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치마 VS 바지

날카로운 이빨과 강한 발톱, 몸을 보호하는 털과 단단한 가죽을 가진 동물에 비해 인간이란 존재는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인간은 이빨과 발톱 대신 돌과 막대기를 들어 무기 삼았고, 연약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짐승의 가죽을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런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도구의 사용이야 말로 인간을 지금까지 생존하게 한 중요한 발견이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인류 최초의 옷

▲ 그리스의 히마티온을 입은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석상.

인류가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몸을 장식하거나 특정 부위를 가리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엇보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피부는 연약하기 그지없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상처 입고, 추위나 더위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을 정도다. 옷이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도 이러한 ‘신체 보호 기능’을 가장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벌거벗은 인류가 신체에 무언가를 두르기 시작한 것도 빙하기가 지구를 덮친 시기부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인류 초창기의 옷은 동물의 가죽이나 식물의 잎사귀를 뼈바늘로 엮어 만들었다. 그래도 옷 만드는 기술은 아직 미비했기 때문에 넓은 천을 몸에 둘러 걸치는 형태의 옷을 입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히마티온과 로마의 토가, 인도의 사리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얼핏 여자들이 입는 원피스처럼 보이지만 남자들도 같은 방법으로 옷을 입었고 여성들보다 좀 더 활동적이었어야 했기 때문에 그저 길이만 좀 짧았을 뿐이다. 천의 한가운데에 머리를 넣을 구멍을 뚫어 걸치는 튜닉 형태의 옷을 입기도 했지만 역시 원피스처럼 상의와 하의가 붙은 치마처럼 보였다. 체형이나 치수에 맞추어 재단하고 재봉할 필요가 없는 이런 옷들은 만들기도 편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 룽기를 입은 동남아시아의 남성들. 무더운 날씨에 적합한 옷이다. 

옷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고 상의와 하의가 구분되면서 상의는 팔과 목을 꿰입을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하의는 여전히 위아래로 구멍이 뚫리거나 넓은 천을 허리에 두르는 치마 형태의 옷을 입었다. 이렇듯 현대의 치마는 여자들의 옷이지만 원래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스코틀랜드의 킬트, 발칸 반도의 푸스타넬라, 동남아시아 지역의 룽기 등이 남자가 입는 치마가 현재까지 이어진 사례라 할 수 있다.



 


야만인의 문화였던 바지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 지역에 거주하거나 농사를 지으며 정착 생활을 하는 민족들에게 치마는 이미 완벽한 복장이었다. 하지만 한랭 건조한 대륙성 기후 지역에 거주하거나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좀 더 보온성이 높고 활동적인 옷이 필요했다. 바지는 이런 필요 때문에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옷이다. 기원전 6세기경, 산악지대에서 말을 타던 페르시아인들이 처음으로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유럽에서는 추운 지방에 살던 켈트족이 먼저 바지를 입었으니 오랜 정착 생활을 기반으로 문명을 발전시켜가던 이들에게 바지는 자신들의 터전을 위협하는 야만인의 복장, 그 이상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 야만인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바지야말로 전투에 최적화된 활동적인 복장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점차 군인들을 중심으로 바지 문화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중국도 바지를 호복(胡服), 즉 오랑캐의 옷이라 부르며 멸시했지만, 기원전 4세기경, 조(趙)나라에서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군인들에게 바지를 입히면서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기마전술을 도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오랫동안 바지는 여성들에게 허락된 옷은 아니었다. 여성의 다리 선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성적 상징으로 여겨지고,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허락되지 않던 시대에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터에 나선 남성들 대신 여성들이 노동 현장에 나서면서 점차 바지를 입는 여성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기에 여성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했지만, 이는 태평양 전쟁으로 인한 물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이 조선 여성들의 노동력 착취를 위해 일본 여성들의 작업복이라 할 수 있는 ‘몸뻬 바지(もんぺ : 몬뻬)’를 강요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일본은 조선 여성들이 몬뻬를 입지 않으면 버스, 전차는 물론 관공서나 극장 같은 곳에도 발을 들일 수 없도록 출입을 금지하면서까지 이를 보급해갔다. 




치마와 바지의 사회적 의미

바지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여성에게 치마를 강요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제한하려는 노골적인 취지로 1800년에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여성 바지착용 금지조례’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대학병원에서 여의사에게 바지가 허용된 것이 90년대 초반의 일이었고, 항공사 여자승무원에게 유니폼으로 치마와 바지를 함께 지급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들은 매년 패션쇼마다 다양한 남성용 치마를 선보이고 있다. 


수십 세기 동안 남녀 구분 없이 입어온 치마는 바지가 생겨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치마는 점차 불편하고 비활동적인 옷이라 인식되기 시작했고 여성들을 위한 옷으로 분류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치마 그 자체만으로 여성에게 여성스러움을 ‘강요’한다고 생각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에는 바지 대신 치마를 입겠다는 남성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추세다. 유명 디자이너들이 해마다 남성들을 위한 치마를 선보이는 것은 물론 패션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남성들까지도 치마 입기에 동참하고 있다. 여학생들이 추운 겨울날만이라도 바지 교복을 입고 싶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남성들도 무더운 날에는 시원한 치마를 입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회가 원하고 규정해놓은 이상적인 옷차림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가장 편하고 좋은 옷이 무언지를 찾고 있는 과정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지금처럼 옷이 인간을 가두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처음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던 때처럼 다시 옷을 인간에게 맞춰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월간탁구 2016년 9월 게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