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동양 VS 서양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리처드 니스벳은 인간의 사고 과정은 보편적이기 때문에 문화와 상관없이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한 중국인 학생과의 대화를 통해 동양인과 서양인이 전혀 다른 인지 과정과 추론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여기 소개하는 그의 저서 ‘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는 그 의구심에서 시작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수 천 년 동안 전혀 다른 철학과 문화에 영향을 받아온 동양인과 서양인이 얼마나 다른 사고와 인지 과정을 가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살거나 홀로 살거나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6~3세기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그리스 전역에 흩어져 있는 극장을 찾아다녔다. 심지어 올림픽과 같은 이벤트가 시작되면 선수나 관중으로 참가하기 위해 전쟁마저 중지되곤 했다. 개인의 즐거움과 열정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고대 중국인의 여행은 명절에 친척을 방문하거나 결혼이나 장례같은 집안 행사에 참가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에게는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서 자기 몫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내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이었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이렇듯 서양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은 개인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보았다. 배를 타고 무역(정확히는 해적)을 하는 것이 주된 경제활동이었던 이들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문화, 새로운 생각을 접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그 속에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며 범주화시켜 이해하는 것은 일찍부터 체화된 것이었다. 이에 반해 중국인들에게 인간은 ‘사회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존재’였다. 진작부터 한곳에 정착하여 농경 생활을 해온 이들은 평생을 익숙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면서 그들과 공동 작업을 하며 살았고, 따라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타인과 나의 다름을 수용하면서도 보다 더 화목하고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 중요했다.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사는 동양인들은 자신을 전체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독립적인 사회에서 사는 서양인은 자기 자신을 전체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동양인들에게 성공과 성취는 자신이 속한 집단인 가족, 회사, 지역, 국가 등의 영광을 의미하지만, 서양인들에게 그것은 개인적인 업적이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 경기에서 메달을 땄을 때, 그 영광을 국가에 돌리는 동양인들과 개인의 성취에 도취해 기뻐하는 서양인들의 태도는 그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전체를 보거나 부분을 보거나

동양인과 서양인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서양인들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길 원한다. 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표현에 익숙한 동양인들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존재이길 원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인들이 개인의 특성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서양인들처럼 ‘특별’하거나 ‘독특’해야 하는 문화적 압박이 없을 뿐이다. 그 대신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평균’적인 ‘보통’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압박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서양인은 사물을 볼 때 그것들을 하나하나 분리하고 분류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동양인은 상호 관련성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물을 각각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한 서양인들이 자연을 인간과 분리해 객관적인 태도로 바라보면서 자연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동양인들에게 만물은 모두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다. 국가 지도자가 덕이 없으면 천재지변이 일어나기도 하고, 새옹지마(塞翁之馬) 이야기에서처럼 좋은 일은 나쁜 일을 불러오기도 하며, 음(陰)은 양(陽)이 있기에 존재한다. 자연은 인간과 하나이며 이 둘을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동양인은 서양인들보다 전체를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동양인들은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그 사건을 하나만 떼어놓고 생각하기보다 그 사건 이면의 수많은 일을 고려하게 된다. 실례로 4살과 6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한 실험에서 이들에게 하루 일과를 회상하게 했는데, 미국의 어린이들은 주로 자기 자신이 중심이었던 이야기들을 단편적으로 기술한 데 반해 중국 아이들은 그날 있었던 사소한 사건들을 보다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러한 성향은 어떤 사건이 있었을 때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사건의 맥락과 관련성에 대한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양과 서양, 충돌할 것인가 통일될 것인가

동서양이 이토록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게 된 근본적인 출발점을 서로 다른 생태 환경에서 찾는다. 앞서 언급한 대로 농업이 정착된 동양, 그중에서도 주로 쌀농사를 짓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관개 공사 같은 협동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고 이는 이웃과의 화합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었다. 하지만 농업보다 목축과 무역이 주된 경제활동이었던 서양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협동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 무엇보다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남들과 화목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종교, 과학, 문화, 인권, 국제관계 등의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다른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대의 사람들은 한 곳에서 평생 머무르는 일이 드물어졌고,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히며 사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혼합되고 충돌하는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에 동서양의 인식 체계와 사고방식 또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수많은 나라들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체제로 향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대부분 서구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에 동양인들도 점점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서양의 사고방식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양의 지속적 경제 발전과 이슬람의 인구 증가가 앞으로는 서구의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감소시킬 것이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근대화가 곧 서구화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근대화를 달성하면서도 자신들의 문화에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아도 경제 상황이 좋아질수록 지나친 서구화를 경계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물론 미래에는 동서양이 서로의 문화 차이를 수렴하고 결합하는 상태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서양인들은 점점 동양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는 동시에 서구의 개인주의가 초래하는 인간 소외라는 부작용의 해법을 동양의 공동체적 사고 속에서 찾으려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는 교육, 사회 분야에서 서구식 논쟁과 발상을 점점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동양의 상호의존적 특성과 서양의 독립적인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다. 어떤 특성이 더 부각되느냐에 따라 다른 문화적 특징을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미래 동서양의 사고방식과 문화는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는 동시에 가장 좋은 특성들이 모인 이상적인 결과물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리처드 니스벳, ‘생각의 지도(김영사)’ | 참고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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