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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만든 두 개의 사건라이벌 열전> 산업혁명 VS 시민혁명
서미순 기자  |  redr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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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5  14: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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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시작된 후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지만, 그 모든 사건을 합치고도 남을 만큼 중대한 사건은 18세기에 일어났다. 삶의 방식과 질,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변화와 각성이 시작되면서 수천, 수백 년 동안 인류를 옥죄어왔던 고정관념들과 굴레가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가 진정한 인간다운 삶을 꿈꾸게 된 이 사건을 우리는 ‘혁명’이라 부른다.  


자본주의의 기틀, 산업혁명

영국은 전통적으로 모직물 산업이 발달한 나라였다. 그러나 18세기부터 튼튼하고 저렴한 면직물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관계 산업들까지 주목 받게 된다. 식민지에서 재배된 면화가 싼값에 다량으로 유입되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그럼에도 생산량이 수요량에 미치지 못하자 사람들은 면직물을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 낼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에 많은 기술자에 의해 면화에서 실을 뽑기 위한 방적기가 만들어졌고 그 실로 옷감을 짜는 기계인 직조기도 발명되었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은 넓은 공간을 마련해 고가의 기계를 여러 대 들여놓고 이를 가동할 사람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인류 탄생 후 계속되던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산 활동의 시대는 끝이 나고 분업화, 대량화된 생산의 시대가 막을 열게 되었다.  
 

   
▲ 영국 산업혁명의 시작이 된 면직물 생산 공장.


특히 기계를 움직이기 위해 보다 강력한 동력을 찾는 사람들에게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의 등장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열에너지를 기계동력으로 바꾸는 증기기관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계속되어왔지만 효율이 낮아 엄청난 양의 석탄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와트가 개발한 증기기관은 보다 적은 연료를 사용하면서 훨씬 많은 동력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기에 지금까지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와트의 증기기관을 이용한 대량 생산 시대의 도래야말로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보는데 이후 기계화의 바람을 타고 더 많은 기계들이 발명되고 관련 산업들까지 발전하게 된다. 무엇보다 증기기관과 결부된 산업인 석탄, 제철 분야에서 대대적인 혁신이 일어나면서 증기기관차가 만들어졌고 대규모로 생산된 다양한 제품들이 철도에 실려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전 세계의 경제를 지배하고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정부의 주도하에 영국의 사례를 본받기 시작했다.  

   
▲ 증기기관을 만든 제임스 와트.


민주주의의 기틀, 시민혁명

중세 봉건 시대가 막을 내리고 절대왕정기가 시작되자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시민)가 등장한다. 이들은 귀족은 아니었지만 많은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인데다가 높은 지식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왕과 귀족의 지배를 받아야 했고 무엇보다 이들이 낭비하는 국비를 충당하기 위해 높은 세금을 감당해야 했다. 이들은 이러한 모순과 국가 권력의 횡포에 저항하여 사회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결국 근대적 공화국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는데 이를 시민혁명이라고 부른다. 

보통 시민혁명은 왕정을 폐하고 의회 중심의 입헌 정치를 수립한 영국의 명예혁명(1688)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선언한 미국의 독립혁명(1776)을 거쳐 프랑스 혁명(1789)에서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전 국민이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위해 일어선 혁명이며 시민이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게 된 최초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이 시민, 노동자, 농민 등으로 구성된 제3신분을 지배하며 온갖 특권을 누리고 세금 면제는 물론 공직까지 독점하고 있었다. 반면 제3신분의 사람들은 프랑스 인구의 98%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세금을 내는 의무만 지워졌을 뿐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사회적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 제3신분의 대표들이 독자적으로 국민의회를 선언하자 루이16세는 회의장을 폐쇄시켰지만 이들은 테니스 코트에 모여 ‘헌법을 제정할 때까지 해산하지 않을 것’을 선서했다(자끄 루이 다비드 그림).


하지만 이들에게 정치 참여의 길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부회라는 이름으로 제1, 제2, 제3신분의 대표들이 모여 중요한 의제에 관해 토론하고 결정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1614년 이후 한 번도 소집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789년, 권력자들의 사치와 미국 독립전쟁의 지원으로 재정이 급격히 악화되어 국가경제가 파산에 직면하자 루이 16세는 면세 특권을 누리던 제1, 제2신분에게도 세금을 징수하려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특권을 누려온 성직자들과 귀족들이 이에 반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중요한 사항을 자신들끼리 결정할 수 없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결정을 거부했고 결국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삼부회를 소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투표 방식을 두고 갈등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제3신분인 평민 대표들이 독자적으로 국민 의회를 구성하자 왕은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국경을 수비하던 군대를 베르사유와 파리로 진군시켰고 분노한 파리 시민들은 밤사이 무기고를 습격하고 무장하여 이에 맞서게 된다. 그리고 국왕에 반대하는 정치범들을 가두는 곳이자 구체제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으로 쳐들어가 함락시키는데 이후 혁명의 바람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은 현재 진행 중

흔히 산업혁명을 ‘18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일어난 기술혁신과 사회, 경제 구조의 변화’라고 말한다. 또한,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공업 중심의 사회로의 변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산업혁명이 공업 중심 사회로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는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기술혁신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산업혁명은 1차(18세기 후반, 증기기관 탄생과 공업화)부터 2차(19세기 후반, 기계식 대량 생산), 3차(20세기 중반, IT의 발전과 공장 자동화)를 거쳐 현재의 4차(현재, 인공지능을 통한 무인생산시대) 산업혁명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시민들에게 공격받아 함락되는 바스티유 감옥(장 피에르 루이 로렌트 휴엘 그림).


시민혁명 역시 현재 진행 중이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 아래 봉건적 계급 사회를 타파하고 시민 사회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프랑스 혁명 이후, 이는 전 세계로 전파되며 많은 시민혁명을 이끌어냈지만, 프랑스에서조차 이 개념이 뿌리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 세기 동안 누려온 권력과 특권을 놓지 않으려는 자들과 시민 모두의 평등한 권리를 찾으려는 사람들 간의 투쟁은 쉽게 끝이 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영웅으로 알려진 나폴레옹 1세조차 자국 프랑스에서는 어렵게 만들어낸 시민 사회를 끝장내려고 했던 사람으로 인식되어 크게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전쟁 영웅이었지만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규합한 이후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황제로 즉위하여 프랑스 혁명이 만들어놓은 시민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려 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그의 사후 등장한 조카가 죽은 나폴레옹 1세의 인기에 편승해 프랑스에서 권력자가 되고, 그마저 황제(나폴레옹 3세)를 자칭하게 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나폴레옹 1세에 대한 향수는 사라지고 만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개개인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를 기대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속한 사회가 점점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매일매일 우리는 더 좋은 세상을 꿈꾸며 변화를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월간탁구 2016년 12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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