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최원석 회장 체육훈장 맹호장 전수

▲ 전두환 대통령이 최원석 회장에게 체육훈장 맹호장을 달아주고 있다.

1981년 1월 13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 접견실에서 최원석 대한탁구협회 회장과 장익용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등 두 사람에게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체육훈장을 전수했다. 최원석 회장은 체육훈장 맹호장(2등급)을, 장익용 회장은 거상장(3등급)을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훈장을 전수한 후 두 회장의 노고를 치하하고 국력을 상징하는 체육 진흥에 더욱 매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날 훈장 전수식에는 이규호 문교부 장관과 조상호 대한체육회 회장이 배석했었다.
 

1965년 이미 동아건설 남자탁구팀을 창단, 남자실업팀을 육성하는 등 동아그룹 회장으로 그동안에도 탁구발전에 많은 경비를 쓴 최 회장은, 1979년 8월 협회 화장에 재취임하면서는 여자실업팀까지 창단하여 탁구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과시했다. 특히 대기업 총수로서는 드물게 탁구 플레이어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최원석 회장은, 재취임 이후 20개월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한국탁구사에서 큰 페이지를 차지할 굵직한 업적들을 남겼다.

우선 전해 8월 서울오픈대회를 창설, 오픈탁구대회 사상 가장 많은 35개국이 참가하는 대성황을 이룩했으며, 이에 앞서 4월에는 탁구인들의 숙원이던 국가대표 상비군 전용체육관을 경기도 용인 신갈에 건립했다. 또 11월에는 제23회 스칸디나이바 오픈대회에서 나이어린 여자선수들이 단체전에서 북한을 꺾고 준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개인복식에서 1,2,3위를 싹쓸이하자 6명의 가족들에게 34평형 아파트(둔촌동 주공아파트)를 한 채씩 선물, 선수들의 사기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원석 회장은 훈장을 수여받고, 나온 뒤 기자들의 소감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한 표정을 지었다. 아울러 그는 “세계정상 재탈환의 기치를 올릴 1981년 ‘한국탁구 도약의 해’로 목표를 정하고, 경기력 향상은 물론 국제스포츠 외교 강화, 세계선수권대회 서울 유치, 아시아탁구연합(ATTU) 가입, 국내 지도자의 자질향상 등을 실현시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당시 많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던 85년 세계선수권대회 유치는 그해 4월 유고 노비사드 세계선수권대회 기간 중에 열리는 국제탁구연맹 총회에서 결정되는데 한국, 스웨덴, 인도가 경합을 벌이고 있었다. 또한 중국, 북한, 일본을 중심으로 조직된 아시아탁구연합(ATTU) 총회는 그해 12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릴 예정으로 여기서 한국의 가입이 결정되게끔 되어 있었다.

제36회 노비사드 세계선수권대회 단장으로 선수단을 인솔할 예정이던 최 회장은 꼭 우승해서 사라예보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결의에 차있었다. 그밖에도 국제탁구연맹(ITTF) 이사 선임 선거에 나가 그간의 소극적인 자세를 탈피, 국제무대에서 한국 탁구의 지위를 높이겠다는 큰 포부 또한 중요한 당면과제였다.

이러한 중요한 사업들을 앞두고 있던 시점에서 전수받은 훈장은 최 회장은 물론 탁구인들 모두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최원석 회장은 당시까지 산업훈장은 여러 차례 받았으나 체육훈장은 처음이었다. 그 때문인지 최 회장은 회견 말미에 “기업인으로서 어렵게 번 돈을 내가 좋아하는 탁구발전을 위한 일에 쓰고 그 결과가 결실을 맺어 기쁘다.”는 소감도 덧붙였다.

 

웨일즈 오픈탁구선수권대회 여자부 종목 석권

1981년 1월 22일부터 24일까지 영국 웨일즈 카디프에서 열리는 웨일즈 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한국대표 선수단 결단식이 1월 15일 동아건설 회의실에서 있었다. 4월 15일부터 유고 노비사드에서 개최되는 제36회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한국대표팀의 최종 전력평가전이 될 당시 대회에 한국은 처음으로 참가했는데, 스웨덴, 체코, 일본 등 19개국이 출전했으며 중국과 북한은 불참했다.

협회 한상국 부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선수단 13명(임원 5, 선수 8)은 1월 16일 KAL기편으로 출국했다. 선수단 명단은 다음과 같다.

• 단 장 : 한상국(협회 부회장)
• 총 감 독 : 박성인(협회 경기이사)
• 감 독 : 유진규(동아건설)
• 코 치 : 윤상문(제일모직), 이상국(한성대)
• 남자선수 : 김완, 김기택, 오병만(이상 제일합섬), 노윤관(국정교과서)
• 여자선수 : 이수장, 김경자(이상 제일모직), 안해숙, 황남숙(이상 동아건설)

일본을 비롯 미주 및 서구의 강호 19개국 25개팀이 참가한 당시 대회 여자단체전 준결승전에서 한국 B팀(이수자, 김경자)은 체코를 3대 1로 완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한편 한국 A팀(안해숙, 황남숙)은 준결승전에서 스웨덴 A팀에게 0대 3으로 패했다. 한국 B팀과 스웨덴 A팀간의 결승전에서는 3대 0의 일방적인 스코어로 완승을 거두어 한국 여자탁구가 다시 패권을 잡았다.

한국의 에이스 이수자는 첫 단식에서 세계 상위 랭킹의 린드불라드를 접전 끝에 2대 1(13, -12, 14)로 물리쳤으며, 이어 팔목부상으로 부진이 우려되던 김경자도 뛰어난 파이팅을 보이며 헬만을 2대 0(9, 19)으로 제압했다. 이수자. 김경자 두 선수는 2단식 승리의 여세를 몰아 복식에서도 2대 0(12, 15)으로 가볍게 승리, 대망의 정상에 올랐다.

당시 대회에는 중국과 북한이 불참하긴 했으나, 준준결승에서 일본을, 준결승에서는 동구의 강호 체코를 물리치는 등 한국 B팀은 세계 정상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한편 남자단체 결승전에서는 그 전해 세계랭킹 1위의 헝가리가 스웨덴 B팀을 3대 1로 물리쳐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남자 A팀은 1회전에서 영국 B팀에 2대 3으로 패했고, B팀도 역시 1회전에서 서독 A팀에 1대 3으로 패해 탈락했다.
 

▲ 한국 선수끼리 싸운 결승전. 한국이 웨일즈오픈 여자부 전 종목을 석권했다. 

여자부는 개인전도 한국의 독무대가 됐다. 단식에서는 김경자와 안해숙이 파죽의 연승의 거둬 나란히 결승에 진출, 우리끼리 우승을 다투게 되었으며, 여자복식도 이수자.김경자, 황남숙.안해숙으로 짜여진 두 복식조가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게 됐다.

이질 러버의 수비수 안해숙은 그동안의 부진을 씻고 준준결승전에서 웨일즈대회 4연패의 관록을 자랑하던 영국의 해머슬리를 풀세트 접전 끝에 3대 2(18, -8, -19, 14, 20)로 제압했으며, 준결승에서도 스웨덴의 강호 린드블라드를 역시 3대 2(-13, 18, 13, -16, 14)로 잡아 결승에 올랐다. 김경자는 준준결승전에서 체코의 하라코바를 3대 1(16, 13, -18, 15)로 완파하고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안해숙은 같은 수비전형 커트스트로크인 김경자와의 결승전에서 풀세트 접전을 벌여 3대 2(-12, 15, 14, -13, 9)로 승리, 국제대회에서 첫 우승을 기록했다.

이수자는 준준결승에서 체코의 하라코바에게 1대 3(17, -15, -7, -17)으로 패했으며, 황남숙 선수 역시 준준결승에서 스웨덴의 린드불라드에게 0대 3(-11. -13, -17)으로 패했으며, 황남숙 선수 역시 준준결승에서 스웨덴의 린드불라드에게 0대 3(-11, -13, -17)으로 패했지만, 수비전형의 팀동료들이 통쾌한 복수극 덕분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여자복식도 한국의 독무대였다. 이수자.김경자 조는 준결승에서 프랑스의 리리엣.스토크 조를 3대 0(13, 15, 19)으로 완파하여 결승에 올랐고, 황남숙.안해숙 조도 준결승전에서 영국의 해머슬리.자비드 조를 3대 0(15, 9, 19)으로 승리하고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이수자.김경자 조가 스칸디나비아 오픈대회 우승팀 안해숙.황남숙 조를 3대 0(15, 14, 18)으로 제압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혼합복식에서는 준결승에서 이상국.이수자 조가 스웨덴의 토로셀.린드불라드 조에게 0대 2로 패해 3위에 머물렀고, 김완.김경자 조도 스웨덴의 뱅트슨.해론발 조에게 1대 2로 패해 역시 3위에 머무는데 그쳤다. 결승에서는 토로셀.린드불라드 조가 뱅트슨.해론발 조에게 2대 0으로 승리, 우승을 차지했다.

 

웨일즈 카디프에 떨친 핑퐁외교

영국 웨일즈의 항구도시 카디프는 대회 개막일로부터 3일 동안 한국무드 일색이었다. 한국의 어린 선수들은 웨일즈 오픈 여자부 전 종목을 석권함으로써 그곳에 한국탁구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고 국위를 떨쳤다.

참가국 19개국 중 비유럽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 그러나 일본은 단체전 및 개인전에서 초반에 모두 탈락하여 빛을 잃었다. 그곳 웨일즈 출신인 로이 에반스 국제탁구연맹 회장은 누구보다도 한국의 완승에 감격하여 축하를 해주었으며 특히 여자챔피언인 안해숙 선수를 극찬했다.

환송파티에서의 주인공도 한국 팀이었다. 경기에서 이긴 것은 물론 외교무대에서도 성과가 컸다. 서울오픈대회 때 서울을 방문했던 에반스 회장 부처의 환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감격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소식은 아시아탁구연합(ATTU)의 부회장인 중국의 서인생(ITTF 부회장 겸임)이 국제탁구연맹에 낸 80년도 아시아지역 보고서에서 중국이 주최했던 상해 친선대회에 앞서 서울오픈대회를 톱으로 올려놓았다는 에반스 회장의 전갈이었다. 여러 가지 조짐으로 미루어 ATTU 가입 전망이 밝아졌음을 예고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 여자탁구는 영국 카디프에서 폐막된 웨일즈 오픈대회에서 단체전 및 개인복식을 모두 석권함으로써 2개월밖에 남지 않은 유고 노비사드 세계선수권대회에 밝은 전망을 안겨주었다. 비록 세계 정상인 중국과 강호 북한이 불참했지만, 세계 여자탁구의 1군인 스웨덴, 체코, 헝가리, 폴란드, 영국 등 유럽 강호들의 모두 출전한 가운데 벌어진 당시 대회에서 이수자, 김경자, 안해숙, 황남숙 등 나이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이 단체전 우승 및 단.복식 1,2위를 차지하는 등 여자부 3개 종목을 모조리 휩쓰는 기염을 토한 것이었다.
 

▲ 웨일즈오픈 여자단식 챔피언 안해숙.


이로써 한국여자탁구는 그 전해 11월 스웨덴에서 열렸던 제23회 스칸디나비아오픈대회에 이어 또다시 힘의 탁구를 구사하는 유럽세를 완전히 꺾음으로써 유럽세 보다는 한국이 한 수 위임을 완전히 입증했다. 그것은 또한 세계정상 탈환에는 중국벽 만이 남아있음을 다시 확인한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각종 국제대회 우승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자탁구가 명실상부한 세계정상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벽을 넘어야 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웨일즈오픈을 통해서 한국의 에이스 이수자의 건재를 확인했고, 부진했던 안해숙이 국제대회 첫 단식 패권을 획득하며 상승세에 올라섰으며, 손목 부상으로 우려를 낳았던 김경자가 2관왕의 영예를 차지하며 황남숙과 함께 전력에 크게 가세하는 등 뚜렷한 상승세에 올라선 것도 사실이었다.

그에 따라 많은 전문가들은 남은 기간의 훈련에 따라 4월의 세계선수권대회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볼 수도 있겠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리기 시작했다.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기 전 마지막 오픈대회였던 웨일즈오픈은 우리에게는 낯선 대회였지만, 유럽선수들의 전력을 최종 점검하는 한편 자신감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뜻 깊은 대회였다.

 

대표선수단 개선

웨일즈 오픈대회에서 여자단체전과 단.복식을 석권한 한국대포 선수단이 1월 30일 하오 김포공항에 도착, KAL기편으로 개선했다. 선수단은 도착 후 공항광장에서 간단한 환영식을 가졌다. 이날 공항에는 최원석 회장과 탁구인, 그리고 가족, 각 언론사 보도진 등 200여명이 출영,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둔 마지막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온 선수단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한상국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웨일즈 오픈대회가 열린 카디프는 한국 무드 일색이었다고 전하고 영국 웨일즈탁구협회 회장이기도 한 국제탁구연맹 로이에반스 회장의 환대가 대단했다고 보고했다.

박성인 총감독은 웨일즈 오픈대회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기 전의 최종 오픈대회로써 유럽 각국의 전력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대회였다고 설명했다. 이 대회에서 유럽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여자부 전 종목 우승을 일군데 대해 박 감독은 “1군 16개국 중 4개국을 제외한 12개국을 차지하는 유럽탁구에 자신을 얻었다.”고 강하게 덧붙였다.

여자단식에서 우승, 초점을 모은 안해숙도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으며, 최원석 회장은 “이제부터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얻은 자료와 전력을 분석,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 세계정상에 도전하자”고 힘주어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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