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단신> 기념일과 마케팅

몇 해 전부터 11월이 되면 거리에서 빼빼로데이를 축하하는 포스터들과 특별 패키지 상품을 진열해 놓은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빼빼로데이는 11월 11일, 막대 모양의 숫자 1이 네 번 겹친다 하여 ‘빼빼로처럼 빼빼해(날씬해)져라’는 의미로 긴 막대 과자를 선물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문화다.(빼빼로를 먹으면 수능을 잘 본다는 뜻에서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빼빼로를 선물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영남지역의 여중생들 사이에서 재미삼아 시작된 이런 문화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제과업계가 이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1997년부터였다.

 

숫자 1을 닮은 막대 과자.

현재 제과업계는 빼빼로데이로 톡톡히 득을 보고 있다. 어느새 빼빼로데이는 발렌타인데이보다 더 큰 대목으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연인들 사이에서만 초콜릿을 주는 발렌타인데이에 비해 빼빼로데이에는 친구나 연인을 비롯한 지인들 사이에서도 부담 없이 막대형 과자를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마트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발렌타인데이에는 평소보다 10배의 초콜릿이 판매될 뿐이지만 빼빼로데이에는 막대형 과자가 무려 84배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할 정도라고 한다.

1931년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한 산타클로스. 빨간 옷을 입혀 빨간 코카콜라 로고가 연상되게 했다.

최근 정체불명의 각종 기념일이 생겨나면서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더불어 이런 날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일들도 늘어났다. 한우데이(11월 1일), 삼겹살데이(3월 3일), 구구데이(9월 9일)뿐만 아니라 각 요일이나 날짜에 맞추어 할인율을 적용하는 마케팅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런 상술에 휩쓸리지 말자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겨울철에 줄어든 콜라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코카콜라가 만들어낸 캐릭터인 '빨간 옷'의 산타클로스를 생각해보면 그런 마케팅 전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비록 상업적 의도로 만들어진 캐릭터라도 산타클로스를 통해 갖게 된 훈훈한 추억을 떠올려보면 ‘마케팅에 놀아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빼빼로 데이도 마찬가지다. 이미 며칠 전부터 들썩이며 수십 배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는 제과업계는 어쩐지 꼴 보기 싫지만 빼빼로데이를 핑계 삼아 평소에는 애정을 나누기 힘들었던 지인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 날인가?

족보 없는 기념일이라도 좋고 기업의 장삿속이라도 좋다. 바쁜 생활 속에서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한 번쯤 살피고 그 소중함을 생각해볼 계기가 되어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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