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탁구연맹(ITTF) 2019 부다페스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안재현(삼성생명, 20)의 8강 돌풍에 가렸지만,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한국 남자대표팀에는 역시 생애 처음으로 출전해서 나름의 성과를 수확한 선수가 있다. 왼손 셰이크핸더 박강현(삼성생명, 23)이다.

1996년생으로 올해 실업 5년차에 접어든 박강현은 조금 늦게 국가대표가 됐지만, 국내 실업무대에서는 이미 최강자 대열에 서 있는 선수다. 2015년 종합선수권자다. 이번 대표팀에는 세 차례 토너먼트로 진행한 선발전 1라운드를 빠르게 우승하며 합류했다. 그리고 첫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주목할만한 플레이를 펼쳐 보이며 ‘대기만성형’의 자질을 과시했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생애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선전을 펼쳤다.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랭킹 116위로 그룹 예선부터 경기를 시작한 박강현은 30그룹에서 전승으로 1위를 차지해 본선 128강에 진입했다. 본선 첫 경기에서 러시아의 스카츠코프 키릴(세계75위)을 4대 0(11-7, 11-4, 11-5, 11-7)으로 완파했고, 64강전에서도 시몽 고지(프랑스, 세계34위)와 접전을 펼쳤다.

아쉽게 2대 4(16-14, 11-9, 8-11, 9-11, 5-11, 9-11) 역전패를 당했지만, 시몽 고지와의 경기는 박강현의 가능성을 오히려 제대로 보여준 경기가 됐다. 박강현은 빠르면서도 힘이 실린 왼손 드라이브를 계속해서 작렬시키며 초반 경기를 장악했다. 유럽의 강자에게 힘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3게임 이후 아예 떨어져서 경기를 펼친 시몽 고지의 작전에 페이스를 내주고 끝내 역전을 허용했지만, 적어도 정공법으로 부딪칠 때는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엄청난 스윙스피드를 자랑하는 박강현이다.

이전까지 남자팀 감독으로 국제무대에 자주 서다가 이번 대회에서는 여자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유남규 감독은 “공의 재질이 계속 변화 발전하고 있다. 표면이 좀 더 미끄러운 상태가 되면서 스핀 횟수가 많이 줄었다. 남자도 여자도 큰 스윙의 회전보다는 간결한 예비 동작을 통한 빠르고 강한 임팩트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고 이번 대회에서 나타난 기술적 경향을 설명했다. 엄청난 스윙 스피드에 힘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박강현의 더 많은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박강현의 경기를 지켜본 관계자들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박강현은 지난해 연말 오스트리아 벨스 소속으로 유럽탁구챔피언스리그를 뛴 적이 있다. 당시 맹활약으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지만, 정작 국내에서의 상비군선발전 때문에 순위결정전에는 나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만난 벨스 관계자가 다음 시즌에 반드시 와서 다시 뛰어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했을 정도로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박강현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벨스뿐만 아니라 독일 분데스리가를 비롯한 유럽 프로리그의 여러 팀들이 벌써부터 물밑에서 오퍼를 넣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성적과는 다른 얘기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시몽 고지는 정공법을 포기하는 변칙으로 박강현을 이겼다. 다음에 만나면 다를 거야.

시몽 고지와의 경기는 사실, 경험 부족의 한계가 드러난 경기였다. 첫 번째 세계선수권의 긴장감은 준비한 기술을 마음껏 발휘하게 했지만, 변칙적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임기응변에는 걸림돌이 됐다. 박강현은 경기 뒤 “상대의 로빙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아쉽다. 한두 개만 들어갔더라면 경기 양상이 달라졌을 텐데 그걸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그게 지금 내 문제다. 내가 못해서 진 거고, 상대가 잘해서 이긴 거다. 더 단련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험은 채워가면 된다. 단련의 과정이 충분히 동반되면 더욱 강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채윤석 대표팀 코치는 소속팀 삼성생명의 코치이기도 하다.

박강현과의 경기를 마치 결승처럼 치열하게 치르고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던 시몽 고지는 제대로 몸이 풀렸다. 이후 32강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중국의 쉬신(세계2위)을 꺾었고, 폴란드의 중국계 수비수 왕양과 벌인 16강전도 이기고 8강에 진출했다. 현지에서는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 그 출발점이 박강현과 벌인 접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묘한 감정이 생긴다.

박강현은 “시몽 고지가 있는 자리가 내 자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직은 부족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처음 나온 세계대회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강현은 개인단식 64강, 장우진(미래에셋대우)과 함께 뛴 복식은 16강에서 마무리했다. “일찍 끝났지만 나름대로는 생각한 대로 경기를 풀었다. 다음에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장우진과 함께 뛴 복식은 16강으로 마쳤다.

박강현은 20대 중반을 향하면서 처음 출전한 세계대회에서 밝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번 대회 출전으로 참가 횟수와 포인트를 더할 수 있게 되면서 세계랭킹도 소폭이지만 상승할 것이다. 말그대로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단식 8강에 동반 진출한 안재현과 장우진, 그리고 앞에서 든든하게 후배들을 끌고 있는 이상수(삼성생명)와 정영식(미래에셋대우)까지 이번 부다페스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메달 획득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 남자탁구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기록해도 될 것 같다.

인터뷰 말미 박강현은 8강에 올라있는 시몽 고지에게도 한 마디 했다. “다음에 만나면 이번처럼 되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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