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살의 차세대 유망주!

지난 코리아오픈에서 우승한 서효원은 현 여자대표팀의 유일한 수비수다. 수비수들이 큰 역할을 해왔던 여자탁구로서는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커트 위주의 정통 개념을 넘어서는 공격형 수비수라는 점에서 서효원은 코칭스태프의 남다른 기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코리아오픈 우승의 흥분을 접고 세계대회 대비 훈련에 한창이던 지난달, 태릉에서 서효원을 따로 만났다.

▲ 이제 시작!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공격하는 수비수 서효원
  김경아도 박미영도 이십대 중반을 지나 태극마크를 달았다. 참 오랫동안 국제무대에서 한국탁구를 각인시켰다. 둘 다 수비수다. 그리고 서효원은 세대교체 완성단계인 현 한국 여자대표팀의 하나뿐인 수비수다. 이쯤 되면 수비전형의 숙명일까. ‘차세대’의 수식을 받지만 서효원의 나이는 벌써 스물일곱이다. 선배들처럼 20대 중반을 넘어서야 대표팀에 입성했다.
  수비전형 선수들은 동료들이 라켓을 놓을 시기를 고민할 무렵에야 ‘공이 오는 길’이 보인다고 말하곤 한다. 숱한 상대들의 회전을 견뎌오며 일종의 ‘달관’에 이르렀을 때 상대적 우위에 있는 체력을 바탕으로 늦게 꽃 피우는 경우다. 하긴, 30대 이후까지 에이스로 활약하던 선배들이 막 대표팀을 떠났고, 파릇파릇한(?) 이십대 서효원이 빈자리를 메우기 시작했으니 나이야 어쨌건 ‘유망주’가 맞긴 맞는 셈이다.
  ‘수비는 이제 그만’을 주문하는 팬들도 있다. 여자탁구 대표팀이 시원한 공격탁구를 펼쳐 보이는 모습을 본 지가 너무 오래 되긴 했다. 그러나 한국여자탁구에 있어서 수비수가 버텨주던 비중은 그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라예보의 정현숙이 그랬고, 80년대의 홍순화가 그랬으며, 최근까지의 김경아, 박미영이 또한 그랬다. 약해진 공격으로 대표팀이 빠진 딜레마는 공격수들의 문제지 수비수들 때문이 아니다.
  지난 코리아오픈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서효원이 일본의 ‘천재’ 이시카와를 꺾는 순간 많은 팬들이 환호했다. 오랜만의 승전보도 승전보였지만 서효원의 ‘공격 본능’에 팬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이 대회에서 서효원은 버티면서 실수를 유도하는 전형적 수비게임과는 다른 클래스를 보여줬다. 몇 구를 커트로 주고받다가 돌아서서 드라이브를 날렸다. 맞드라이브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비수의 ‘약한 공격’이 아닌 ‘공격다운 공격’이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 끈질긴 커트로 랠리를 지탱할 줄도 알았다. 세계 최강급 펑티안웨이(싱가포르)도 서효원의 질긴 커트와 위력 있는 드라이브에 허망하게 물러났다.
  세계적인 남자탁구 스타 주세혁을 떠올리게 했던 서효원의 화려한 플레이에서 팬들은 한국 여자탁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했다. 특유의 ‘공수균형’ 플레이는 커트만 가지고는 넘기 힘든 수비수의 한계도 극복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여자탁구의 중요 축을 이뤄왔던 수비탁구는 그렇게 스스로 진화하는 중이다. 딜레마에 빠져있는 한국 여자탁구는 수비수 서효원의 우승으로 또 한 번 큰 자극을 받았다.
  식상한 말이지만 서효원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늦은 나이에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특유의 관록을 무기로 하는 ‘수비수의 숙명’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 게다가 업그레이드 된 공격력을 장착한 신개념의 수비수다. 스물일곱 서효원은 한국 여자탁구 ‘차세대 유망주’다.

▲ 공격하는 수비수 서효원! 
▲ 코리아오픈은 인생 최고의 희열을 안겨준 대회였다. 우승 직후 환호에 답하는 서효원.

 ‘얼짱’ 탁구선수 서효원
  그렇다고는 해도 사실 ‘유망주’라는 표현은 잘못됐다. 국가대표로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도전에 나선다는 의미일 뿐 여자실업탁구에서 서효원은 이미 강자 중의 강자다. 실업 8년차 KRA한국마사회의 에이스다. 작년 최강전에서 마사회가 이뤄낸 대역전 우승은 서효원의 존재가치를 더욱 높였다. 2011년 종합선수권대회에서는 수비로는 32년 만에 단식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었다. 김경아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그런 서효원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유명세를 타면서 오해 아닌 오해를 사기도 했었다. ‘얼짱’으로 뜻밖의 스타덤에 올랐던 게 그거다. 2011년 코리아오픈 때 한 스포츠지의 적극적인 보도가 계기가 됐는데, 당시 시합도 이시카와와의 경기였으니 재미있는 인연이다. 어쨌든 ‘문제’의 백 커트 장면이 신문에 실린 이후 서효원은 ‘얼짱’ 탁구선수로 유명해졌다. 덕분에 서효원의 실력은 최근까지도 외모에 가려질 때가 많았다.
  하기는 꽃띠 처녀에게 그만한 찬사도 없다. 서효원 스스로도 그런 시선들을 즐긴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가끔씩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이나 미니홈피 같은 곳에 올리며 팬 관리도 한다. 작년에는 잡지 패션화보도 찍었다. 인상적인 것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운동을 게을리 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이 선수에게는 처음부터 해당되지 않았다는 것. 이 선수는 “탁구를 하고 있어서 그런 소리도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우려와는 반대로 ‘얼짱’을 더 열심히 운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삼을 줄 아는 서효원이다.
  가볍지 않은 속내는 그래서 또 믿음을 준다. 코리아오픈 우승의 흥분이 자만으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는 시선들도 있지만 서효원은 진작부터 차분해져 있었다. 이 선수는 “역전을 당하면서 무너질 수 있었던 시합을 관중 응원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강한 상대들과의 시합은 숱하게 기다리고 있다. 걱정과는 반대로 코리아오픈에서 위기를 극복하던 순간만을 가슴에 각인시키고 더 큰 도전을 준비할 줄 아는 서효원이다.
  사실 서효원의 선수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근화여고 시절 러버 교체 후 적응기에 찾아온 불의의 손목부상으로 슬럼프를 겪었고, 첫 실업팀 현대시멘트에서도 허리디스크와 러버 문제로 오랫동안 운동을 못한 적도 있었다. 현대시멘트가 해체되면서 마사회로 이적한 뒤에도 다시 핌플에서 페인트로 이면 러버를 바꾼 뒤 적응에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좀 더 일찍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이유다. 그런 와중에도 한 번도 탁구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는 서효원이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대범함과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은 이 선수의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솔직히 서효원은 예쁘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깊고 매력적인 외꺼풀을 가졌다. 치열한 승부세계에서 독하지 못한 외모가 걱정될 지경이다. 하지만 요즘은 외모가 예쁘다고 다 예쁘다고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니 ‘얼짱’이라는 소리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자신의 분야에서 남다른 성과를 낼 때 외모는 또 다른 의미에서 특수한 기반이 되는 세상이다. 서효원은 탁구의 인기가 높아지면 좋겠다고 말한다. 김연아처럼, 손연재처럼 서효원이 세계무대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탁구종목의 인기까지 확 끌어올려준다면 좋겠다.

▲ 카즈미와는 코리아오픈에서 만날 때마다 재미있는 인연이 만들어진다. 시상식장면.
▲ 글로벌스타 서효원! 일본에서 원정 온 응원단이다!

파리로 가는 서효원
  코리아오픈이 끝나자마자 서효원은 태릉선수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파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대비한 훈련 때문이다. 생애 최고였던 희열을 가족들과도 팬들과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지만 더 나은 대회, 더 나은 성적 이후로 모든 걸 미뤘다. 자신 있는 백 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포어 커트와 리시브 보완훈련에 온 힘을 쏟아 부은 서효원은 파리에서 어떤 성적을 기록할 수 있을까.
  비슷한 스타일의 탁구를 구사하는 남자선배 주세혁이 10년 전 파리에서 일으켰던 돌풍을 재연해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 해도 실망할 팬들은 없다. 말했듯이 서효원은 이제 시작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여자탁구의 중심에 있어야 할 선수다. 서효원도 그걸 안다.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바라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메달의 꿈은 서효원도 예외가 아니다. 선수로서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수비전형 선배들이 개척해놓은 전례를 따른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선배들을 능가하는 공격력을 감안하면 더 나은 기록들도 만들어갈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이 여자대표팀 김형석 감독의 평가이기도 하다.
  서효원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탁구부에서 나눠주는 쵸코파이 때문에 라켓을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 키가 지금과 비슷했다는 서효원은 큰 키 때문에 수비수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현재의 국가대표 서효원을 그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우연과 운명이 겹치며 역사는 만들어진다. 서효원이 파리에서 차후의 목표를 향한 탄탄한 발판을 만들어올 수 있다면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서의 출출함은 팬들이 전하는 쵸코파이만으로도 채우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몇 년 뒤 한 ‘노장선수’는 출발선에서 큰 힘을 제공했던 2013년의 코리아오픈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스물일곱 살의 차세대 유망주, 경기와는 또 다른 활력을 탁구계에 제공하기도 했던 이 대범한 얼짱 선수의 미래가 자꾸만 궁금해진다.
  “부모님, 효영이, 정필이 가족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나죠. 마사회 프론트 분들, 현정화 감독님, 박상준, 김복래 선생님,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후배들까지 팀 식구들 생각도 많이 나고요. 핑크깍신 회원분들께도 감사드려요. 코리아오픈 이후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부담감은 크지만 지켜보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생각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겠습니다.”

▲ 이게 바로 ‘얼짱’의 포스! 인터뷰 중인 서효원이다.
▲ 이제 시작! 뒤에 있는 메달리스트들의 전당에 내 모습도 걸리기를!

글_한인수 |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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