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실크로드 VS 일대일로

실크로드는 서양을 궁금해한 동양인들과 동양을 꿈꿨던 서양인들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개척된 길이었다. 그런 호기심과 모험심이 만들어낸 험한 실크로드와는 달리 신(新)실크로드라고 불리는 일대일로는 중화주의의 부활과 경제 성장을 위해 만들어지고 있다. 일대일로는 동서양을 이어주는 단순한 길로서의 의미가 아닌 훨씬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실크로드, 동서 문명의 고속도로

우리가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길이 있다. 고대 중국과 서역을 횡으로 연결하고 있는 이 길은 비단, 도자기, 향신료 등의 다양한 물건들은 물론 종교, 철학, 기술 등의 문화가 오가던 중요한 통로였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처음 쓰인 것은 불과 130년 전으로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연구하던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만들었다. 당시 주 교역품이 비단(실크)이었던 것에 착안해 실크로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후 많은 사람의 연구를 통해 중국의 교역망이 인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중해 인근의 시리아는 물론 터키 이스탄불과 이탈리아 로마까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현재 실크로드는 중국 중원지방에서 시작되어 지중해까지 이르는 복잡하고도 거대한 교통망의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서역을 향해 가는 수만 갈래의 길 중에서도 3개의 간선(초원길, 오아시스길, 바닷길)과 5개의 지선(마역로, 라마로, 불타로, 메소포타미아로, 호박로)을 가장 중요한 길로 꼽고 있다.  

길이란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실크로드가 만들어진 시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 넓은 의미에서는 약 1만 년 전의 홍적세 시기에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되면서 유라시아 대륙에 생긴 몇 갈래의 길을 실크로드의 시작으로 보기도 하지만 각종 문헌과 교역품의 흔적들을 통해 기원전 8~7세기부터 교역로의 기능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실크로드를 지나는 상인들의 모습이 그려진 돈황 석굴 벽화.


가장 오래된 실크로드이자 육로인 초원길은 한나라 이전까지 주로 사용되었는데 흉노족이 성장하면서 초원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교역품을 약탈하고 이를 직접 팔아 수익을 올리는 일이 잦아지자 새로운 길을 개척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수천 갈래의 실크로드 중에서도 심장이라고 불리는 오아시스길이다. 북방 초원지대를 횡단하는 초원길과는 달리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며 군데군데 자리한 오아시스를 거쳐 가는 이 길은 이후 동서 교류의 가장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었다.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무시무시한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을 통과하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막상 길이 개척되자 동서 교류의 주요 통로로 자리 잡았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끝에서 만나는 파미르 고원 또한 서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기원전 2세기, 전한의 장건(?~BC114)에 의해 개척되면서 서역으로 향하는 완전한 루트가 완성된다. 이 길을 통해 중국의 비단, 도자기, 차는 물론 종이, 화약 등을 만드는 기술이 서역으로 전파되었고, 서역의 유리 공예, 말, 후추 등이 중국으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이후 16세기에 항해술의 발달과 함께 대항해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오아시스 길은 오랫동안 가장 중요한 교역로였다. 

서기 1세기 무렵부터 개척되기 시작한 바닷길은 배를 타고 중국 남부에서 시작해 동중국해, 인도양, 페르시아만을 지나 홍해를 거쳐 중동과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은 물론 아프리카 동부 연안의 여러 나라를 만날 수 있는 항로였다. 무엇보다 배를 타고 가는 바닷길은 대량 수송이 가능해 중국의 많은 도자기가 서구로 수출되었는데 지금도 당시에 오가던 선박들이 침몰한 잔해에서 도자기를 흔하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일대일로, 단순 무역로가 아닌 세계화 사업

2013년 가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순방하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 전략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신(新)실크로드 전략이라고도 불리는 일대일로 사업은 육지로 연결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일대)’ 계획과 해상 기반의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일로)’ 계획, 두 가지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일대일로를 과거의 실크로드처럼 무역과 문화의 통로가 되는 길이라고로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 일대일로는 60여 개가 넘는 참여국 간의 물류, 인프라, 에너지, 문화, 금융 등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거대한 사업이며 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 일대일로 추진 계획 지도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 이후 새로운 국제금융기구인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를 출범시키기도 했는데 이를 일대일로 사업을 본격화시키기 위한 여러 일환 중 하나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IMF, 세계은행을 비판하고 그 대안임을 선언하며 AIIB를 출범한 만큼 이를 통해 세계 금융권의 영향력을 중국이 일부 가져오면서 이를 일대일로 사업과 연동,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일대일로를 통해 주변국들을 이익 공유의 운명공동체로 엮고 국제 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중국의 의도는 사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중국의 목적은 중화주의(中華主義, 중화문화 중심 사상) 부활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청나라 말기 서구 열강에 의해 중국인들의 이념이나 다를 바 없었던 중화주의는 누더기가 되었지만, 이후 중국인들은 그 이념을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으니 말이다. 실제로 중국은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활발한 교역을 하고 융성했던 ‘강한성당(强漢盛唐, 강력한 한나라, 번성한 당나라)’ 시대처럼 일대일로를 통해 또 한 번의 강력한 중국을 꿈꾸고 있다. 

2049년 완성을 목표로 하는 일대일로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마치 왕복을 하는 것에만 3년이 걸렸던 과거의 실크로드처럼 수많은 변수로 인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하기 힘들다. 당장 물리적으로만 봐도 육로가 지나게 될 수많은 분쟁국들이나 바닷길의 제해권 확보 등이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다. 거기에 부활을 꿈꾸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국가들의 방해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나라도 중국의 미래 비전 사업인 일대일로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한반도의 상황으로 인해 일대일로의 중심권으로 들어가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무역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으로서는 일대일로에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이는 일대일로가 우리나라가 또 한 번 성장하는 동력으로 활용될 수 있는 높은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월간탁구 2018년 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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