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아이작 아시모프 VS 필립 K. 딕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으로 쓰인 SF 소설은 가장 많이 영화화되는 장르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SF 소설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영화를 통해 많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할리우드가 특별히 사랑한 SF 소설가들이 있다. 바로 아이작 아시모프와 필립 K. 딕이다.

 

자신감 넘치는 천재 과학도, 아이작 아시모프

러시아 페트로비치에서 태어난 아이작 아시모프(1920~ 1992)는 3살 때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 브루클린에서 성장했다. 아시모프의 부모님은 그곳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며 자녀들에게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제공했지만, 툭하면 상점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SF 잡지나 들춰보는 아들의 행동은 못마땅했다. 엄격한 유대인 아버지에게 SF 잡지란, 허황된 이야기들이나 늘어놓는 쓸데없는 물건이었다. 아버지는 아시모프가 이런 책들에 빠지지 않도록 도서관 대출 카드를 만들어주며 다른 책들을 읽도록 유도했지만, 어린 아들은 SF 잡지에 ‘과학’이란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교육적인 책이라는 논리로 아버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아버지가 만들어준 대출 카드는 아시모프에게 폭넓은 독서를 하도록 해주었고, SF 잡지는 과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선사해 준 셈이다.   

 

▲ 아이작 아시모프와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바이센테니얼맨’, ‘아이, 로봇’의 포스터.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던 아시모프는 월반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5세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의학을 공부할 예정이었지만 동물 해부 수업을 경험하며 의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화학으로 전공을 변경하게 된다. 아시모프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의 일이었다. 즐겨보던 SF 잡지에 감상문이나 습작 소설을 투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때마침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이 된 존 W. 캠벨(SF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으며 편집자로서 수많은 SF 작가를 발굴한 인물)은 그런 아시모프에게 지도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마침내 1939년에 ‘진공 표류’라는 단편 소설을 잡지에 게재하며 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아시모프가 대중적 명성을 얻게 된 작품은 1941년에 발표한 ‘전설의 밤’이다. 태양이 여섯 개나 되어 밤이 없는 한 행성에 2050년 만의 일식과 함께 어둠이 찾아오자 난생처음 밤을 경험하게 된 사람들이 혼란과 공포에 휩싸여 빛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일군 문명에 불을 지른다는 이야기다. 아시모프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쓰게 되었다는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당시로는 생소했던 지능을 가진 ‘로봇 ’시리즈다. 특히 로봇 시리즈를 통해 아시모프가 만든 그 유명한 ‘로봇 3원칙’을 만날 수 있다(①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며, 인간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방관해서도 안 된다. ② 로봇은 첫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이 내린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③ 로봇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아시모프의 소설들은 이후 수많은 SF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특히 앞서 말한 지능을 가진 로봇의 존재는 우리에게 익숙한 만화 영화인 ‘아톰’은 물론 SF 영화인 ‘스타워즈’,  ‘스타트렉’, ‘터미네이터’ 등에 영향을 미쳤다.


정서 장애의 몽상가, 필립 K. 딕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필립 K. 딕(1928~1982)은 예정일보다 6주나 빨리 태어난 쌍둥이 미숙아였다. 그러나 함께 태어난 누이는 출생 한 달 만에 영양 실조로 세상을 떴고 그는 평생 죽은 쌍둥이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부모가 이혼한 10대 초반부터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기숙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공황 장애, 광장 공포증 등을 겪으며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다.  

당시 대부분의 SF 작가들이 그렇듯 딕 역시 여러 가지 SF 잡지를 읽고 수집하면서 과학과 소설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며 SF 잡지에 기고를 시작한 것은 20대부터로 1951년에는 ‘판타스 앤드 사이언스 픽션’지에 단편 소설 ‘루그’를 게재하며 데뷔했고 출판 에이전시와 계약까지 하게 된다. 이후 여러 단편 SF 소설을 발표하며 조금씩 이름을 알려갔지만 어릴 때부터 그를 괴롭혀온 공황 장애와 광장 공포증이 재발한 데다가 각종 공포증, 우울증 등의 정서 장애가 그를 좀먹기 시작하자 약물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약물 남용의 부작용으로 환각이나 망상을 자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1952년부터 3년간 90편의 단편을 써서 SF 잡지에 투고했고 1955년에는 자신의 첫 장편 SF 소설 ‘태양계 제비뽑기’를 발표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했다. 
 

▲ 필립 K. 딕과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포스터.


흥미로운 것은 딕이 오랜 세월 자신을 괴롭혀온 여러 정서 장애의 경험들을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사실이다. 그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런 주인공들은 언제나 거대권력, 전체주의, 음모론 등으로 상징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현실의 붕괴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딕은 통속적인 SF 소설의 소재인 우주, 외계인, 초능력, 로봇 등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사회적, 정신적 혼돈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할리우드가 사랑한 소설가들

보통 1930~40년대를 SF 소설의 전성기로 꼽는다. 2차 세계 대전이 계속되고, 과학이 비약적인 발달을 하던 이 시기의 사람들은 SF 소설로 새로운 미래를 꿈꿨다. 어떤 소설은 희망찬 앞날을 그리기도 했고 또 다른 소설들은 기술의 진화가 불러올 인간의 퇴화를 우려하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 탄생한 SF 소설의 인기는 대단했고 작가들 역시 유명세를 누렸다. 필립 K. 딕은 물론 아이작 아시모프를 포함해 3대 SF 작가로 손꼽히는 아서 C. 클라크와 로버트 A. 하인라인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작 아시모프와 필립 K. 딕의 작품들이 현재까지도 자주 언급되고 영화화되는 이유는 이들의 소설이 현대인에게 많은 사유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상에 출판된 모든 서적은 도서관에서 사용되는 도서 분류법에 의해서 10개 분야 중 하나로 분류된다. 아시모프는 SF 작가로 유명하지만 ‘철학/심리학’ 분야를 제외한 9가지 분야에 작품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놀라운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탄탄한 지식을 참신한 아이디어와 결합시키며 특유의 SF 소설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사물에 가까운 ‘로봇’이라는 것에 인격과 감성을 부여하면서 로봇의 개념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고 이는 현대 로봇 공학(Robotics, 로봇 공학이라는 말도 아시모프가 처음 만든 말이다) 연구가들에게도 여전히 화두가 되고 있다. 

자칭 타칭 천재였던 아시모프에 비해 필립 K. 딕은 소심하고 불안정한 정서 장애자다. 그러나 그는 현재 가장 사랑받는 SF 소설가다. 그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현실과 환상의 괴리, 평범한 주인공과 그런 그를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거대 권력 간의 갈등, 그리고 그 안에서 존재론적 갈등에 휩싸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딕의 SF 소설은 가장 많이 영화화(블레이드 러너, 런닝맨, 토탈리콜, 마이너리티리포트 등) 되었으며 그의 소설 속 클리셰 또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월간탁구 2018년 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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