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발효주 VS 증류주

일 년 중 술 소비량이 가장 높다는 연말연시다. 한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던 적도 있었지만 사실 술은 담배나 커피처럼 기호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주류 소비량은 전 세계 15세 이상 인구 1인당 평균 소비량의 2배에 달할 정도로 높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소주나 양주와 같은 높은 도수의 술 소비량은 줄고 낮은 도수의 술인 맥주, 와인 등의 소비량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 포도주는 인류가 접한 최초의 술이다. 


자연이 빚은 최초의 술, 발효주

과일 속에 있는 당분은 표면에 상처가 나면 껍질에 있는 천연 효모와 만나 발효를 시작한다. 효모는 단당류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알코올을 우연히 마시게 된 것이 인류가 접한 최초의 술이었을 것이다. 포도는 그 어떤 과일보다 풍부한 포도당을 가지고 있어 발효에 최적화되어 있는 데다가 지구 상에 약 1만 년 전부터 등장했기 때문에 포도주야말로 인류 최초의 술로 손꼽는다. 실제 티그리스 강 유역에서 발견된 기원전 4천 5백년 경의 점토판에 포도주를 양조한 기록이 있는 점이나 고대 이집트 벽화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모습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기원전 4천~5천 년 경에는 이미 포도주를 직접 만들어 마셨던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에는 중국 후난 성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토기에서도 포도로 만든 술 성분이 발견되어 약 9천 년 전부터 술을 만들어 마셨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포도주처럼 당분을 발효해 만들어진 술로 연이어 등장한 것은 바로 맥주다. 기원전 4천 년 경, 맥아로 빵을 만들어 주식으로 먹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인들이 빵과 물을 섞고 발효시켜 마시기 시작한 것이 그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곡주는 기본적으로 정착생활을 하며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에야 만들어지기 때문에 과일주보다 늦은 등장을 하게 되지만 이집트로 맥주 제조법이 전해진 이후에는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맥주가 전파되기에 이른다. 이즈음의 맥주는 죽처럼 걸쭉한 형태였지만 중세시대에 접어들어 수도원들을 중심으로 다양하고 발전된 제조 방법이 개발되면서 높은 품질의 맥주가 만들어졌다.

포도주와 맥주가 인류 최초의 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만드는 방법이 비교적 쉽고 도수 또한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오래된 고사나 고전에서 등장인물의 남자다움이나 호탕함을 표현하기 위해 다량의 술을 한 번에 들이키는 모습을 그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당시의 술은 현대의 맥주와 비슷한 도수의 술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과학이 만들어낸 도수 높은 술, 증류주


▲ 소줏고리는 막걸리를 증류해서 소주를 만들 때 쓰이는 전통적인 도구다. 그러나 시중에서 흔하게 만나는 현대의 소주는  증류법으로 만든 술이 아니라 여러가지 원료를 섞어 만든 희석주에 불과하다.

증류는 용액을 가열할 때 나오는 증기를 냉각해 다시 액체화하여 용액에 섞여 있는 특정 성분만을 분리해내는 방법이다. 발효주가 이런 증류과정을 거치면 고농도의 알코올을 분리해 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위스키, 브랜디, 진, 럼, 보드카, 백주, 안동소주 등이다.  

증류주는 증류라는 중요한 과정이 필요하므로 인류의 문명과 기술이 어느 정도 발전된 후에야 생산이 가능해졌고 또한, 이 때문에 발효주보다 한참 늦게 만들어진 술이다. 재미있는 것은 증류법이 메소포타미아와 같은 고대 사회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주로 바닷물로 식수를 얻거나 향수를 만드는 데 그쳤다는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8세기경 이슬람 화학자들이 포도주를 증류해 얻어진 물질에 ‘알코올’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증류주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술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알코올이라는 물질은 새로운 화학물질 정도로 여겨지는 데 그쳤다. 

인류사에서 새로운 문화가 전파되고 또 창조되는 것은 전쟁이나 문명 간의 충돌을 통해 이루어진다. 증류주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 문명과 만난 13세기 프랑스 의학자 빌뇌브가 이슬람 화학자 자비르의 증류법을 익혀 알코올을 추출하여 페스트의 치료제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유럽 전역에 전파된 증류법을 통해 위스키, 브랜디, 보드카, 진 등의 술이 만들어졌다. 동양에 증류법이 전해진 것 역시 몽골이 유럽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후 몽골리안 루트를 통해 전해진 증류법으로 중국에서 다양한 백주가 등장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안동소주와 같은 쌀로 빚은 증류식 소주가 탄생한다.
 

 


술, 필수가 아닌 기호품

술은 인류가 마신 최초의 술이자 음료다. 물에 석회 성분이 많은 유럽에서는 맥주를, 오아시스에 있는 기생충을 염려한 사막의 사람들은 우유를 발효시킨 마유주를 식수 대용으로 마시곤 했다. 로마의 병사들은 시큼한 포도주를 지급받아 물에 섞어 마시기도 했는데 이는 전투 중 오염된 물을 마셔 배탈이 나지 않도록 물을 소독하고 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 오랫동안 배 위에서 생활해야 하는 선원들도 선상에서 금방 썩어버리는 물 대신에 소독 작용을 하는 알코올 성분이 들어가 있는 술을 마셔야 했다.

▲ 브랜디, 꼬냑, 위스키 등은 대표적인 증류주로 높은 도수를 자랑한다.


이렇듯 술은 한때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품이었지만 과하게 마시지 않도록 경계하는 일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다. ‘술이 내게 빼앗아 간 것보다 내가 술에서 얻은 유익이 더 많다(윈스턴 처칠)’라는 말을 남긴 술 예찬론자들도 있었지만 ‘술의 첫 잔은 건강을 위해서요, 둘째 잔은 쾌락을 위해서요, 셋째 잔은 방종을 위해서요, 넷째 잔은 광기를 위해서다(아나카르시스)’라며 과하게 마시지 않도록 늘 조심했던 것이다. 이는 연암 박지원의 말처럼 ‘풍류니 시국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다 술을 마시려는 핑계에 불과하고 취하면 상하 귀천 구분 없이 그저 개가 될 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술을 약이라고도 하고 독이라고도 한다. 적당한 음주는 용기를 북돋우고, 기분을 즐겁게 만들고, 너그러운 마음마저 갖게 해주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말과 행동의 실수를 부르고, 폭력적이 되거나, 이성을 잃게 만들며 건강까지 해치게 된다. 결국, 술을 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절제하며 즐길 수 있는가의 여부가 술을 약, 또는 독으로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인 것이다. 

<월간탁구 2017년 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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