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찾은 2020 도쿄, 후원 3박자 갖출 때 좀 더 밝은 미래”

▲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IOC위원)이 선수단 본진과 함께 귀국했다. 선수단과 함께.

2020 도쿄올림픽 일정을 마친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IOC 선수위원)이 9일 밤 한국선수단 본진과 함께 귀국했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 속에서 치러진 이번 대회는 그 자체로 힘들고 어려웠지만, 유승민 회장 개인적으로도 참 다사다난한 올림픽이었다. IOC위원으로서의 역할을 위해 개막보다 일찍 출국했지만, 도쿄 도착 직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전혀 예정하지 않았던 격리생활로 올림픽을 시작해야 했다. 격리가 끝난 뒤에는 그동안 하지 못한 활동을 두 배로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여러 종목들의 경기 현장을 직접 찾아 우리 선수들의 감동을 함께했고, IOC 멤버로서 수많은 회의에도 참석했다. 대회 막바지 무렵 열린 IOC선수위원회에서는 아시아계 최초로 IOC 선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당선되는 각별한 경사를 전하기도 했다. 조금은 핼쑥해진 모습에서 선수들과는 또 달랐을 고초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유 회장은 피곤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언제나처럼 밝고 적극적인 목소리로 모든 질문에 답했다.

귀국 현장에서 기자들과 나눈 문답을 게재한다. IOC 선수위원으로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을 기원한 그는, 대한탁구협회장으로서 우리 대표선수들의 분발과 탁구계의 협조를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 스포츠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올림픽이었다. 해단식 행사에서 근대5종 동메달리스트 전웅태 선수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유승민 위원.

▷ 올림픽이 마침내 끝났다. 소회를 듣고 싶다.
▶ 우선 선수들에게 너무너무 고생 많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엄청난 기쁨과 영광을 얻은 선수들도 있고, 아쉬움이 많이 남은 선수들도 있을 거다. 아쉬움이 남았다면 그 아쉬움조차 배움으로 삼을 수 있는 무대가 올림픽이다. 특히 이번 올림픽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너무 힘들게 준비했다. 이번 경험을 소중한 발판으로 삼아서 3년 뒤 파리에서, 더 나아가 그 뒤까지도 좋은 기량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를 바란다. 팬들도 계속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 개인적으로 특히 힘들게 시작했었는데….
▶ 입국할 때까지 꼬박 14일이 걸린 셈이다. 일본을 참 많이 다녔는데 이렇게 먼 나라인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웃음) 그러다보니 뜻밖의 유명세를 타버린 것도 사실이다. 많은 IOC위원들, 동료 선수들이 걱정해주고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왔다. 지금 최고 핫한 김연경 선수도 괜찮으냐고 안부를 물어왔을 정도다. 격리 중에도 마음은 선수들과 같이 있었고, 끝난 뒤에는 앞서 못한 것까지 더 많이 활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바흐 위원장도 나오자마자 바로 면담하고 하면서 많은 신경을 써주시더라. IOC위원 분들에게 “내성이 생겨 지금 제일 건강한 사람이다” 그런 농담을 하기도 했었다. 동료 선수위원들, IOC위원들, 선후배 선수들, 걱정도 신경도 많이 써주신 여러 분들 덕에 무사히 경기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 (인천=안성호 기자) IOC선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대한탁구협회와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관계자들이 나와 환영했다.

▷ 격리생활이 특별히 힘들지는 않았나.
▶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쉽지는 않았다. 공항 근처 말도 안 통하는 어떤 호텔에서 14일 동안 발이 묶였으니까. 밖으로도 나갈 수 없었고, 도시락이 오긴 하는데 다 식어서 차가운 상태로 먹는 적도 많았다. 일단 14일 동안은 청소가 안 되니까 카펫 같은 데 배어있는 공기도 좋지 않았다. 어쨌든 제 불찰로 생긴 일이고, 선수들한테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니까 될 수 있으면 조용하게 규정을 최대한 잘 따르려고 노력했다. 외부로 나갈 수는 없었지만 격리하면서 전화 등을 통해서 동료 선수위원들과 많은 소통을 할 수 있던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 IOC 선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어떻게 도전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 사실 선거에 나갈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부위원장을 한다고 신분이 크게 달라진다거나 집행위원회에 들어가고 그런다거나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나갈 필요가 있을까도 싶었다. 하지만 후배 선수들이 계속해서 도전하는데 나 또한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난 5년 동안의 활동에 대한 중간 평가도 받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평창올림픽부터 도쿄, 곧 있을 베이징까지 올림픽이 계속해서 아시아존에서 열리고 있지 않나. 제가 아시아 출신이니까 그런 면에서 아시아의 스포츠 상황을 좀 더 잘 대변하고 강화하고 싶은 목적도 있었다. 알다시피 위원장은 경쟁 선거를 통해 핀란드 출신 엠마 테르호 위원이 러시아의 이신바예바 위원을 투표에서 이겨 당선됐지만, 부위원장은 단독후보였으므로 선거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 격리 기간 중에도 위원들과 꾸준히 소통했다.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일하면 좋지 않은가. 앞으로는 좀 더 책임감도 커지고 더 바빠질 것 같다. 일이 보통 많은 게 아니더라.
 

▲ (인천=안성호 기자) IOC선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대한탁구협회와 국제스포츠전략위원회(ISF) 관계자들이 나와 환영했다.

▷ 선수위 부위원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 간단하게 말하면 위원장을 보좌하는 거다. 위원장은 IOC 집행위원회에서 선수위원회를 대표한다. 그리고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각각의 이슈나 특정 주제에 관한 위원들의 의견을 회의를 통해 듣고 하나로 수렴해서 각 NOC나 경기단체들과 연대를 꾀하기도 하는데, 부위원장은 현장에서 위원장이 선수위원회 입장을 보다 잘 대변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위원장이 자리를 비울 때는 위원장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거다. 여러 사항을 고려해도 언어적인 면도 더 완벽해져야 할 거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을 것 같다. 위원장과는 매주 한두 차례씩은 자주 전화를 하게 될 거다. 전 세계 선수들과 관련한 이슈는 경기를 통해서든 정치적이든 소셜미디어 상이든 매일 매일 일어난다. 매일 매일 대처를 해야 하는 거다. 각 나라마다 시간도 다르니까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엠마 테르호 위원장은 평창올림픽 때 위원으로 뽑힌 선수다. 지난 3년간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동했는데, 그런 모습이 위원들의 신뢰를 샀다. 나와는 나이도 같고 결혼 10주년도 같다. (웃음) 코드가 잘 맞는 편이다. 게다가 여성이고 동계종목이어서 주목도가 있다. 잘 보좌할 생각이다.

▷ 부위원장이 아시아계로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리우에서 IOC 선수위원이 됐고, 절반이 넘게 지났는데 지난 활동을 동료 위원들이 인정해준 결과 아닐까.
▶ 5년 전 리우에서 IOC 선수위원이 됐을 때 임기가 끝나는 8년 뒤에 어떤 평가를 받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런 대답을 했었다. 일 잘하는 위원, 열심히 하는 위원, 적극적인 위원이 되고 싶고,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벌써 5년이 지났는데 돌이켜보면 부족한 점이 더 많았지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적극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했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도 그런 믿음, 신뢰가 생기지 않았을까. 이제 3년 정도 임기가 남았는데 지금까지 이상으로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고 아시아계 부위원장이 처음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당장 이번 올림픽에서도 축하는 선수들이 받아야지 이건 번외의 일 아닌가. 그래도 발언권이 좀 더 강화된 건 사실이므로 우리 대한민국 스포츠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역할도 있지 않을까 한다. 보다 작게 보더라도 탁구종목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만 보더라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 (인천=안성호 기자) 올림픽 소회를 밝히고 있는 유승민 회장.

▷ 말나온 김에 대한탁구협회장으로서 탁구대표팀에 대해서도 격려를 부탁한다.
▶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선수들은 열심히 했다. 성적과 관계없이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준비했고 고생했다는 것을 안다. 팬들께서도 선수들에게는 지금이 끝이 아니니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와 박수를 보내주시면 좋겠다. 성적에 대한 비판은 저와 협회가 잘 듣고 겸허히 받아들여 고민하면서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탁구는 개인전 세 종목과 단체전까지 다섯 종목을 치렀다. 남아있는 아쉬움은 없는지.
▶ 결과적으로 혼합복식이 정말 아쉬웠다. 일본이 금메달을 땄다는 것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준비가 부족했다. 실제로 혼합복식은 유럽세도 강하지 않고, 중국도 한 조만 나오기 때문에 보다 집중하면 성적을 낼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다. 다음 올림픽 전략종목으로 삼고 지금부터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선수들이 다른 종목과 달리 단식, 복식, 단체전을 다 뛰기 때문에 혼합복식을 가장 안이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좀 더 명료한 메달 전략을 세우고 집중하면 좋겠다는 거다. 파트너를 빨리 찾아 묶어서 테스트도 하고 랭킹부터 시작해서 국제경험, 호흡까지 좀 더 철저한 관리를 해나갔으면 좋겠다. 당장 모레쯤 협회 내부 회의를 열고 이번 올림픽 결과에 관한 선택과 집중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한국탁구 미래 전략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준비해보려고 한다.

▷ 곧바로 국가대표 선발전도 이어지는데….
▶ 다음 달 아시아선수권, 11월 세계선수권, 내년엔 아시안게임도 있다. 말 그대로 ‘네버 스톱’이다. 대회는 계속되고 올림픽으로 끝이 아니다. 쉽지 않겠지만 선수들이 하나하나 차분하게 준비했으면 한다.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제일 먼저 ‘세대교체’ 얘기가 나오곤 하는데, 경험으로 알고 있듯 세대교체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선발전 방식과 관련해서도 여러 얘기가 있을 수 있지만, 각 대회마다 포맷이 다르므로 보다 신중한 접근을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ITTF가 세계대회에서 랭킹 상위 두 명에게 엔트리 우선권을 각 국가에 준다든가 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경쟁도 중요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게 있는데 오히려 역차별로 여겨질 수 있는 우려도 있을 것이다. 실제 당장 세계랭킹이 앞서 있는 것이 굉장한 강점일 수 있다. 다만 그만큼의 실력이 받쳐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맞다. 어쨌든 협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합리적인 정책을 세워 운영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심사숙고하고 있다.

▷ 마지막으로 다시 IOC 선수위원 입장에서 이번 올림픽 대한민국 스포츠에 대한 총평을 듣고 싶다.
▶ 앞서도 말했지만 이번 올림픽은 코로나-19로 인한 전례 없는 연기로 모든 종목 선수들이 준비과정부터 정말 녹록치 않았다. 선수들 모두에게 참가 자체만으로도 경의를 표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들게 준비하고 출전해서 최선을 다해 뛰어준 모든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미 많이 보도된 성적 외에도 우리 선수들은 많은 종목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새로운 희망을 안겨줬다. 특히 수영 황선우나 체조 여서정, 탁구 신유빈처럼 어린 선수들이 선전하면서 더 밝은 미래의 꿈을 선물해줬다. 선수들이 좀 더 성장하려면 후원의 3박자가 맞아야 한다. 경기단체의 노력, 기업의 후원, 국가의 정책 지원이 그거다. 특히 정책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전문선수를 키우는 시스템이 좀 더 구체화되면, 어린 선수들의 육성체계가 좀 더 견고해지면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으로 본다. 대한민국 스포츠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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