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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무함마드의 후계자인가라이벌 열전> 수니파 VS 시아파
서미순 기자  |  redr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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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3  10: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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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로 꼽히는 이슬람교 신도들은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종교다. 하지만 수십 년 안에 무슬림(이슬람교도)과 기독교인의 비율이 비슷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만큼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이슬람교는 규모가 큰 종교지만 타 종교와는 달리 다양한 종파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몇 개뿐인 종파 간의 싸움이 가장 치열한 종교이기도 하다.


이슬람교의 탄생

이슬람교는 유대교, 기독교와 뿌리를 함께하는 종교인만큼 부르는 호칭만 다를 뿐 숭배하는 신은 같다. 따라서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에는 아담과 이브의 추방,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 탈출 등 기독교의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꾸란>에는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의 인물은 물론 예수까지 등장한다. 비록 이슬람교에서의 예수는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알라의 은총을 받은 신의 사도 혹은 예언자였을 뿐이지만 말이다.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 예수였다면 무슬림에게는 무함마드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무슬림에게는 무함마드야말로 인류 최후의 예언자이며, 또한 가장 완전한 계시를 전달한 신의 사자이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서기 570년, 메카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숙부 밑에서 자랐다. 성인이 되어서는 사막의 목동이 되었지만 믿음직하고 성실한 성품의 소유자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후 부유한 연상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세 딸까지 낳고 풍족하고 안정된 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만족을 찾을 수 없었던 무함마드는 히라산 정상의 동굴에서 힘겨운 수행을 자처했다. 그리고 마침내 610년, 신의 첫 계시를 받으며 이슬람교를 창시하게 된다. 

히라산에서 내려와 메카로 돌아온 무함마드는 자신이 만난 유일신 알라를 전도해나갔지만, 당시 다신교 사회였던 메카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제자들과 신도들을 늘려갔고 점차 무함마드는 메카의 유력 세력들에게 잠재적인 위협 요소가 되었다. 종교의 속성이 늘 그렇듯 무함마드가 신의 뜻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기득권 세력에게는 못마땅한 것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결국, 무함마드는 이들의 박해를 피해 622년에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주하게 되는데 이를 ‘헤지라(성천)’라고 부르며 이 해를 이슬람력의 원년으로 삼는다. 이후 630년에 메카로 돌아올 때까지 그는 수많은 전투까지 벌여가며 이슬람교를 전파했고 632년에 세상을 뜨게 된다. 
 

   
▲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은 무함마드가 첫 계시를 받은 610년부터 세상을 뜬 632년까지 받은 천사 지브랄(가브리엘)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다. '읽다'라는 뜻의 <꾸란>에 담긴 단어와 문구는 모두 신성한 것이므로 아랍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타 언어로 된 
<꾸란>에도 반드시 아랍어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선출의 수니파와 혈통의 시아파

무함마드의 죽음으로 무슬림은 새로운 지도자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나 강력한 지도자의 죽음은 사람들의 분열을 불러왔다. 아들이 없던 무함마드의 뒤를 이를 칼리프(후계자)가 될 자격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문제로 시작된 이슬람교의 분열은 결국 선출에 의한 칼리프를 추종하는 수니파와 오랫동안 무함마드 곁을 지켜온 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의 혈족을 추종하는 시아파로 크게 나누어지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맘’의 개념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타 종교와는 달리 이슬람교에는 성직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특히 수니파의 이맘은 보통 예배의 인도자 정도를 뜻한다. 따라서 가족끼리의 예배모임이라면 집안의 연장자가 이맘이 되고, 혼자만의 기도와 예배를 하게 된다면 그 자신이 이맘이 되기도 한다. 즉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이맘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신앙의 힘으로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와 달리 시아파의 이맘은 알리 혈통의 후계자로서 신에 의해 선택된 영적 권위자를 가리킨다. 즉, 시아파에서의 이맘은 보통의 인간과는 다르게 죄 없는 자이며, 특별한 권위와 능력을 신에게 부여받은 무결점의 지도자로 여겨진다. 결국, 수니파와 시아파는 유일신 알라에 대한 믿음과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러한 이맘에 대한 인식부터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다른 점들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무함마드가 세상을 뜬 직후 벌어진 크고 작은 유혈 사태는 이 두 세력이 영영 결별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 이슬람교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는 언제나 무슬림들로 가득하다. 특히 검은 정육방면체의 건물인 카바 신전은 무슬림에게 매우 중요한데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카바 신전이 있는 방향을 향해 하루 다섯 번의 예배를 할 정도다. 


국가 분쟁으로 이어지는 종교 분쟁

현재 무슬림의 시아파, 수니파의 비율은 대략 15 : 85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무슬림이 밀집된 중동의 국가들은 어떤 종파를 믿는 사람들이 국가를 구성하고 있느냐에 따라 나라의 성격과 정책이 결정되기도 한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주국으로 각각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꼽는데 서로 크고 작은 분쟁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 중일 때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라크의 후세인을 지원했던 것도 당시 이라크의 지배층이 자신들과 같은 수니파였기 때문이었고, 이란이 IS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억압하는 것과는 달리 사우디아라바아가 IS를 강경하게 제재하지 않는 이유 역시 IS가 수니파에 속하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사이에서 카타르가 갈등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카타르는 폐쇄적인 다른 이슬람 왕조 국가들과는 반대로 언론, 산업, 문화, 교육, 인권 등의 분야에서 보다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한, 권력과 부가 왕족에게 집중된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국가 권력을 민간에게 분산시키는 시도를 하는 중이다. 최근 아랍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런 카타르의 변화를 위협적 요소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중동의 허브’ 역할을 자처하는 카타르가 중립 외교를 추구하며 이란과도 가까이 지내자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등의 수니파 국가들은 카타르와 일방적인 단교를 선언해 버렸다. 카타르도 이들과 같은 수니파 국가인 것을 생각하면 21세기에 수니파, 시아파로 나뉘어 분쟁하는 것은 전통적이고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로는 정치, 경제 등이 분쟁의 실체적 원인으로 보인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의 가치 기준은 종교나 이념 같은 불확실하고 추상적인 것들이 아닌 좀 더 현실적이고, 명확한 것들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과거의 전통적인 신들의 시대는 가고 새로운 모습의 신들이 갈등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권력, 돈, 정보, 기술이란 이름의 신 말이다. 

<월간탁구 2017년 8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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