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VS 아르센 뤼팽

우리는 보통 영국인은 이성적이고, 고지식하며, 까칠하다고 말한다. 한편 프랑스인은 감성적이고, 융통성 있으며, 낙천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선입견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환경, 문화, 역사 등이 만들어낸 국민 공통의 성향은 분명히 존재한다. 유명 캐릭터인 영국인 셜록 홈즈와 프랑스인 아르센 뤼팽의 성향 또한 자국의 국민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는 그저 선입견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어 보인다.  

 


논리와 이성을 맹신하는 성격 나쁜 탐정

추리 소설을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조차 셜록 홈즈(1854 ~1957)가 뛰어난 탐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정도로 홈즈는 성공한 캐릭터로 손꼽힌다. 홈즈가 유명해진 것은 뛰어난 추리 능력에 더하여 이전의 추리 소설 주인공들과는 다른 독특한 개성이 부여됐기 때문이다. 예의 바르지만, 자신의 능력에 지나친 자만심을 가지고 있고, 여성은 혐오하지만, 지성적이고 자립심 강한 여성은 존경하며,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지만, 사건이 없어 무료해지면 기행을 벌이거나 마약에 심취하는 비이성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화학과 지리학, 범죄 문헌 등에는 전문가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박식함을 보여주지만, 문학이나 철학, 천문학에는 무식함의 끝판왕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아는 것이 없다. 자전거 바퀴 자국만 보고 한눈에 상표를 알아볼 수 있지만,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은 모를 정도다. 범죄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상식적인 것들조차 머릿속에 전혀 기억해 두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홈즈의 개성은 그의 곁에서 콤비를 이루고 있는 존 왓슨의 눈을 통해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된다. 

▲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

홈즈 시리즈의 화자인 왓슨은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1859~ 1930)이 자기 자신을 그대로 투영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언제나 홈즈 곁에 붙어있는 왓슨의 자연스러운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이 명탐정 콤비를 실존 인물처럼 느끼게 한다. 실제로 홈즈의 고향인 영국에서는 인구의 반 이상이 홈즈가 실존 인물이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홈즈가 자신을 탐정이 아닌 ‘수사 고문’이라고 지칭한다는 사실이다. 국가 조직인 경찰이 수사에 난항을 겪게 될 때 그에게 사건에 대한 조언을 청한다는 의미다. 그뿐만 아니라 홈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예민한 촉으로 범죄를 예방하거나 정의로운 일을 행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홈즈가 남다른 정의감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일어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며, 그것을 분석하고 살피는 즐거움이야말로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도 작가인 코난 도일에게는 그다지 사랑받지 못했던 것 같다. 의사이자 작가였던 그는 홈즈 시리즈로 수많은 팬과 부를 얻었지만, 그가 정말로 쓰고 싶어 했던 것은 역사 소설이었다. 그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창작활동을 위해 홈즈가 알프스 산속의 폭포에 떨어져 죽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 적이 있다. 그러자 독자들은 홈즈를 살려내라는 항의와 협박을 그치지 않았고-심지어 그의 어머니까지 가세했다고 전해진다-이런 시달림은 무려 8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팬들의 성화와 출판사의 설득에 못이긴 그는 결국 홈즈를 되살려내게 된다.  


매력적인 신사의 탈을 쓴 괴도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르센 뤼팽(1874~1922)은 어릴 때 부모가 헤어진 후 어머니와 함께 남의집살이를 했는데 집주인으로부터 수모를 당하던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처음으로 도둑질을 하게 된다. 이때 뤼팽의 나이는 여섯 살, 훔친 물건은 프랑스 왕비 마리 앙뜨와네뜨를 사기 스캔들에 휘말리게 했던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목걸이였으니 대도(大盜)로서의 자질을 이때부터 발휘한 셈이다. 그러나 뤼팽에게 붙는 수식어는 대도가 아닌 괴도(怪盜)다. 말 그대로 괴상한 도둑이란 소리다.
뤼팽의 가장 괴상한 점은 자신의 절도 행각을 스스로 밝힌다는 점이다. 현장에 남겨두는 명함이나 메모를 통해 범인이 뤼팽 자신임을 공개할 뿐만 아니라 범행을 예고하고, 또 집주인에게 그럴듯한 충고의 편지를 남기기도 한다. 특히 뤼팽이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것은 주로 부당하게 부를 축적한 부자나 권력자들인데, 절도 행각을 통해 얻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을 조롱하거나 부조리를 폭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뤼팽의 생김새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뤼팽은 다양한 분장은 물론 화학적 약품까지 사용하여 자신의 얼굴을 숨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작, 말투, 성격까지 바꿔가며 사람들을 헛갈리게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뤼팽 시리즈의 가장 독특한 점은 주인공이 경찰이나 탐정과 같은 수사관이 아닌 범죄의 범인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범인인 주인공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털어놓는 형식도 당시로는 매우 신선한 서술 방식이었다.  

▲ 아르센 뤼팽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1864~1941)은 뤼팽 시리즈를 시작할 때만 해도 ‘홈즈 시리즈를 읽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뤼팽이 인기를 얻고 독자들에 의해 두 캐릭터가 비교되기 시작하면서 그를 의식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홈즈가 가지고 있는 특출한 능력들은 당연히 뤼팽에게도 가능한 일들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뤼팽은 금욕적이고 이성적인 홈즈와는 반대로 매번 새로운 여성과 연애 행각을 벌이는 것은 물론 일탈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혹자는 처음부터 뤼팽이 홈즈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는데, 르블랑이 원래 정통 문학을 지향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상업적인 대중 소설이었던 홈즈 시리즈를 잘 몰랐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르블랑과는 별개로 처음 뤼팽 시리즈를 싣기 시작한 잡지 ‘주 세 투’의 편집장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홈즈에 대적할만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모험 소설을 준비 중이던 르블랑이란 작가가 그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셈이다. 
뤼팽 시리즈를 쓰기 전의 르블랑은 모파상이나 졸라와 같은 작가를 열정적으로 추앙했으며, 여러 단편집과 장편 소설을 발표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던 작가였다. 그런 르블랑이 정통 문학이 아닌 뤼팽을 주인공으로 한 모험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빈곤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중적인 인기와 부를 가져다준 뤼팽 시리즈는 어느새 그의 발목을 잡는 사슬이 돼버렸고, 그토록 원하던 정통 문학 작가의 길은 점점 멀어져가고 말았다. 


코난 도일과 르블랑의 신경전

홈즈는 장편 소설 ‘주홍색 연구’를 통해 1887년 등장했다. 그리고 뤼팽은 그로부터 8년 뒤, 단편 소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동시대에 등장한 이 두 가상인물은 마치 아이돌 그룹처럼 각자의 팬덤까지 갖게 되는데 홈즈의 팬덤은 ‘홈지언(Holmesian, 영국)’ 또는 ‘셜로키언(Sherlockian, 미국)’, 뤼팽의 팬덤은 뤼패니앵(Lwipaeniaeng)이라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팬덤과는 별개로 홈즈가 탄생한 영국과 뤼팽이 탄생한 프랑스에서는 자국 캐릭터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상대 국가의 캐릭터를 깎아내리는 일도 많았다. 특히 르블랑이 자신의 소설에 홈즈를 등장시키면서 논란은 더 크게 일어났다. 뤼팽 시리즈에 등장한 홈즈는 실수 많고 괴팍하며 고압적인 탐정 정도로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홈즈의 원작자인 코난 도일은 자신에게 동의도 없이 홈즈 캐릭터를 사용한 르블랑에게 항의했지만, 르블랑은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라는 이름을 헐록 숌즈(Herlock Sholmes)로 살짝 바꾸는 것으로 응수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아예 대놓고 숌즈라는 탐정 캐릭터를 웃음거리로 만들곤 했다. 
당시의 뤼패니앵들은 뤼팽 시리즈에 등장하는 홈즈를 같이 조롱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그것이 르블랑의 실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홈즈를 등장시키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적당한 존경심을 보여줬다면 더 훌륭한 에피소드가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작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도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의 소설에 홈즈를 등장시켜 실컷 조롱했지만, 그것은 결국 그만큼 강하게 홈즈를 의식하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르블랑은 뤼팽이라는 뛰어난 캐릭터와 시리즈를 만들어냈지만, 코난 도일의 홈즈가 알게 모르게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소설 속 뤼팽은 주로 ‘쫓기는 자’, 홈즈는 ‘쫓는 자’였지만, 실제로는 뤼팽이 홈즈의 후발 주자라는 사실을 의식하며 그를 쫓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은 아니었을까. 

<월간탁구 2016년 6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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