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유비 VS 조조

‘삼국지연의’라고도 불리는 ‘삼국지’의 정식 명칭은 ‘삼국지통속연의’다. 진수(陳壽, 233~297)라는 인물이 편찬한 정통 역사서인 ‘삼국지’를 모태로 하고 있는데 패권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위, 촉, 오 세 나라의 대결이 많은 흥미를 자아낸 만큼 민간에서는 전문 이야기꾼들에 의해 살이 붙고 각색되는 일이 많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지’는 이런 이야기들이 나관중(1330?~1400)에 의해 수집되고 재구성된 장편 역사 소설(통속연의)이라 할 수 있다.
 

▲ 유비(좌)와 조조(우).


유비, 신의와 명분을 지켜나간다

한나라 황제의 후손이었다는 유비(161~223)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면서 짚신이나 멍석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었다. 친척의 도움으로 학문을 익힐 수는 있었지만, 학문을 연마하는 일보다는 여러 사람과 교류하며, 호걸들과 결의 맺기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늘 유비와 함께 거론되는 관우와 장비는 도원결의로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밀하고 돈독한 관계였는데 사실 그 유명한 도원결의라는 사건은 나관중이 이들의 우정과 신의를 강조하기 만든 설정에 불과하다. 따라서 소설이 아닌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군신 관계를 뛰어넘는 강한 결속력을 지닌 관계였다는 것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사건이지만 세 사람의 돈독한 관계가 앞으로 펼쳐질 사건들 속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지를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시골 마을의 보잘것없었던 청년이 출사표를 던지게 된 사건은 ‘황건적의 난’이었다. 유비는 난이 일어나자 관우와 장비를 비롯한 무리를 이끌고 토벌군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고 벼슬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탄탄대로의 길을 걸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유비는 삼국지의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많은 고생을 한 인물로 손꼽힌다. 세가 약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리저리 떠돌며 힘 있는 사람들에게 의탁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을 만나 자신의 편으로 영입할 수 있었으니 그리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비는 포부가 크고 굳세지만, 백성들에게 너그럽고 후하며, 뛰어난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으로 결단력과 판단력이 부족하고, 번번이 인의를 따르다가 실리를 놓치고 마는 인물로도 묘사되지만, 포용력과 덕(德)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중국 최고의 영웅상이었기 때문에 이는 그리 큰 단점이 되지 않았다. 따라서 유비의 곁에는 적들조차 탐을 내는 관우, 장비, 제갈량, 조자룡 등의 인재들이 있었고 그 인재들과의 관계 또한 단순한 군신 관계를 뛰어넘는 돈독함을 자랑했다. 특히 유비는 언제나 신의를 지키려 노력하고 대의와 도(道)를 잃지 않기 위해 갈등한 인물로서 삼국지를 통틀어 끝까지 ‘명분’을 지켜나간 인물로 그려진다.


조조, 명분보다는 실리, 출신보다는 능력 제일주의자

조조(155~220)의 아버지는 환관이었던 조등의 양자로 들어갔으니 조조는 환관의 손자가 된다. 비록 환관 집안이었지만 그 유명한 십상시 무리조차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재산과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십상시의 중의 한 명인 건석의 숙부가 법을 어기려 하자 조조가 매로 다스려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그가 벼슬조차 잃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든든한 배경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책을 즐겨 읽었던 조조는 태자의 선생이 되어 ‘지낭(智囊, 지혜 보따리)’이라고 불리며 칭찬과 총애를 받았고 이후 몇몇 관직을 오가다가 유비와 마찬가지로 ‘황건적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제남상이라는 위치에 오르며 주목받기 시작한다.  
또한 조조는 정치, 군사, 학문,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 업적을 남겼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누구나 우두머리를 자청하는 어지러운 시대에, 주군을 섬기는 가신이라는 자리에만 머무르기에는 그 재능이 아까울 정도였다. 본인도 그것을 알았는지 힘을 잃어가고 있는 후한과 왕실을 버리고 위나라를 세우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덕분에 조조는 새 나라의 주군이 되겠다는 욕심에 그가 평생 기득권으로 살아왔던 조국 후한을 멸망시키는 데 일조한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조는 스스로가 뛰어난 인재였던 만큼 다른 이들을 평가할 때도 ‘능력’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비천한 신분의 소유자라고 해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면 망설임 없이 자기의 사람으로 삼았다. 따라서 조조는 적의 장수라도 탐이 난다면 자신의 편으로 영입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조조의 구애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으로 손꼽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관우다. 조조는 전투 중에 관우를 생포한 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극진히 대하며 상까지 내렸지만, 유비에게 돌아가려는 관우의 뜻은 끝내 꺾지 못했다. 결국, 유비의 진영으로 향하는 관우를 보고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니 뒤쫓지 말라’며 아쉽게 그를 손에서 놓아주고 만다. 한편으로는 능력 제일주의자였던 만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조조가 다소 차갑게 군것도 사실이다. 특히 타인을 잘 믿지 않아 의심만으로 사람들을 제거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 영화 적벽대전의 한 장면. 삼국지에는 수많은 전투신이 등장하지만 적벽대전이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하는 명장면이다.


왜 유비와 조조인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은 뭐니뭐니해도 위, 촉, 오 세 나라이며 그중에서도 위나라의 조조와 촉나라의 유비는 가장 자주 비교되는 사람들이다. 성격은 물론 이들이 발휘하는 리더십도 확실한 대비를 보이고, 무엇보다 저자가 유비는 선인, 조조는 악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에는 이들을 선인과 악인으로 나누어 설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수는 조조의 위나라로부터 국권을 선양 받은 진나라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조를 정통으로 하여 기술했고 유비와 손권에 대한 인물평 또한 매우 공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던 것이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에서 유비가 주인공이 되고 모든 이야기가 그를 중심으로 서술되면서 조조와 확실한 대비를 보여주게 된다. 소설 삼국지는 ‘이야기’라는 정체성에 충실하기 위해서 두 사람의 갈등구조를 확대했고 그 과정에서 유비는 장점을, 조조는 단점을 극대화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제 유비와 조조를 선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판단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비의 우유부단함과 조조의 실리주의를 따지며 유비보다는 조조가 낫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도 적지 않다. 현대의 복잡해진 인간관계 속에서 인정, 의리, 부드러움으로 설명되는 유비보다는 능력 제일주의, 인간경영, 전략가의 이미지를 풍기는 조조에게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에서 특정한 사람들의 장단점을 논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본받고 싶은 타인의 장점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그 기준에 따라 삼국지의 등장인물 1,233명 모두에게 배울 점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설사 절대 악을 상징하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절대 저렇게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우리에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월간탁구 2017년 2월호 게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