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탁구연맹(ITTF) 신한금융 2019 코리아오픈, 4강전 마롱에 석패

마롱(중국, 세계5위)이 괜히 ‘탁구 몬스터’로 불리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어제까지도 컨디션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거짓말처럼 본연의 모습을 회복했더군요. 하필 정영식(미래에셋대우·27, 세계18위)과의 4강전에서 말이죠. 세계선수권대회 남자단식 3연패, 월드투어 통산 최다우승(28회)의 주인공은 대회 마지막 날인 7일 첫 경기로 열린 남자단식 4강전에서 한국의 희망으로 남아있던 정영식에게 완승을 거두고 결승으로 갔습니다. 포어백 빈틈없는 공격력은 그야말로 ‘최고’라고 할 만했습니다.
 

▲ (부산=안성호 기자) 정영식 선수가 개인단식 3위로 대회를 마감했습니다. 경기장에 입장하던 모습입니다.

전날 판젠동(중국, 세계3위)을 꺾고 날아올랐던 정영식으로서는 아쉬운 승부였습니다. 한 대회에서 중국의 탁구선수들을 연이어 이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실감할 수밖에 없었던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정영식도 나쁘지 않은 플레이를 펼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1대 4(7-11, 11-5, 7-11, 6-11, 9-11)의 스코어는 일방적이었지만 랠리마다 치열한 접전을 벌였죠. 특히 세계 최강의 포어핸드 공격력을 보유한 마롱의 포어코스를 꿰뚫는 카운터펀치는 압권이었습니다. 모든 경기를 ‘공부’로 생각한다는 정영식 선수, 이제 이번 국제탁구연맹(ITTF) 신한금융 2019 코리아오픈은 끝났고 또 ‘새로운 시작’만 남았습니다. 정영식 선수의 얘기를 다시 들어보시죠(사진 안성호 기자).
 

 
 
▲ 경기 전 루틴입니다. 복기를 위한 비디오 설치하고, 영양제 먹고, 김택수 감독과 작전!

▷ 4강전 조금 아쉽게 끝났는데 소감을 들어볼까요.
▶ 네, 이번 코리아오픈 한국 선수들 경기는 다 끝났습니다. 이번 대회는 무엇보다도 관중도 많이 오시고, 응원도 열심히 해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탁구뿐만 아니라 제 인생에도 크게 기억에 남을 대회가 된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4강전에서 비록 졌지만 아쉬워하기보다 열심히 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 열심히 싸웠습니다. 1, 2게임을 주고 받으며 초반에는 팽팽한 균형을 이뤘습니다.

▷ 초반 두 게임에 비해 후반부에 조금 경기력이 처지는 모습이었습니다.
▶ 이번 대회 전에 있었던 일본오픈에서도 마롱과 경기했고, 그때는 앞서가다가 3대 4로 졌어요. 일본에서도 마롱이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가 일본에서보다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나섰는데, 마롱의 완벽한 경기 운영에 많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 특히 마롱의 포어코스를 꿰뚫는 카운터펀치는 압권이었습니다.

▷ 그래도 어제 경기 판젠동을 이긴 것은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오늘 경기도 그렇고요.
▶ 판젠동이나 마롱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세계 최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이 보고 있고, 배우고 있고, 또 이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나름대로 성과가 있어서 자신감이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 판젠동에게도 6전 전패를 하다 이겼고, 마롱에게도 대등한 랠리를 하는 모습이어서 정영식 선수가 많이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중국과의 차이가 좀 줄었다고 생각하나요?
▶ 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고, 리우올림픽 이후부터 외국 선수들이 중국 선수들 한 번씩 이기는 경우가 증가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이나 유럽 선수들 다 올라왔기 때문에 모든 나라 선수들이 승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경기하는 것 같아요.
 

 
▲ 마롱은 마롱이었습니다. 완벽한 경기력을 보였습니다.

▷ 리우올림픽 때 화제가 됐다가 이번 대회에서 모처럼 기사도 많이 나오고 하는데 어때요?
▶ 사실 이전까지는 저 개인적인 부나 명예를 위해 운동했다면, 리우 올림픽 이후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한국탁구는 올림픽에서 늘 메달을 따왔는데 당시 성적을 내지 못해 매우 많이 죄송했어요. 그런데 비난이 아니라 사랑을 굉장히 많이 주셨거든요. 저 개인적인 욕심뿐만이 아니라 성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동을 드릴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 충분히 잘했습니다. 코리아오픈 남녀단식 4강 진출자 8명 중에 유일한 비중국선수입니다.
▶ 관중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입니다. 감독, 코치 선생님도 많이 도와주셨고, 자원봉사자 분들도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따뜻하게 응원해주시니까 큰 힘이 됐습니다. 그게 좋은 성과로 이어진 것 같아요.
 

 
▲ 결국 패배하고 아쉬움을 곱씹은 정영식 선수입니다.

▷ 내년 세계선수권대회가 이곳 부산에서 열립니다. 감회도 남다를 것 같은데요.
▶ 네, 외국 오픈대회 자주 가봐도 지금보다 관중이 많았던 적은 많지만 이번만큼 크게 응원을 해주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부산의 관중은 정말 힘이 있고 기가 있어요.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그 기로 힘을 많이 받고 싶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결과적으로 중국이 예전보다 압도적인 경향은 좀 적어진 것 같은데 다른 나라의 기량이 올라선 걸까요? 중국의 경기력이 떨어진 걸까요?
▶ 제 생각으로는 전체적으로 상향 평준화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들이나 코칭스태프 선생님들께 듣기로 예전에 프로리그가 없을 때는 중국도 가끔 넘어가고 했었다는데, 중국에 슈퍼리그가 생기면서 압도적인 차이가 벌어졌답니다. 그런데 최근 유럽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도 리그가 활성화되면서 다시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거죠. 저나 (이)상수 형이나 (전)지희도 유럽 리그 다니고, 일본 리그 가고 하면서 경험을 쌓다 보니까 조금씩 더 올라서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근 취임한 유승민 회장이 프로리그 출범을 강조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요?
▶ 실은 제가 현역 중에 외국 리그를 제일 많이 뛴 선수입니다. 저는 프로리그에서 엄청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탁구 기본기는 고교 졸업 전에 끝난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는 경험, 체력, 심리 이런 건데 리그를 뛰면서 쌓는 경험이 정말 큰 도움이 되죠. 많은 관중에 호응하고, 부담을 느끼고, 상대 팀 가면 상대 응원에 대한 심적 부담도 이겨내야 하고, 많은 선수들과 싸우면서 전술도 다양해지고요. 심리 기술 전략 다 올라가기 때문에 무조건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 마롱과의 인사.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는 의지가 눈빛에 서려 있지 않나요?

▷ 올림픽 날짜 세고 있던데 어제보다 하루가 줄었네요.
▶ 어릴 때부터 항상 대회 전에 D데이를 적어놓고 하는 편인데, 이번 올림픽은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간절합니다. 나중에 정말 ‘더 열심히는 못 하겠다’ 할 정도로 후회 없이 준비하고 싶습니다. (늘 그렇게 하는 선수 아닌가요?) 그 정도 해서는 10등은 갈 수 있어도 1등은 못하겠더라고요. (웃음) 결국 목표는 금메달이죠. 이번 대회에서는 나름대로 변화를 주면서 했는데 그게 통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마롱은 워낙 강한 선수였고 열심히 했으므로 후회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대회 다 '공부'라고 생각하고 금메달을 향해 뛰겠습니다.

▷ 남자대표팀 분위기가 매우 좋아 보입니다.
▶ 아직 올림픽에 누가 나갈지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도 그렇고요. 나가고 싶지만 서로 누가 가더라도 잘하자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더 잘하는, 더 노력하는 선수가 있으면 당연히 가야죠. 그런 선의의 경쟁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우리 대표팀 강점은 서로의 기술에 대한 장점을 숨기지 않고 공유한다는 겁니다. 상수 형도, (장)우진이도, 그리고 저도 서로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판젠동 이긴 다음에 장우진 선수는 뭐라던가요?
▶ (웃음) 카드 가져오라고, 한 턱 쏘라고….
 

▲ 감독님께 가서는 허탈한 표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 이번 대회 공언했던 두 목표(판젠동, 마롱) 중에서 하나는 성공했고, 하나는 실패했네요. 남은 목표는 이제 어떻게 준비해갈 생각인가요?
▶ 앞으로도 이기는 날도 있고, 지는 날도 있을 텐데 올림픽 전까지는 좌절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전에는 좌절도 많이 했는데, 좌절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잘 될 때 나태해지고, 안 될 때 좌절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뺏기지 않고 올림픽까지 한 곳만 바라보면서 탁구실력을 늘리는 데만 집중하겠습니다. 올림픽 때도 그렇고, 이번 대회에서도 주변에서 잘했다고 해주시는데, 감사하지만 실은 저는 한 번도 최고를 이룬 적이 없습니다. 당장의 결과에 만족하거나 아쉬워할 게 아니라 저의 전성기가 앞으로 다가올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세계 최고를 2020년 때 한 번 찍어보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팬서비스도 완벽한 정영식 선수입니다.

'성실한 랠리의 대명사'로 통하는 정영식 선수의 코리아오픈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더불어 한국 대표팀의 경기일정도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이제 이번 대회는 중국 선수들끼리의 결승전만 남았네요. 남자는 장지커가 빠진 두 ‘3인방’ 멤버 마롱과 쉬신(세계1위)이 결승전을 벌이고, 여자는 딩닝, 쑨잉샤, 첸멍, 왕만위까지 네 ‘차이니즈’가 4강전을 벌이는 중입니다. 중국 일색의 최종전에서 벗어나는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해봅니다. 이왕이면 그게 내년에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여도 좋겠네요.

참, 현재 국내에서는 미래에셋대우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는 정영식 선수는 다음 달 소속팀이 바뀝니다. 8월 26일에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하기 때문이죠. 정영식은 “상무에서 좋은 활약을 했었던 (주)세혁이 형이나 (이)상수 형처럼 군에 가서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좌절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정영식 선수의 노력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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