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부다페스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식

이쯤 되면 ‘돌풍’이 아니라 ‘태풍’이다. 안재현(삼성생명·20)이 하리모토 토모카즈마저 꺾었다. 세계랭킹 157위가 이번 대회 4번 시드를 받은 랭킹 4위 우승후보를 돌려 세웠다.

안재현은 25일 밤(한국시간) 부다페스트 헝엑스포에서 치러진 국제탁구연맹(ITTF) 2019 부다페스트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식 16강전에서 일본의 탁구천재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4대 2(11-7, 3-11, 11-8, 11-7, 7-11, 11-9)로 무너뜨렸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운이 아니었다. 실력으로 제압했다는 데서 안재현의 승리는 더욱 큰 가치가 있다. 하리모토의 특기인 백핸드 대각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하리모토의 포어코스를 집중 공략하면서 애초부터 공격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포어 깊은 곳으로 반구되는 경우도 미리 가서 역습으로 이겨냈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하리모토는 범실을 남발했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9대 3까지 앞서다 내리 4실점하며 쫓겼던 4게임이 승부처가 됐다. 이정우 코치의 작전타임 이후 안재현의 침착한 마무리가 돋보였다. 하리모토 특유의 파이팅도 이겨냈다. 오히려 안재현의 소리가 더 커졌다. 결국 승자는 안재현이었다. 벤치에서 이정우 코치도 벌떡 일어서며 승리를 만끽했다. 생애 처음으로 출전한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8강에 진출하는 순간이었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국제탁구연맹 세계랭킹 157위의 안재현은 이번 대회를 그룹예선부터 시작했다. 조 수위를 차지한 뒤 프레리미너리 라운드까지 거쳤다. 본선 128강 1회전에서 세계14위 웡춘팅(홍콩)을 잡아낸 것은 돌풍의 서막이었다. 이후 64강전에서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맞붙었던 스웨덴의 ‘신성’ 모어가드 트룰스(세계153위)와의 맞대결을 이겨냈고, 32강전에서는 유럽 프로리그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중견 다니엘 하베손(오스트리아, 세계29위)까지 꺾으면서 돌풍을 이어갔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16강전에서 만난 하리모토 토모카즈는 일본이 자랑하는 탁구천재다. 지난해 일본오픈과 연말 그랜드 파이널스에서 중국선수들을 모두 꺾고 우승하기 전부터도 이미 국제탁구계의 가장 핫한 ‘아이돌스타’였다. 나이는 비록 16세에 불과하지만 내년 도쿄올림픽 금메달후보로 일본의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던 주인공이다. 이번 대회 역시 TV도쿄를 비롯한 수많은 미디어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촬영하고 있을 정도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하지만 안재현은 전혀 거침이 없었다. 이전까지의 시합들처럼 긴장하는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또 할 거 다했다. 그렇게 빠른 하리모토의 스피드 드라이브마저 쫓아가 로빙을 띄워 올릴 정도였다. 기세를 기세로 맞받아치자 하리모토의 풀이 죽었다. 일본 취재진들 역시 일순 침묵에 빠졌고, 경기 직후 하리모토는 펑펑 울음을 쏟았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안재현은 “처음부터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리모토의 경기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고, 길을 차단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첫 게임을 작전대로 해서 이긴 다음부터 더 자신이 생겼다. 나의 포어 쪽으로 보내지 못하도록 내가 먼저 하리모토의 포어쪽으로 계속 공을 보냈다. 하리모토도 평소와는 달리 실수가 매우 많았다. 결국 이겨서 기쁘다.”고 승인을 분석했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첫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일약 8강이다. 안재현은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자는 목표만 갖고 왔다. 8강에 올랐다는 게 아직 실감나지 않지만 경기가 모두 끝난 것도 아니다.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올지 모른다. 남은 경기도 지금까지처럼 최선을 다하겠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메달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안재현의 다음 상대는 공교롭게도 한국대표팀 선배 장우진(미래에셋대우·24, 세계랭킹 10위)이다. 장우진은 16강 상대였던 독일의 티모 볼이 고열 증세로 기권하면서 8강에 ‘무혈입성’하는 행운을 잡았다. 한국 남자대표팀은 이로써 이번 대회 남자단식에서 이미 동메달을 확보했다. 누가 이겨도 4강이다. 2017년 뒤셀도르프 대회 이상수의 기록에 이어 연속 메달을 따냈다. 장우진과 안재현의 8강전은 26일 치러진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한편 안재현의 승전보 이전 치러진 단식 두 경기에서는 이상수(삼성생명)와 정영식(미래에셋대우)이 스웨덴의 팔크 매티아스와 중국의 린가오위엔에게 차례로 패했다. 의욕적으로 경기에 나섰지만 상대 선수의 기술을 제압하는데 실패했다. 이상수는 1대 4(13-11, 8-11, 8-11, 5-11, 6-11)로 졌고, 정영식은 0대 4(8-11, 9-11, 9-11, 6-11)로 졌다. 둘은 경기 뒤 “아쉽지만 빨리 잊고 남은 복식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 (부다페스트=안성호 기자) 안재현이 8강에 올랐다. 하리모토 토모카즈를 이겼다.

이상수와 정영식은 2017년 뒤셀도르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복식 동메달 조다. 이번 대회에서 연속 메달에 도전하고 있다. 8강전 상대는 중국의 마롱-왕추친 조다. 쉽지 않은 상대지만 이-정 조의 오랜 호흡도 충분한 무기다. 단식 8강에 오른 안재현과 장우진, 후배들의 선전도 좋은 자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수-정영식 조의 복식 8강전 시간은 26일 새벽 1시다(한국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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