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TF 월드투어 플래티넘 2017 중국오픈

중국의 장지커는 마롱과 함께 현역 남자 선수로는 유이하게 탁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다. 세계선수권대회는 2011년(로테르담)과 2013년(파리) 대회에서 2회 연속 우승했고, 월드컵은 2011년(파리)과 2014년(뒤셀도르프) 대회에서 2회 우승했다. 그리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그랜드슬램만 놓고 보면 마롱보다도 무려 4년이나 빨리 달성했다. 하지만 2015년부터는 부상 및 소속팀과의 불화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조금씩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고, 최근까지도 크고 작은 부상으로 예전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장지커는 최근 예전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이상수와의 경기 전 모습이다. 사진 월간탁구DB(ⓒ안성호).

하지만 장지커는 메이저대회가 있을 때마다 코치진의 신뢰 속에 대표팀에 선발됐다. 2016년 리우 올림픽과 2017년 뒤셀도르프 세계선수권대회도 모두 코치진의 선택을 받아 출전했다. 리우 올림픽 때는 ITTF(국제탁구연맹)가 세계1, 2위 마롱과 판젠동에게 초청장을 보냈지만 중국이 마롱과 장지커를 출전시켰고, 올해 뒤셀도르프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부상으로 선발전에서 중도 탈락했음에도 또 다시 협회 추천을 받아 출전기회를 잡은 것이다. 한 때, 류궈량 감독이 인터뷰에서 장지커를 가리켜 “마음만 먹으면 늘 기적을 만들어내는 선수(Once he decides to do something, he usually creates miracles)”라고 표현했을 정도니 장지커에 대한 코치진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리우 올림픽에서 장지커는 결승 진출에 성공하며 코치진의 기대에 부응했다. 올림픽과 같은 최고의 국가대항전에서 도중에 탈락하지 않고 결승에 오른 것만 해도 자신의 역할은 충분히 달성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뒤셀도르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32강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말았다. 64강전에서 오스트리아의 로베르트 가르도스를 4대 2(11-6, 11-5, 11-13, 11-9, 7-11, 11-8)로 이겼지만, 32강전에서 우리나라의 이상수(국군체육부대)에 1대 4(9-11, 6-11, 13-11, 6-11, 10-12)로 패했다.

- 장지커 “상대가 매우 공격적이었던 반면, 나는 약간 느렸고, 정신적으로 좋지 못했다. 돌파구를 발견하기가 힘들었다. 만약 5게임을 이겼다면 기회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소극적이었다. 내 준비는 예전과 같았고, 나는 이상수를 상대로 예전에 몇 번 경기를 했었다. 그의 공격은 오늘 더욱 날카로웠고, 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오늘 경기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정신적인 영향이 더욱 컸다. 올해 당했던 부상은 큰 영향이 없었다.” (ITTF 인터뷰 내용 中)

장지커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패배가 부상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장지커가 올해 뒤셀도르프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발 부상으로 도중에 기권했던 것을 감안하면, 부상 역시 뒤셀도르프의 부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장지커는 2회 연속으로 개최된 플래티넘 대회 중 먼저 개최된 일본 오픈에는 참가하지 않았고, 자국에서 개최된 중국 오픈에 참가했다.

장지커는 홈그라운드에서 개최된 중국 오픈에서도 남자개인단식 본선1라운드 32강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말았다. 첫 경기에서 일본 유망주 요시다 마사키에 0대 4(7-11, 0-11, 0-11, 0-11) 완패를 당했는데, 스코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끝까지 경기를 한 것이 아니라 첫 게임을 7-11로 패한 뒤 엉덩이 쪽 부상이 심해질 것을 우려해 남은 경기를 기권한 것이다. 장지커로서는 부상으로 휴식이 필요했지만 또 한 번 출전을 강행한 것인데, 이 모습은 지난 뒤셀도르프 국가대표 선발전 때와 아주 유사한 상황이다. 그때도 장지커는 발 부상으로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최대한 경기에 참가했고, 결국 마지막에 기권하고 말았었다.
 

▲ 장지커는 이번 중국오픈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중도 기권했다. 대회 개막 전 기자회견장에서의 모습이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그럼, 장지커는 부상 중에도 왜 대회 출전을 강행(强行)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시 막강한 탁구팬들을 바탕으로 한 장지커의 팬덤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장지커는 매일 경기장을 찾는 고정팬 1,000여 명에 무려 8백만 명에 이르는 웨이보 팔로워를 거느린 특급스타다. 그 같은 팬덤을 고려할 때 중국탁구협회 입장에서 장지커는 자국에서 대회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저 멀리 독일 뒤셀도르프 체육관까지 가득 메운 장지커의 팬심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장지커는 은퇴도 마음대로 선택하기가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탁구 성적으로는 마롱이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탁구팬들의 인기와 관심만큼은 여전히 장지커가 최고다. 중국탁구협회 역시 매번 추천 카드를 쓸 때마다 장지커 선택을 놓고 고심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장지커가 세계 최정상권 선수임에 분명하지만, 최근 2년 동안 하락세가 뚜렷한 것을 감안하면 선택에 대한 고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I only like Zhang Jike(장지커만을 좋아해!!)

Nobody can stand by Zhang Jike(그 누구도 장지커 옆에 있을 수 없어!!)

팬들이 장지커를 향해 외치는 구호다. 만약 장지커가 협회 추천에서도 탈락이라도 하는 날이면 중국탁구협회는 8백만 팔로워들에게 엄청난 항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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