.

종별대회 동시 출전은 사실 아빠 오상은의 희망 중 하나였다.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 도중 함께 출전하는 풍경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었다. 1년 만에 꿈이 실현됐고, 부자는 이제 또 다른 꿈을 얘기한다. 연말에 치러지는 종합선수권대회 동시출전이다. 그것도 각각의 팀이 아닌 ‘부자 복식조’로 공식 출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것. 준성이가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이라 출전이 가능하려면 대회 규정을 손질해야 하지만 탁구계의 기대어린 시선이 함께 하고 있으니 당장 올해부터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아빠는 규정을 보완하지 않아도 아들이 출전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선수생활을 멈출 뜻이 없으니 팬들이 조급해하지만 않는다면 곧 전에 없던 풍경을 ‘또’ 만나게 될 것이다.

“팀에서 아직 좀 더 뛰어주길 원해요. 체력적으로 이젠 좀 힘들긴 하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죠. 사실 이제는 제 선수생활보다 준성이 선수생활에 대해서 고민이 더 많네요. 이왕 시작했으니 국가대표도 하고 좋은 선수로 커야죠.”
 

▲ (전주=안성호 기자) 기간 중에 따로 포즈를 부탁했다. 부자의 '탁구 꿈'이 모두 이뤄지길 기원한다.

부자가 같이 출전한 제61회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아빠는 단체전 우승, 개인단식 4강, 개인복식 8강을 기록했다. 아들은 단복식 모두 3회전에 진출했다. 3학년이지만 단체전에서도 당당 주전으로 뛰며 팀의 8강에 일조했다. 초등부와 일반부 경기는 14일 모두 마무리됐고, 오상은-오준성 부자는 공식대회에 함께 출전한 첫 추억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준수한 결과를 만들었다. 이 추억은 앞으로도 함께 할 이 ‘특별한’ 부자의 탁구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실현되는 꿈! 아빠가 따지 못한 금메달을 자기가 따겠다는 아들의 꿈이 그 끝에서 실현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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