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핑퐁 조승민(대전동산고)

지난달의 코리아오픈은 한국탁구에 빛과 그늘을 동시에 드리웠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는 대표선수들이 부진했던 반면 미래를 담보하는 청소년 선수들이 선전했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톱-랭커 니와 코키를 꺾은 조승민은 단연 돋보인 주인공이었다. 마침 전진훈련 중이던 삼성생명 체육관에서 이 ‘차세대 에이스’를 만났다.

돌아온 탁구천재
  장충초등학교 시절, 조승민은 까불까불하고 말도 많던 친구였다. 누가 무슨 말을 건네도 무서운 것 하나 없이 또박또박 대꾸하던 당돌한 꼬마였다. 하긴, 출전하는 대회마다 밥 먹듯이 우승했고, 6학년 때는 국내를 넘어 호프스대표로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동아시아도 평정했으니 선수로서 즐겁고 신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하지만 조승민에게서 이젠 예전의 밝고 장난기 많던 모습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정면보다 약간 아래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농담을 해도 입가에 옅은 미소 정도 드리우는 게 고작이다. 훌쩍 자라버린 몸만큼이나 마음도 깊어진 것일까. 한국탁구의 미래를 짊어진 기대주라는 무게를 조승민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승민은 중학교 시절에 부침을 겪었다. 초등부를 평정했던 동료들과 함께 기존 팀이 아닌 새 팀 창단을 선택했지만 맘껏 꿈을 펼치지 못했다. 예산 등 몇 가지 문제로 시합 출전에 난항을 겪자 아들의 미래를 걱정한 아빠 조용운 씨가 결단을 내렸다. 중학부 최강 대전동산중으로 옮긴 것까지는 좋았으나 이적제한규정에 묶여 1년간 국내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유망주 한 명에게 주어졌던 세계선수권 출전경험의 기회도 아쉽게 양보해야 했다.
  진학을 준비해야 할 3학년도 거의 지나가던 작년 10월에야 조승민은 겨우 제한규정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직후에 출전했던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대표선발전에서 조승민은 아깝게 선발권에 들지 못했다. 한창 기량을 끌어올려야 할 시기에 잠시 내려놓았던 실전감각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실상 조승민이 경쟁한 상대들은 장우진(성수고), 김민혁(창원남산고), 임종훈(대전동산고), 박정우(중원고) 등등 고등부 최강자들이었다.
  어쩌면 조승민은 거칠 것 없던 꿈나무 시절과 달리 더 큰 무대에서 더 강한 상대들과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선수로서의 숙명을 비로소 실감하면서 한 단계 성숙해진 건지 모른다. 예정에 없던 공백기에 느꼈던 답답함 혹은 조급함 같은 감정들을 조승민은 시합 직전의 설렘이나 긴장감으로 승화시켰고, 곧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연말 종합선수권에서 실업 선배를 꺾고 3회전까지 진출했던 조승민은 이어진 아시아주니어선수권 선발전에서는 당당 1위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각광받던 ‘탁구천재’ 조승민은 그렇게 ‘묵직해져서’ 돌아왔다.

▲ 삼성체육관에서 실업선배들과 진지하게 훈련 중이던 조승민.

‘우상’을 꺾은 코리아오픈
  그리고 지난달 코리아오픈, 조승민은 기어코 ‘사고’를 쳤다. 시니어 단식 1회전에서 일본의 간판 니와 코키를 제압했다. 니와 코키는 세계15위로 최근 무섭게 성장한 일본탁구를 대표하는 선수다. 좀처럼 범실이 없는 까다로운 상대와 맞서 조승민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게임을 주고받는 대접전 끝에 4대 3 역전승을 거뒀다.
  “이광선 감독님 작전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니와는 박자로 승부하는 스타일인데 일부러 벗어나려하기보다 같이 맞춰주며 실수를 줄이는 운영을 했어요. 사실 두 게임만 따보자 하고 들어갔는데 끝나고 나니 이겼더라고요.”
  조승민은 니와 코키를 자신의 롤모델 같은 선수라고 했다. 연결력을 기본으로 하는 랠리가 강점인 스타일이 닮았기 때문인데, 꾸준히 세계 톱클래스를 유지하는 그를 보면서 조승민도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곤 했다는 것이다. ‘우상’ 같은 선수를 처음 만난 국제무대에서, 더구나 그와 같은 스타일로 이겼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승부였다. 남미의 다크호스 칼데라노(브라질)와 만난 2회전에서도 또 한 번 풀게임 접전을 벌였지만 그때까지도 조승민에게는 앞선 경기의 여운이 더 강하게 남아있었다.
  이어진 16강전에서 조승민은 대선배 이정우와 만났다. 다부진 각오로 들어갔지만 선배의 벽은 높았다. 순식간에 세 게임을 연달아 내주고 두 게임을 따라붙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초반에 계속 리시브를 짧게 넣었던 게 실수였어요. 정우 형의 어택에 2구, 3구 대응이 계속 늦었죠. 4게임부터 길게 넣고 버텼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풀었어야 했어요. 감을 너무 늦게 잡았고, 뒤집기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죠.”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조승민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드리운 채, 시선은 정면보다 약간 아래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처음의 ‘당돌함’은 남아 있었다. 그러면서도 ‘호들갑스럽지 않게’ 다음 목표를 생각하는 듯한 조승민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일찍부터 자신에게 쏠렸던 관심의 무게가 힘겨울 법도 하지만 조승민은 특유의 ‘자신감’으로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았다. 우상을 이겼고, 대선배와도 밀리지 않는 경기를 펼쳤던 2014 코리아오픈은 그래서 더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였다. 국내를 넘어 국제무대로 도전의 시각을 넓히는 확고한 발판이 됐다.

▲ 승민이가 진지해졌다. 농담을 해도 입가에 가벼운 미소 정도 드리우는 게 고작이다.

도쿄올림픽까지 앞으로 6년
  사실 이번 코리아오픈에서 한국 남자탁구는 청소년 선수들이 더 두각을 나타냈다. 대표급 선수들이 줄줄이 1회전에서 탈락하는 사이 유망주들이 선전을 거듭하면서 그나마 위안을 남겨줬다. 주니어 세계챔피언 장우진, 주니어서키트 파이널 챔피언 김민혁, 현 고등부 랭킹1위 임종훈 등과 함께 조승민이 그 대표주자였다. 이들이야말로 남자탁구의 새로운 ‘황금세대’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른다. 최근 부진한 대표팀을 둘러싸고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탁구계 분위기 탓으로 이들의 활약에 주목할 여유가 많지 않지만, 적어도 한국탁구의 미래까지 어두운 건 아니다.
  “중국탁구를 넘는 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하나하나 발전하고 노력하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이번 대회에서도 그걸 확인했고요. 계속 열심히 해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게 목표고요. 출전하게 된다면 금메달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조승민은 지난해 대한탁구협회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유망주들을 모아 훈련시키는 특별 프로그램 ‘2020 탁구드림팀’ 멤버로 선발됐다. 중3 이하를 기준으로 뽑았기 때문에 구성원들 중에서 조승민은 가장 고참이었다. 탁구계의 관심과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후배들과 함께 열심히 뛰었다. 훈련의 성과는 이후 이어진 시합들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성적과는 별개로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조승민과 같은 드림팀 고참들에게는 더 강한 선배들과의 훈련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 개인적으로 시간을 만들어 실업팀을 찾아 전지훈련을 하는 방법 등으로 보완하고는 있지만 좀 더 효율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건 분명해 보인다. 이는 물론 선수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아니다. 자라나는 세대의 성장속도는 협회를 비롯한 탁구계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경기를 지켜본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조승민을 두고 감각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천부적인 센스와 기교를 바탕으로 지지 않는 경기를 펼친다는 것이다. 반면 아직까지 승부를 확실하게 끝내줄 결정적인 기술은 부족한 면이 있다는 게 공통적인 견해다. 훈련 때부터 어려운 승부를 자주 경험하지 않고는 ‘결정구’의 단련은 지난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타고난 천재, 2014 코리아오픈을 통해 다시 한 번 진가를 드러낸 조승민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드림팀이 목표로 하는 2020년까지도 이젠 6년밖에 남지 않았다.

▲ 탁구는 나의 운명, 조승민이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탁구는 나의 운명
  사실 조승민은 태어날 때부터 ‘운동선수’의 운명을 갖고 있었다. 아빠가 처음부터 운동을 시킬 작정이었고, 먼저 시작했던 종목은 축구였다. 탁구는 동호인인 아빠가 운동하던 구장에서 여섯 살 때 처음 접했는데, 재능을 알아본 코치가 선수를 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축구할래, 탁구할래? 아빠의 질문에 조승민은 탁구를 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탁구가 더 재미있어서”였다는 게 선택 이유.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승민에게는 오로지 탁구가 전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집을 떠나 합숙을 시작했고, 열일곱 살이 된 지금까지도 그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도 조승민에게 ‘더’ 재미있는 건 ‘탁구’다.
  “훈련 늦게 끝나는 날 잠깐 자고 일어나서 또 일찍부터 연습해야 할 때는 몸이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은 때도 있지만 탁구를 하고 있으면 금방 잊게 돼요. 엄마도 숙소에 자주 오시고, 아빠도 시합 때마다 만나니까 괜찮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자는 생각만 하고 있어요.”
  초등학교 시절, 조승민은 까불까불하고 장난기도 많던 친구였다. 하지만 훌쩍 자라버린 지금의 조승민에게서는 어딘지 진지한 차세대 에이스로서의 풍모가 더 많이 느껴진다. 일찍부터 집을 떠나 오로지 탁구만 생각하면서 지나온 성장기가 조승민에게 남다른 ‘어른스러움’을 심어준 걸까. 그렇다면 조승민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길을 착실히 밟아온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 색다른 진지함이 조승민 특유의 자신감으로 꾹꾹 다져져 있다는 거다. 왜 이렇게 조용해졌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승민은 “자제하고 있을 뿐”이라며 밝게 웃었다. 문득 가까운 훗날 화려한 메달을 목에 걸고 개선하며 환하게 웃는 조승민의 모습이 그려졌다.

글_한인수 |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4년 7월호)

▲ 승민이에게 진지한 조언을 하고 있는 ‘아테네 영웅’ 유승민. 언젠가는 나도 '승민이 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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