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정영식(미래에셋대우)의 올림픽

<리우 THE 핑퐁>

리우에서 도쿄를 바라보다!
정영식(미래에셋대우)의 올림픽


정영식은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선수다. 스스로 그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하며 성장해왔다. 리우올림픽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비록 메달은 따내지 못했지만 전 세계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런 그에게 또 다시 ‘열심히’ 할 4년이 주어졌다. 정영식은 “지난 4년과는 다른 4년”을 다짐했다.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을 위해 리우로 향하기 전 정영식(미래에셋대우·24)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했었다. 리우올림픽을 향한 정영식의 각오는 그만큼 결연했었다.

리우에서 돌아온 정영식의 태도는 달라졌다. “다음 올림픽!”이 첫 대답이었다. “올림픽은 보통의 대회와 모든 게 다르더라. 이젠 알았으니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가 보인다.”고 했다. 각오는 여전히 단단했으나 이전과는 다른 ‘여유’가 풍겼다.

마롱은 ‘신념’을 키워줬다!

마롱과의 시합을 끝내고 정영식은 벤치로 돌아와 눈물을 보였다. 눈물 정도가 아니라 펑펑 울었다. 현장에서 또는 국내에서 TV로 지켜본 이들까지 함께 ‘울컥’했다. 준비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마음으로 울음을 이해할 만큼 정영식은 잘 싸웠다. 세계 최강자를 이길 뻔했다. “2대 0으로 앞서가면서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욕심이 드는 순간 흥분하면서 작전을 잊었다. 결국 지고 나서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정영식은 올림픽 전까지 올해만 세 번이나 마롱과 싸웠다. 세계선수권 단체 4강전에서 마롱과 매치업을 이뤘고, 일본과 안방 인천에서 이어진 월드투어에서도 16강 길목에서 마롱을 만나 돌아섰다. 리우올림픽 개인단식 16강전은 올해 네 번째 맞대결이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정영식은 마롱을 집중 분석했다. 시드배정 상 또 다시 16강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강자 마롱을 분석하면 다른 선수들과도 잘 싸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굳이 예상대로가 아니어도 좋았을 대진은 얄궂게도 ‘또’ 마롱과의 승부를 주선했고, 정영식은 준비해온 모든 것을 테이블 위에 쏟아 부었다.

“2대 2가 되고 나서 정신을 차렸다. 그때부터는 기술싸움이었다. 연속해서 11대 13으로 졌다. 6게임은 9대 4까지 앞섰다. 게임포인트도 3점이나 먼저 잡았다. 분명히 이길 기회가 있었는데 살리지 못했다. 억울했던 게 아니다.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게 속상했다.”

속상하고 아쉬운 승부였지만 마롱과의 16강전은 결과 이상의 소중한 의미를 남겨준 시합이었다. 올림픽 이전 맞대결들에서 정영식은 마롱에게 ‘완패’를 벗어나지 못했다. 코리아오픈에서 따낸 게임 하나가 성과의 전부였다. 하지만 오랜 준비 끝에 만난 올림픽무대에서는 같은 상대 마롱을 벼랑까지 몰았다. 정영식은 평소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해왔다. 준비는 헛되지 않았고, ‘기회’를 만들었다. 이기진 못했지만 확연하게 나아진 경기내용은 이후의 ‘노력’에 근거가 되어줄 것이다. 신념은 더 단단해졌다.
 

▲ 울어버린 정영식. “기회를 살리지 못해 속상했다.”고 말했다. 

‘길고 길었던’ 리우의 밤

리우의 밤은 길었다. 먼저 경험한 선배들이 보통의 대회와 올림픽의 차이를 말했을 때 정영식은 의도적으로 오래 염두에 두지 않으려 했다.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 등 큰 대회들을 이미 다녀봤고, 어차피 하는 시합인데 똑같이 하면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리우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올림픽은 모든 것이 달랐다. 무엇보다도 일단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긴장되는 대회도 잠은 잘 잔다. 그런데 그게 안 됐다. 자면서도 한숨을 쉬게 되더라. 어떤 날은 너무 잠이 오질 않아 멍하니 TV를 보다가 새벽 다섯 시 넘어서 겨우 잔적도 있다.”

잠을 못 자니까 사람이 예민해졌다. 훈련 때 가끔 나오던 실수도 리우에선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괜히 주변에 화를 내고 싶고 스스로가 미워질 정도였다. 올림픽 현장에선 감정 조절부터가 숙제라는 걸 늦게 깨달았다. “실전도 그랬다. 다른 대회에서는 서브를 넣고 여러 가지를 지킨다. 짧거나 길거나 상대 반구를 모두 대비한다. 하지만 그게 되지 않았다. 다 지키다가 자꾸 애매하게 실점했다. 생각이 많아지니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한 가지만 확실히 지키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독일전 첫 단식에 그 과정이 다 들어있었던 것 같다.”

독일과의 3-4위전 1단식을 끝내는 순간 정영식은 코트에 누워버렸다. 스테거 바스티안과 벌인 풀-게임접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직후였다. 2대 2, 8-10, 매치포인트를 먼저 내줬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이겼다. “그렇게 큰 리액션은 생각도 못했었다. 힘들게 이기면서 몸이 절로 반응했다. 아마 올림픽 메달을 걸고 싸운 경기라 더했을 거다. 복식을 지고 메달도 못 땄으니 생각하면 민망하다. 나나 상수 형이나 올림픽에 좀 더 빨리 적응했어야 했다.”

리우의 밤은 길었다. 3-4위전을 패하고 숙소로 돌아온 주세혁, 이상수, 정영식 남자대표선수들은 한참을 멍하니 누워 있었다고 한다. 문득 마주보니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고 했다. 저녁에 맥주 한 잔을 놓고 둘러앉았는데 시합 얘기는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까? 정영식은 “심각해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그저 돌아가서 뭘 할 건지에 대해서 등으로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남는 후회는 어쩔 수 없었지만 모두 속으로 삼켰다. 무거웠던 첫 올림픽이 허망하게 끝났다. 시합 전 긴장과는 또 다른 감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 독일전 1단식 승리 직후. 자기도 모르게 큰 리액션이 터져 나왔다. 극적인 승부였다. 

장지커에겐 있고, 정영식에겐 없던

하지만 정영식은 올림픽을 돌아보면서 “후회스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정영식은 자신의 100%를 발휘한 올림픽이었다. 준비과정부터 최선을 다했다. “크로아티아오픈 이전까지 시합을 거의 망쳤다. 하위랭커들한테 자꾸 지니까 오히려 마음을 비우게 되더라. 차분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단체전 시드가 결정되고 나서는 오로지 중국 탁구 분석에만 매달렸다. 효과가 있었다. 장지커에게도 마롱에게도 백핸드 싸움에서는 내가 이겼다.”

중국과의 4강전, 정영식은 장지커에게도 앞서가는 경기를 펼쳤었다. 백핸드의 세계 최강자를 백핸드로 압도했고, 이전에 없던 포어핸드 결정력까지 더해 장지커를 궁지로 몰았다. 2대 1에 8대 7의 리드! 천하의 장지커가 다급한 표정의 류궈량 감독에게 질타를 받는 광경을 아무나 연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영식은 이 경기에서도 결국은 패했다. “심리적으로 마롱전처럼 흥분되지는 않았다. 냉정하게 임했는데 결국에는 기술에서 밀린 것이다. 현재의 내 한계를 좀 더 명확히 알게 해준 시합이었다.”

태릉에서 마롱을 비롯한 중국탁구를 분석하는 동안 정영식은 “중국탁구는 초구에서 무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중국탁구가 기술력을 앞세워 일찍 결정을 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초반을 안정적으로 넘긴 뒤 랠리에서 ‘회전’으로 점수를 가져간다. 3구 5구 초반 승부는 자신의 컨디션이 나쁘면 이길 수 없다. 랠리전에서 강점을 살리는 중국탁구는 기복이 없다.” 사실 랠리전은 정영식의 장점이기도 하다. 태릉에서 정영식은 중국의 ‘회전’을 견디는 연습에 주력했다. 힘의 강약을 조절했고, 회전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스윙스피드를 높였다. 마롱과도 장지커와도 ‘질긴’ 랠리전을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다.

좋은 시합은 할 수 있었지만 이기지 못한 이유! 정영식은 그것을 ‘경기운영 능력’에서 찾는다. ‘게임수’다. “중국 선수들은 고전하면서도 경기 중에 대처법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슈퍼리그나 유럽리그 등에서 다양한 상대와 수많은 시합을 해본 ‘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탄탄한 기술력 외에도 다양한 실전경험이 현재 중국탁구의 뼈대다.” 결국 필요한 건 더 많은 연습과 더 많은 ‘실전’이다.

“훈련량만 따지면 한국탁구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움직임이 좋지 않은 유럽 선수들이 이기는 시합을 할 수 있는 이유도 경험에 있다. 우리도 더 다양한 상대들과 더 많은 시합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리우에서 정영식은 값진 ‘확신’을 안고 돌아왔다. 자신에게 없는 것, “무엇을 채워나가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메달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생애 첫 올림픽에서 정영식은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 리우올림픽은 소중한 경험이 됐다. 그 위에서 도쿄를 바라보는 정영식이다. 

4년 뒤 도쿄에서는…!

게다가 정영식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소위 ‘스타’가 됐다.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시합들이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까닭이다. 중국의 벽이 너무 높아 탁구에는 관심 없다던 많은 사람들까지도 이기는 게 다가 아니란 걸 ‘정영식’을 통해 체험했다. “많은 분들이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주신다. 감사하다. 이런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더 잘하고 싶다.”

리우에서 돌아온 정영식의 태도는 달라졌다. “다음 올림픽!”이 첫 대답이었다. “마음을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메달에 대한, 혹은 승리에 대한 욕심이 경기를 지배한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올림픽은 어느 대회보다도 그게 심하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차분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각오는 여전히 단단했으나 이전과는 다른 ‘여유’가 풍겼다.

그리고 정영식은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선수다. 스스로 그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해왔다. 일찍부터 함께 주목받던 유망주들 사이에서도 노력으로 재능을 메우며 결국 최고가 됐고, ‘국내용’ 선수라던 달갑잖은 비판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올림픽 직후 발표된 세계랭킹에서 정영식은 10위에 오르며 ‘세계TOP10’을 회복했다. 당연히 한국 최고다. 언제나 열심히 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런 그에게 또 다시 ‘열심히’ 할 4년이 주어졌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해준 리우올림픽은 그래서 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4년 뒤는 2020년 도쿄! 한층 원숙해져 있을 ‘정영식’이 만들어낼 ‘좋은 결과’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남은 기간 동안 정영식은 자신에게 아직 없는 ‘무엇’을 채워나갈 수 있을까? 도쿄에서 ‘리우의 기억’을 즐겁게 돌아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안재형 감독님, 이철승 코치님과 비디오를 같이 보고 장단점을 분석하고 상의해가면서 훈련하고 준비했던 과정은 앞으로도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기술적으로 정말 많은 발전이 있었어요. 힘들었지만 즐겁고 재밌었던 올림픽으로 기억하겠습니다. 좋은 선후배, 동료들이 많기 때문에 또 쉽지 않은 과정을 이겨내야 하겠지만 4년 뒤에는 꼭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습니다. 계속 응원해주세요.”

글_한인수 기자 | 사진_안성호 기자 / 국제탁구연맹 (월간탁구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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