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환의 백과사전

 


여자복식 1,2,3위 휩쓸어

수년간 거듭되던 중국의 스칸디나비아 오픈탁구선수권대회(SOC) 여자부 전종 목 우승이 마침내 한국 팀에 의해 저지됐다. 1980년 11월 30일 스웨덴 칼스크로나에서 막을 내린 SOC 대회 개인전 여자복식 경기에서 한국 여자대표팀은 1,2,3위를 휩쓸면서 제2의 황금기를 예고했다. 이날 한국 선수들끼리 맞선 결승전에서 황남숙.안해숙 조가 이수자.김경자 조를 2대 0(14, 14)으로 물리쳐 영예의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복식에 출전한 한국선수 6명 3개조는 중국, 일본 등을 차례로 꺾고 모두 준결승에 진출했다. 게다가 4강의 남은 한 자리마저 북한의 이성숙.장연옥 조가 채워 동 대회 여자복식은 한민족의 독무대가 됐다. 어쩔 수 없이 치러진 또 한번의 남북대결에서는 한국의 황남숙.안해숙 조가 북한의 이성숙.장연옥 조를 숨가뿐 접전 끝에 2대 1(10, -17, 17)로 무너뜨렸다. 황남숙.안해숙 조의 승리는 한국팀의 1,2,3위 상위 완전독점을 실현시킨 쾌거였다.

한국이 여자복식을 석권한데는 박홍자.신경숙 조의 역할이 컸다. 박.신 조는 2회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중국의 에이스였던 장덕영.조연화 조에 2대 0(17, 20)이라는 스코어로 예상 밖에 완승을 거둔데 이어, 준준결승전에서도 또 한번의 벅찬 상대였던 일본의 와다.다마루 조마저 2대 1로 이기는 등 난적들을 도맡아 탈락시켰던 것이다.

한국 여자탁구가 SOC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1972년 15회 대회에서 이에리사.정현숙이 단.복식을 석권한 뒤 무려 8년만의 쾌거였다. 여자단체전에서 2위를 차지한데 이어 개인전 복식에서도 맹위를 떨친 한국 여자탁구는 이로써 앞으로 있을 각종 국제대회 여자단체전의 정상탈환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했다. 황남숙.안해숙의 신예 콤비가 전년도 프랑스오픈에서 중국 선수들을 연파하고 우승했던 선배 이수자.김경자 조를 제치고 정상에 오른 것 또한 한국으로서는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한편 이 대회 여자단식에서는 황남숙이 준준결승까지 올라갔으나 중국의 장덕영에게 1대 2(-18, 10, -16)로 아깝게 패해 4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혼합복식에서도 김기택.안해숙 조가 체코의 드브리체크.실하노바 조에 석패, 준결승 일보직전에서 탈락했다. 당시 대회 여자단식 패권을 중국의 조연화가 차지했으며 남자단식은 스웨덴의 울프 칼슨, 남자복식은 프랑스의 세크래탱.비료쇼 조가 우승했다. 중국은 이 대회에서 남녀단체전을 비롯, 여자단식과 혼합복식 등 4개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 여자복식 세부전적

● 준결승전
이수자.김경자(한국) 2 (-17, 16, 16) 1 박홍자.신경숙(한국)
황남숙.안해숙(한국) 2 (10, -17, 17) 1 이성숙.장연옥(북한) 

● 결승전
황남숙.안해숙(한국) 2 (14, 14) 0 김경자.이수자(한국)

 

에이스로 떠오른 18세의 황남숙

80년대의 막을 연 그해에는 많은 스타들이 탄생하여 국내외 무대에서 찬란한 빛을 발했다. 그중에서도 혜성처럼 등장, 가장 많은 주목을 모은 행운의 새 얼굴은 단연 황남숙이었다. 정현숙.이에리사의 잇단 은퇴, 그리고 그 전해 평양세계대회 출전 좌절로 한때 실의에 빠져 있던 한국여자탁구는 황남숙 선수의 등장으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

18세의 신인 황남숙이 제1회 서울오픈국제대회 여자단식 패권을 차지했을 때만 해도 많은 탁구인들은 행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11월 30일에 끝난 SOC 대회에서 강자들을 쓰러뜨리고 여자복식을 제패하자 세계정상급의 실력을 인정하게 됐다. 이로써 그녀는 세계정상 탈환을 꿈꾸는 한국여자탁구의 새 에이스로 떠올랐다.

73년 사라예보 세계제패의 주역 이에리사를 연상시키는 파워의 공격탁구로 국내에서 각광을 받아왔던 황남숙은 서올 오픈대회에서 당시 국가대표팀의 두 기둥 이수자와 김경자 선수를 연파하고 우승, 탁구인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렇게 국내 정상으로 발돋움했던 그녀가, 익년 유고 노비사드 제36회 세계대회의 전초적인 SOC 대회에서 세계스타의 대열에 올라선 것은 협회의 입장에서도 큰 성과라 아니할 수 없었다.

5억여원을 투입, 35개국을 초청해서 서울오픈을 창설하고, 기흥에 국가상비군 전용체육관을 세우는 등 세계정상 재도전의 기틀을 마련해온 최원석 회장은 “그동안 애쓴 보람이 있다. 황남숙 선수를 세계 제일의 스타로 만들고 싶다.”라고 야심을 보이기도 했다.
 

▲ 스칸디나비아 오픈탁구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개선한 한국대표 선수단이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황남숙의 진가는 북한과의 단체 준결승전 최종 5차 단식에서 십분 발휘되었다. 0대 2로 지고 있던 한국은 3번 복식부터 추격을 개시, 2대 2 타이를 만드는데 성공함으로써 승부의 열쇠를 최종주자 황남숙에게 넘겼다. 상대는 이질러버로 수비하는 세계 랭킹 2위 이성숙이었다. 황남숙은 앞선 1번 단식에서 세계대회 단식 2연패의 박영순에게 석패하고 분루를 삼켰지만 어린 나이로서는 보기 드문 무서운 투지를 보여준 바 있어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결국 황남숙은 마지막 단식 첫 세트를 21대 14로 선취하고 두 번째 세트를 듀스 끝에 21대 23으로 내준 뒤 마지막 세트에서 21대 14로 이겨 최종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큰 승부를 하는 대표선수는 기술에서도 배짱이 필요하다. 중학 1학년 때 탁구를 시작, 성수중.고 남자 선수들과 연습을 많이 해온 그녀는 스케일이 큰 탁구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이 서비스가 약한데 비해 황남숙은 강한 회전서브로 초반에 공략하는 것이 특기였다. 동 대회 개인단식에서도 여섯명의 선수 중 유일하게 8강에 진출한 황남숙은 중국의 간판선수 장덕영에게 한 세트를 빼앗기도 했다. 연습벌레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꾸준히 노력하는 그녀를 많은 탁구인들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주목했다.

 

세계정상급 재확인

SOC 대회에서 한국은 여자단체전 준우승, 여자개인복식 1,2,3위를 석권함으로써 여자탁구가 여전히 세계정상급임을 다시 확인했다. 세계의 강호들이 모두 참가한 당시 대회는 그 익년 4월로 박두한 세계선수권대회(유고 노비사드)의 전초전이란 점에서도 관심을 모았는데 세대교체를 단행한 한국의 여자탁구가 북한, 일본 및 유럽제국을 깨고 중국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는 것은 통쾌하고도 큰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사라예보 세계제패의 주역 이에리사와 정현숙의 은퇴이후 다소 불안한 기색을 보였던 한국의 여자탁구는 이로써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세계챔피언을 2연패했던 박영순과 평양대회 단식 준우승자인 이성숙을 내세운 북한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단체 준결승은 패기에 찬 한국의 신진들이 세계 탁구계를 놀라게 한 명승부였다.

한국은 당시 대회에서 북한과 네 번 싸워 세 번을 이겨 우위를 지켰는데, 이겼다는 단순한 사실보다도 우리의 신진들이 북한의 역전노장들을 굴복시킴으로써 앞날을 밝혔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찾았다. 비록 단체 결승전에서 중국에 0대 3으로 져 우승을 놓쳤으나 실력의 차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한국은 일본, 북한 등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에 오른데 비해 중국은 비교적 실력이 낮은 국가들을 상대로 순탄하게 올랐기 때문에 같은 조건에서의 대결이 아니기도 했다.

당시 언론들의 평가도 중국이 기술에서 약간 앞섰지만 투지는 우리가 강해 해볼만한 상대였다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경기는 박홍자.신경숙 조가 중국이 자랑하던 세계정상 장덕영.조연화 조를 2대 0(17, 20)으로 완파한 시합이었다. 여자복식에서 우리가 1,2,3위를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발판이 된 그 경기는, 앞으로 중국 격파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청신호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북한을 편애, 남북대결 때마다 북한을 응원해오던 중국 선수단이 당시 대회 때는 한국의 실력을 인정하고 우호적인 제스추어를 해왔다는 사실도 특기할 만 한 일이었다. 한국의 국제적인 지위향상을 실감케 한 그 같은 움직임은 경기력을 뒷받침한 스포츠 외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것이기도 했다.

어쨌든 신진선수들로 대표 팀을 쇄신한 우리 한국으로서는 날로 발전하는 주전들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 동 대회의 가장 큰 성과였다. 여자탁구의 앞날을 더욱 밝힌 당시 대회를 통해 한국이 여전히 세계정상국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는 점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 영광의 얼굴들. 스칸디나비아 오픈에 참가하고 개선한 대표선수단. 당시 대회를 통해 한국탁구는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대표선수단 개선

당초 SOC 대회를 마친 뒤 12월 4일부터 7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제28회 프랑스오픈 선수권대회까지 참가하는 장기간의 유럽 전지훈련을 계획했던 한국선수단은 SOC 대회의 예상치 않은 성과로 조기 귀국했다. 4개월 남짓 남은 세계대회 대비를 국내에서 보완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한국선수단은 12월 6일 낮 12시 40분 JAL기편으로 개선, 문교부차관을 비롯, 체육인, 가족친지들 그리고 각 언론기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공항광장에서 베풀어진 환영식에서 김우중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이번 대회에서 특히 북한을 제압하고 단체전 준우승과 여자복식 1,2,3위를 차지함으로써 한국 스포츠의 우위를 입증했다.”며 선수단의 노고를 치하했다. 최원석 회장도 “전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세계정상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면서 “익년 4월 세계대회에서 정상을 되찾기 위해 더욱 분발, 기량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수단은 환영식에 이어 호화로운 9대의 오픈카에 분승, 경찰 싸이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강남로-대방동-구로공단-신길동-대림동-서울대학교-아현동-서소문-안국동-동대문-종로-광교-무교동 대한체육회관 앞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여 시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이어 무교동 대한체육회관 10층 강당에서 협회에서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한국선수단의 김경태 단장은 ‘첫째 세대교체가 완전히 성공했다는 점, 둘째 한국과의 대전에서 승산이 없으면 국제무대에 나서지 않는 북한을 통쾌하게 격파했다는 점, 셋째 중국과 대등한 경기를 벌여 우리의 젊은 선수들이 중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완전히 씻을 수 있었다는 점’을 이번 대회의 성과라고 밝혔다. 또한 박성인 총감독과 선수 개개인에 대한 소감도 주고받으면서 선수단은 익년 세계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올릴 것을 다짐했다.

 

여자선수들에게 아파트 한 채 씩 기증

기자회견이 끝날 즈음에 대한탁구협회 최원석 회장은 SOC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개선한 여자선수단 안해숙, 황남숙, 이수장, 김경자, 박홍자, 신경숙 6명의 선수에게 아파트 한 채 씩을 선물하겠다고 기증서를 전달했다. 기증하는 아파트를 최원석 회장이 대한주택공사 측의 특별배려로 마련해 기증한 것으로 둔촌동 주공아파트 34평형(분양가 2천 3백만 원)이었다. 최원석 회장이 이들 아파트 분양대금 1억 3천 8백만 원을 희사하여 일단 대한체육회에 체육기금으로 헌납, 이를 선수 부모들에게 지급하여 아파트를 구입하는 방법이었다.

이 같은 아파트 제공의 이면에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하나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 당시 신문에 보도됐던 황남숙의 사진. 그녀는 서울오픈 2관왕에 이어 스칸디나비아오픈 복식 타이틀을 차지, 일약 세계의 스타로 떠올랐었다. 

선수단이 귀국하여 카퍼레이드를 진행하는 동안 최원석 회장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다. 회장님의 특별 배려로 기자회견이 끝나는 자리에서 여자단체 준우승고 개인복식 1,2위를 차지한 이수장, 김경자, 안해숙, 황남숙 4명의 선수에게 아파트 한 채 씩을 선물 할 테니 4명에 대한 각각의 기증서를 만들라는 전갈이었다. 그런데 사무국에서 기증서를 작성하면서 생각하니 여자복식에서의 좋은 성과는 박홍자.신경숙 선수가 중국의 에이스 장덕영.조연화 조를 물리쳐 준 영향이 컸는데 두 선수를 제외한다면 이들 선수에게는 커다란 심적 타격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이 생겼다.

카퍼레이드에 동승했다가 하차한 최원석 회장이 추운 날씨 탓으로 체육회관 옆 식당에서 휴식하는 동안 협회 사무실에 들른 김경태 단장에게 필자가 이 같은 판단을 전했다. 김경태 단장도 그 점을 즉시 감지, 6명 모두에게 기증해야 된다는 정황을 회장께 보고하기로 했으나 기자회견 시간이 바로 임박해있어 그 기회를 찾기가 마땅치 않았다. 사무국에서는 일단 6명 모두에 대한 기증서를 작성했다.

우연찮게도 체육회관은 10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고 9층까지만 되어있었다. 그래서 김경태 단장을 9층에서 기다리게 하고 필자는 체육회관 건너편 식당에 가서 회장을 모시기로 했다. 그리하여 체육회관 엘리베이터를 탄 필자와 최 회장은 9층에서 내렸다. 대기하고 있던 김경태 단장이 바로 다가가 10층으로 걸어 올라가는 사이 그 같은 정황을 보고 드렸다. 얘기를 들은 최 회장도 그 내용을 바로 수긍하고 기증서 2장을 빨리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 기증서를 사무국에서 이미 준비해둔 상태였음은 앞에서 이미 밝혀둔 바 있다.

박홍자.신경숙 선수가 아파트를 기증받은 것은 그처럼 순간적인 행운이 따른 것이다. 단순한 에피소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 액수의 크고 작음을 넘어서 최원석 회장의 순간적인 판단과 이해가 우리 탁구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는 감동적인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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