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탁구를 믿고 뛰어라!”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의 영웅 안재형 전 대한항공 감독이 후배들을 응원하기 위해 인천아시안게임 탁구경기가 열리고 있는 수원체육관을 찾았다. 안재형 씨는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거주하며 골프선수인 아들 안병훈 군의 뒷바라지에 전념하고 있는 중이다. 마침 아시아권인 카자흐스탄에서 있었던 병훈 군의 시합 이후 짧은 공백 기간이 한국에서의 아시안게임과 들어맞아 경기장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됐으면서도 여전히 대부분 탁구생각을 하면서 지낸다고 웃은 안재형 씨는 “갓 도착했을 때는 아시안게임 열기가 예전만 못 한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경기장에 와보니 생각보다 관중도 많고 아직도 관심이 높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현장 열기가 이렇게 뜨거운데 외부에서의 분위기는 왜 조용한지 모르겠다.”며 아쉬워했다.

  대표팀의 후배선수들에 대해서는 “주세혁이나 이정우 같은 노장 선수들이 여전히 주전으로 뛰어야 하는 것이 안쓰러운 면도 있다. 그러면서도 이번까지는 또 잘해줬으면 하는 기대감을 버리기 힘들다. 후배들이 좀 더 빨리 올라와야 한다.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수원=안성호 기자)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안재형 씨. 후배들의 선전을 당부했다.

  예전 서울아시안게임 중국과의 경기를 돌이켜 달라는 질문을 하자 안재형 씨는 남다른 감회에 젖기도 했다. “당시는 오히려 더 지금보다 기대가 없는 노메달 종목이었다. 그런 속에서 우리끼리 뭔가 해보자는 생각으로 덤볐던 거다. 일본도 한 번 못 이겨봤는데 중국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죽자 사자 준비했다. 아무도 지려고 준비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시합이 시작되고 우리가 일본을 이기면서 상승세를 탔다. 그리고 중국마저 꺾었다. 정말이지 힘들게 열심히 준비했고, 경기장에서 다 보여주자는 각오로 덤볐다. 우리 기세에 응원이 더해지면서 중국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을 이길 때는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분위기를 타지 않으면 힘들다. 한국에서 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여기는 홈그라운드고 중국이 아무리 강한 상대라 해도 얼마든지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걸 믿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안재형 씨는 80년대 한국 최고의 탁구스타였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일본과 중국을 꺾고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는 데 핵심 주전이었고, 개인복식에서도 박창익 현 단양군청 감독과 함께 동메달을 땄다. 당시 중국과의 결승전 마지막 9단식에서 상대 후이준과 벌인 풀게임 접전을 승리로 장식한 뒤 코트에 벌렁 누워버리던 모습은 아직도 한국탁구사의 명장면으로 남아있는 기억이다. 누워버린 그에게 달려가 함께 엎어졌던 당시 대표팀 코치가 현재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강문수 총감독이다. 단체전에선 부진했지만 개인전에서 살아나며 금메달을 땄던 또 한 사람의 영웅이 현재 남자대표팀의 유남규 감독이다.
 

▲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은 80년대 탁구붐의 발단이었다. 누워버린 안재형 씨. 그리고 양영자-현정화 ‘환상의 복식조’. 사진 월간탁구DB.

  감동적이었던 당시 서울의 환희는 80년대 ‘한국탁구붐’의 실질적인 발단이었다. 안재형 씨는 또한 서울올림픽 직후인 1989년에는 중국의 탁구스타 자오즈민과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으로 결혼에 골인하며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주인공이다. 은퇴 후에는 실업팀 대한항공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했다. 한국탁구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 그 한복판에 있었던 안재형 씨는 후배 선수들에게 그래서 더욱 각별한 격려를 남겼다.

  “대선배인 주세혁부터 막내인 김동현까지 세대 차이가 좀 나더라. 하지만 마지막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선배부터 이제 막 발돋움하는 후배들까지 입장과 생각은 조금씩 다르다 해도 목표는 결국 하나다. 그게 스포츠며 탁구다. 침체기를 겪고 있는데다 지난 세계대회에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좌절감 같은 것도 생겼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탁구는 늘 어려움 속에서 뭔가를 이뤄내 왔다. 그동안 누구보다 힘들게 많은 준비를 해왔을 것이다.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그 준비와 노력들이 발휘될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목표에 연연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들, 준비한 과정들을 잘 떠올리면서 최선을 다해 싸워주기 바란다. 그게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다.”

  안재형 전 감독은 역시 경기장을 찾을 예정인 부인 자오즈민 씨와 함께 후배들을 응원한 뒤 29일 출국할 예정라고 한다.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짧아 아쉽지만 있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탁구인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한국탁구를 생각한다는 안재형 씨. 선배의 가슴 뜨거운 응원을 받은 후배 선수들이 그 바람대로 선전을 펼쳐주길 기원한다. 1986년 서울과 같은 환희가 수원체육관에서도 연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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