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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패스트푸드의 상징이 될 것인가라이벌 열전> 맥도날드 vs 버거킹
서미순 기자  |  redr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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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16  10: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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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어떤 사업에서든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꼽힌다. 따라서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을 개발해낸 사람보다 그것을 사업적으로 구상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더 큰 성공을 거둔다. 맥도날드 형제의 식당이 레이 크룩의 성공의 기반이 되고, 크래머와 번즈의 버거킹이 맥라모어와 에드거턴에게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준 것처럼 말이다.

 

최초의 패스트푸드

이 세상에 맥도날드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런 질문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맥도날드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식당이자 가장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는 식당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기업이 다 그렇듯 맥도날드의 시작도 평범했다. 창업자인 맥도날드 형제는 미 동부에서 성장한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극장을 운영했지만, 파산 직전에 이르게 되자 1937년에 ‘에어드롬’이라는 핫도그 판매점을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음식을 주문해서 픽업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 식당이었던 에어드롬을 통해 요식업에 자신감을 갖게 된 맥도날드 형제는 1940년에 캘리포니아 남부의 샌버너디노로 옮겨가 ‘맥도날드 바비큐’라는 식당을 오픈했다. 이곳은 큰 인기를 얻었지만, 정체기를 맞게 되자 1948년에 식당을 재단장하게 된다. 

식당 이름은 ‘맥도날드’로 줄이고 판매하는 음식의 종류도 줄였다. 음식 주문은 손님이 계산대에서 직접 하도록 했고, 식기류를 없앤 후 음식은 포장지에 싸고 일회용 컵과 접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획기적인 것은 조리 과정을 분업화하여 고객 앞에 음식이 놓이기까지의 시간을 크게 단축한 것이었다. 마치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 때 사람마다 정해진 업무만을 반복하는 것처럼 맥도널드의 주방에서는 고기 패티를 굽는 사람, 빵을 데우는 사람, 감자를 튀기는 사람이 따로따로 정해져 있었다. 이것이 바로 현대 패스트푸드 시스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맥도날드가 오늘날과 같은 성공한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거듭나게 된 뒤에는 밀크셰이크용 믹서기 영업 사원이었던 레이 크룩이 있었다. 맥도날드라는 식당에서 평균보다 많은 믹서기 주문이 들어오자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던 크룩은 직접 매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새로운 식당 경영 방식을 접한 그는 맥도날드 매장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을 구상하고 맥도날드 형제를 설득해 프랜차이즈 경영권까지 얻어냈다. 하지만 맥도날드 형제는 점포 수를 확장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이미 몇 개의 분점을 낸 경험이 있었던 그들은 음식의 품질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맥도날드 형제와 크룩은 갈등을 겪기 시작했지만 이미 프랜차이즈 경영권을 얻어냈던 크룩은 1955년 4월 15일, 일리노이주에 있는 데스 플래이니스에 맥도날드 1호점을 정식 오픈하게 된다. 그리고 불과 4년 만에 위스콘신에 100번째 매장을 열기에 이른다. 크룩은 결국 1961년에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맥도날드 사업권을 완전히 인수했고 이듬해부터 현대 맥도날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노란 아치형의 M자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부터는 승승장구였다. 맥도날드를 개업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햄버거 대학’을 설립해 교육하기 시작했고, TV 광고를 통해 전국적인 홍보도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에는 맥도날드의 대표 메뉴인 ‘빅맥’을 선보임과 동시에 최초의 해외지점까지 문을 열었다. 세계 각국의 도시로 맥도날드 매장이 퍼져 나가자 1986년에는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빅맥 지수’라는 것을 고안해내기도 했다. 이는 여러 나라의 맥도날드에서 판매하는 빅맥의 가격 비교를 통해 각국의 통화가치의 적정 수준을 살펴보는 데 활용된다. 
 

맥도날드를 모델로 삼다

플로리다에서 드라이브 스루 레스토랑을 하던 매튜 번즈는 샌버나디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맥도날드를 보고 자신의 조카사위인 케이스 크래머와 동업으로 1953년에 ‘인스타 버거킹’이라는 식당을 개업한다. ‘인스타’는 자신들이 사용권을 인수한 패티 굽기 전용 그릴의 이름에서 따왔고 ‘버거킹’은 말 그대로 ‘버거의 왕’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이었다. 인스타 버거킹은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지만 곳곳에 가맹점을 늘려가며 조금씩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한편, 맥도날드의 성공에 영감을 받은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제임스 맥라모어라는 인물이다. 그는 맥도날드 형제의 레스토랑을 방문한 후, 패스트푸드 사업이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코넬 대학교의 동기인 데이비드 에드거턴을 설득해 버거킹의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따낸다. 당시 인스타 버거킹의 프랜차이즈 계약은 특정 지역의 사업권을 판매하는 형식이었는데 자신이 계약한 지역 내에서는 마음껏 매장을 늘리도록 한 것을 포함해 많은 자율권을 보장하고 있었다. 맥라모어와 에드거턴은 마이애미의 사업권을 따내 1954년에 첫 매장을 열었고 이후 마이애미의 곳곳으로 매장 수를 늘려갔다. 하지만 자율권이 있었던 만큼 플로리다의 인스타 버거킹과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고장이 잦았던 인스타 그릴을 버리고 직화 방식을 사용해 패티의 육즙을 살려주는 새로운 그릴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식당의 이름은 인스타가 빠진 버거킹이 되었다. 버거킹의 시그니처 버거인 와퍼도 이즈음 만들어졌다. 마이애미 1호점 주변의 다른 패스트푸드점보다 매력적인 햄버거를 선보이고 싶었던 맥라모어는 1957년에 패티와 빵 모두가 이전보다 커다란 햄버거를 출시했고 와퍼(whopper, 엄청 큰 것)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가격은 보통의 햄버거보다 두 배 이상 비쌌지만 ‘제값을 한다’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사람들은 그 푸짐함에 만족했다.   

 

   
 



1959년경, 마이애미에서 새로운 메뉴를 도입하고 매장을 늘려가며 실적을 쌓아가던 버거킹과는 달리 플로리다의 인스타 버거킹이 경영악화로 도산 위기에 빠져버렸다. 이에 맥라모어와 에드거턴은 인스타 버거킹을 통째로 인수했고 회사 전체의 상호도 이때부터 버거킹만 사용하게 된다. 또한, 모든 버거킹 매장에서 패티를 굽던 인스타 그릴을 버리고 오늘날까지도 버거킹 햄버거의 상징으로 통하는 직화 방식을 도입하게 된다. 이후 버거킹은 가맹점을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 덕분에 인수할 당시 40여 개에 불과했던 매장 수가 1967년에는 미국 전역에 274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맥라모어와 에드거턴은 그 해에 이렇듯 성공한 버거킹을 제빵제과전문 대기업인 ‘필스버리’에 1,800만 달러에 매각하게 된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의 햄버거 전쟁

프랜차이즈 사업 초기의 맥도날드는 저렴한 권리 사용료 때문에 본사 이익이 너무 적었다. 이에 본사가 매장이 들어설 땅을 먼저 매입한 후 그 자리에 들어서는 가맹점으로부터 부동산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사용료를 지급하게 했다. 이로 인해 본사의 이익이 늘어난 것은 물론 부동산 매입 전 정확한 상권분석을 했기 때문에 맥도날드 매장은 언제나 성공적인 영업 수익을 올리게 된다. 버거킹의 경우는 맥라모어와 에드거턴이 마이애미 사업권을 취득한 것처럼 가맹자가 특정 지역의 사업권을 따내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매장의 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맥도날드의 후발주자였음에도 4년이나 먼저 최초의 해외 매장을 열었을 정도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햄버거라는 동일한 메뉴로 경쟁을 하는 라이벌 회사다. 이들이 서로를 견제하기 시작한 것은 보통의 햄버거보다 고가임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와퍼의 기세에 맥도날드가 3겹의 빵에 패티를 2장 넣은 빅맥을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빅맥은 1967년에 출시되어 1년 만에 50억 개가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고 맥도날드와 빅맥은 미국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두 기업은 지금껏 서로를 비방하거나 비교하는 광고전으로 대대적인 전쟁을 치렀다. 지난 2013년에는 케첩으로 유명한 회사 하인즈의 CEO 자리에 버거킹 출신의 인재를 등용하자 맥도날드가 40년 동안 사용해온 하인즈 케찹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을 정도다. 

 

   
▲ 맥와퍼 캠페인.


하지만 2015년 8월 25일에 미국의 신문에는 색다른 버거킹의 광고가 실렸다. 오는 9월 21일, UN이 정한 평화의 날을 기념해 빅맥과 와퍼를 합친 맥와퍼를 만들어 팔자고 공개적인 제안을 한 것이다. 거기에 두 브랜드의 디자인이 반씩 섞인 포장지와 유니폼 디자인은 물론 두 본사 중간 지점인 애틀란타에 팝업 매장을 열자는 구체적인 구상과 수익금 기부 계획까지 공개했다. 소비자들은 열광했지만, 맥도날드 측은 점잖은 거절과 함께 다음엔 공개적인 방식보다는 미리 상의를 부탁한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사실 이는 버거킹의 지능적인 마케팅 캠페인이었지만 사람들이 언젠가는 맥와퍼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평화는 그리 쉽게 오지 않지만 어쩌면 올해 8월 25일, 햄버거 시장의 평화와는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월간탁구 2018년 4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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