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스타! 백호균의 ‘새로운 도전!’

<피플&핑퐁>

백호균(화홍고등학교 3학년)
내일은 스타! 백호균의 '새로운 도전!'

화홍고등학교 3학년 백호균은 한국 청소년탁구에서 ‘별종’으로 꼽을 만한 선수다. 남다른 오기와 의지로 핸디캡을 극복해온 노력파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스스로의 의지로 한국탁구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간판급 선수로 성장했다. 전국체전을 전후해 이 각별한 기대주를 따로 만났다. 백호균은 이 달 말 이태리에서 열리는 세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전국체전 남고부 은메달리스트
  “준비한 만큼 열심히 해서 2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승은 못했지만 이게 또 한 계단 올라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달 열린 제98회 전국체육대회 탁구경기가 끝난 후 백호균은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번 체전에서 백호균은 주니어대표팀 동료 곽유빈(창원남산고)을 비롯 최장원(천안중앙고), 최인혁(동인천고) 등 각 팀을 대표하는 유망주들을 차례로 꺾고 남고부 개인전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최종전에서 현 고교 챔피언 안재현(대전동산고)에게 졌지만, 최선을 다했으니 아쉬움은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도 백호균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극히 평범한 답변이었으나 ‘백호균’의 ‘각오’였기 때문에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화홍고등학교 3학년, 이 달 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올해 세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할 예정인 백호균은 청소년탁구 무대에서 ‘별종’으로 꼽을 만한 선수다. 구력이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탁구의 특성상, 대표팀에 소속될 만큼 상위권에 올라있는 선수들은 아주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온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백호균은 조금 다른 성장과정을 거쳤다. 어엿한 주니어대표지만 그가 탁구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지도 채 얼마 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잘해야 2회전 진출이었어요. 대부분은 예선탈락이었고요. 성적이 좀 나기 시작한 건 중3 올라온 다음부터입니다. 그때부터 4강권 이상은 자주 간 것 같아요.”
  실제로 백호균의 등장은 좀 갑작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다. 직전까지 16강 부근에도 좀처럼 보이지 않던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최상위권 선수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관계자들이야 잠재된 가능성을 눈여겨볼 수 있었겠지만 보통의 경우 입상 여부를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승부세계였기에 더 그랬다. 백호균의 성장기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 백호균은 백핸드가 지배하는 현대 탁구에서 포어핸드 공격 비중이 높은 플레이로 더욱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오기’

  ▷ 탁구는 언제 처음 시작했나? 왜?
  ▶ 군산중앙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요. 부모님(부 백남수, 모 진순화)과 함께 사설 클럽에 취미 삼아 등록했다가 재미있어서 탁구부에 자원했어요. 음~ 공부는 싫고, 운동이 좋아서! (웃음)
  ▷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시작이 많이 늦었다.
  ▶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좀 힘들었어요. 다들 실전 감각 다듬던 시기에 기본기를 배워야 했으니까요. 중학교 진학 문제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수원 인계초등학교로 전학했는데, 그때는 3, 4학년 애들도 못 이길 정도였어요. 곡선중학교 들어가서도 별로 눈에 띄지 못했고요.
  ▷ 그런데 중3 때부터 ‘갑자기’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 저는 재능이 별로 없는 애였어요. 입상은 생각도 못했고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도 그다지 관심을 주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게 정말 싫더라고요. 혼자서라도 열심히 해보자. 어떻게든 잘해서 보여주고 말겠다. 그런 오기 같은 게 생겼죠.

  백호균이 남다른 노력을 시작한 것은 스스로의 표현대로 ‘오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숙소에서 생활하던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부터 체육관에 나왔다. 혼자서 서브 연습을 했고, 지금은 운동을 그만뒀지만 마침 뜻이 맞았던 친구와 함께 나와 볼박스(다구연습)를 하기도 했으며, 이도 저도 안 되면 러닝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다. 정해진 일과 훈련이 끝나면 또 일반 탁구장을 찾아가 야간까지 조금이라도 더 공을 쳤다. 중학교 2학년, 백호균의 훈련은 누구의 그것보다 일찍 시작됐고, 늦게 끝났다.
  게다가 그 무렵 군산에 있던 엄마가 뒷바라지를 위해 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군산에 남았으니 자신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가족이 흩어져 살게 된 것이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이유까지 더해져 백호균의 노력을 부채질했다. 그리고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았다. 마음에서 우러난, “정말이지 하고 싶어서 한” 훈련의 효과는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성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다.
 

▲ 폭발적인 파이팅도 백호균의 강점 중 하나다.

스스로 가치 증명한 공격적인 플레이어

  ▷ 우승은 언제 처음 했나.
  ▶ 중3 문체부 장관기 단식과 단체전을 우승했어요. 바로 이어진 대통령기에서도 단식하고 복식을 우승했고요. 하지만 우승했던 대회들은 국제대회 때문에 대표선수들이 나오지 않은 대회였어요. 다음 대회였던 회장기 단식 4강전에서 재현(안)이하고 시합했던 게 더 의미가 있죠.
  ▷ 안재현과의 시합에 의미를 두는 이유는?
  ▶ 이전까지 재현이는 쳐다도 볼 수 없는 상대였거든요. 제가 늘 초반 탈락을 했으니까 시합할 기회도 없었고요. 혼자서 연습할 때 1차 목표가 적어도 재현이랑 시합이라도 한 번 해보자는 거였는데, 그걸 이룬 거니까요. 재현이가 확실히 잘하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일단 시합은 했으니 다음에는 더 잘 준비해서 한 번 이겨보자는 걸로 목표를 올렸죠.
  ▷ 그 목표도 결국 이루지 않았나?
  ▶ 고등학교 올라와서 몇 번 이긴 적이 있긴 해요. (웃음) 작년 대통령기 결승전, 올해 전국종별 16강전, 아시아선수권 대표선발전…. 그래도 아직까지는 진 시합이 더 많아요. 이번 체전 결승에서도 졌잖아요. 재현이는 늘 좋은 자극을 주는 멋진 친구입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
  ▷ 기술적으로 본인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포어핸드 드라이브가 자신 있어요. 공이 세다는 말도 많이 듣고요. 하지만 디펜스는 아직 많이 부족해요. 포어 코스 짧은 쪽 실수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을 자주 받습니다.

  백호균은 자신의 진단대로 포어핸드 드라이브가 강점인 오른손 셰이크핸더다. 특히 상대의 공격을 역습으로 전개하는 카운터어택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런 플레이 스타일도 피나는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그를 더 돋보이게 한다.
  백호균 역시 이전까지는 백핸드 위주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현 소속팀 화홍고의 김정수 코치로부터 포어핸드의 단점을 지적받으면서 또 남다른 노력이 시작됐다. 될 때까지 우직스럽게 포어핸드 스윙을 고집했고, 바탕이 되는 풋-워크를 단련했다. 이 무렵부터 자주 찾아보던 영상이 장지커(중국)에서 마린(중국)이나 이정우(현 보람할렐루야 코치) 같은 펜 홀더 선수로 바뀐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결국 백호균은, 백핸드 싸움부터 시작하는 현대탁구에서 포어핸드 빈도가 높은 공격적인 플레이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선수로 거듭났다. 스타일이 자리 잡은 고2 때는 대통령기와 전국체전 금메달을 따내며 확실한 ‘유망주’의 출현을 스스로 알렸다.
  그리고 주니어 마지막 해가 된 2017년, 백호균은 올해 전국종별을 석권했고, 아시아주니어선수권에서는 2년 연속 한국대표로 뛰었다. 연말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한다. 남자실업 신생팀 보람할렐루야는 신인선수 지명권을 ‘청소년 기대주’ 백호균에게 행사했다.
 

▲ 올해 전국종별선수권대회를 석권하고 재치 넘치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주니어로 마지막 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 이젠 실업에서 뛰게 됐다.
  ▶ 네. 이미 틈나는 대로 팀에 가서 훈련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적응하기가 아직은 쉽지가 않아요. 저도 그동안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실업은 좀처럼 쉴 시간이 없더라고요. 막상 올라가서 선배들하고 운동을 해보니 제가 스스로를 너무 높게 평가했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탁구는 아직 시작도 안 한 거구나….
  ▷ 실업에서 특히 지적받고 있는 문제가 있나?
  ▶ 정신력이요. 기술적으로도 다듬고 보완해야 할 것들은 엄청 많죠. 특히 이정우 코치님께서 더 할 수 있는데 그만큼 끌어올리지 못한다고 아쉬워하세요. 좀 더 몰입해야 한다고, 그렇게 해서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요. 스스로한테 지지 말라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제가 저한테 자꾸 지는 것 같아요.
  ▷ 다음 목표는 그럼 국가대표?
  ▶ 솔직히 말하면 고등학교 때 성적 좀 냈다고 자만했었나 봐요. 처음 지명을 받았을 때는 이 정도면 대표도 할 수 있겠다고 자신했는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실업에서 훈련하면서 느끼고 있어요. 목표는 당연히 국가대표가 되고 더 큰 대회에서 성적을 내는 거지만, 중학교 때처럼, 초심 잃지 않고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해나갈 겁니다.
  ▷ 주니어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남은 각오 한 마디!
  ▶ 연말 세계대회가 주니어로는 마지막 대회입니다. 제가 국제경험이 많지 않지만 이번 대회에서 정말 좋은 성적으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는 시합으로 지금까지 관심 갖고 도와주신 분들께 앞으로도 계속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드리고 싶어요. 물론 저 스스로한테도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화홍고등학교 3학년 백호균은 남다른 오기와 의지로 늦은 출발의 핸디캡을 극복해낸 노력파다. 치열했던 과정과는 언뜻 어울리지 않게 밝고 활달한 성격인데, 차분하게 주변을 챙길 줄도 아는 깊은 속내까지 갖췄다. 인터뷰 말미 백호균은 “언제나 믿어주시는 부모님, 늘 관심 갖고 도와주시는 백상열 수원시탁구협회장님, 이내응 수원시체육회 국장님, 전동엽 교장선생님, 김영익 감독선생님, 그리고 ‘은사’ 김정수 선생님께도 꼭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의례적인 인사일 수 있었지만 ‘백호균’이어서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내년 남자실업 보람할렐루야 입단을 앞두고 있는 백호균이 스스로 다짐한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이뤄갈 그 끝은 어디쯤일까. 2020년? 2024년? 아직은 멀어 보인다며 올림픽에 대한 소망을 감췄지만, 자신만의 노력으로 끊임없이 한계를 넘어온 백호균이 세계 최고 시상대에 서지 말란 법도 없을 것이다. 우선은 이 달 말, 이탈리아에서 그 가능성의 일단이라도 밝히고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청소년탁구 ‘별종’의 새로운 도전은 지금부터다. 글_한인수 | 사진_안성호 (매거진 공유기사입니다)
 

▲ 백호균은 이 달 세계주니어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사진은 올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활약하던 모습이다.
▲ 새로운 도전은 이제부터다. 백호균은 하나씩 하나씩 처음부터 다시 다져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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