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밤 열한 시, 동메달 걸린 리우에서의 ‘마지막 승부’

▲ 잘 싸워온 한국탁구대표팀. 마지막 승부에서 ‘유종의 미’가 필요하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객관적 전력 한국 근소한 열세

잘 싸운 건 분명하다. 힘없이 물러나던 연약한 모습은 사라졌고, 더 노력하면 중국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팬들은 세계 최강자들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는 선수들의 모습에 큰 박수를 보내고 있고, 선수단의 사기도 높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흥분할 때가 아니다. 탁구경기 마지막 날 유럽 강호 독일과 동메달결정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만큼은 아니더라도 독일은 우리 대표팀이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세계 탁구계에서 아시아와 쌍벽을 이루는 유럽 최강팀이다. 에이스 중 하나인 티모 볼(세계13위)의 부상 등이 겹치며 최근 대회에서 정상을 내줬지만 2013년까지 유럽선수권을 6연패했다. 또 한 명의 에이스인 디미트리 옵챠로프(세계5위)는 올해 초 치러진 ‘유럽TOP16’에서 우승하며 건재를 과시했고, 티모 볼도 돌아와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다.

객관적인 지표로 활용할 수 있는 양 팀 주전들의 국제무대 상대전적을 보면 오히려 근소한 열세가 점쳐진다(표 참고). 중진에서의 강렬한 회전 드라이브를 주무기로 힘의 탁구를 구사하는 유럽 선수들에게 한국 탁구가 강인한 모습을 많이 보여 오지 못했다는 것도 불안요인이다. 우리의 전력이 독일보다 나을 게 없다. 도전자의 자세로 싸워야 한다.


개인복식, 제3주전 우위 활용해야

물론 한국의 우세를 예상할 수 있는 요소도 없지 않다. 우선은 복식에서의 우위다. 오른손-오른손 조합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맹활약 중인 이상수-정영식 조가 독일의 티모 볼-스테거 바스티안 조에 앞설 거라는 전망이다. 왼손 티모와 오른손 스테거가 조화를 이루지만 파트너로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거의 없는 독일 조는 이번 올림픽에서 아직까지 한 번도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다. 일본과의 4강전에서도 승부처를 지키지 못한 복식이 결국 패배의 빌미가 됐다.

스테거 바스티안(세계24위)에 한국 에이스 주세혁이 절대 우세를 보인다는 것도 긍정적 전망을 가능케 하는 요소다. 올림픽스타일 단체전에서는 단식 두 경기에 나서는 에이스가 단·복식 한 경기씩에 출전하는 상대편 ‘3장’과 3복식 이후 단식에서 반드시 대결하도록 짜여있다. 독일이 가장 약한 선수를 1, 2단식 중 한 경기에 배치하는 모험을 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주세혁이 바스티안을 상대로 승점을 가져오는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세밀함이 떨어지는 스테거 바스티안이 주세혁의 '철벽 커트'를 뚫기에는 힘이 모자란다.
 

▲ 복식에서의 상대적 우위를 지켜내야 승리에 가까워질 것이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결국 3-4위전 동메달의 향방은 독일의 ‘쌍두마차’ 디미트리 옵챠로프와 티모 볼의 공략 여부에 달려있는 셈이다. 한국은 이들이 나설 1, 2단식과 4단식(또는 5단식) 중에서 한 경기 이상은 반드시 승리해야만 시상대를 바라볼 수 있다. 지금까지 맞대결에서 자주 밀려온 상황을 감안하면 절대로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승부들이다.

그렇게 볼 때 승리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키’가 한국팀 ‘3장’ 이상수에게 주어질 공산이 크다. 지금까지의 오더(출전 순서)대로라면 이상수는 복식 경기 이후 4단식이나 5단식에서 상대 에이스 옵챠로프와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쳐야 한다. 행여나 1, 2단식을 모두 내준 상태라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서 팀을 구해내야 한다. 물론 4단식 이후로 승부가 넘어가지 않도록 3대 0 깔끔한 승리가 최선이지만 강팀 독일을 상대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 독일 에이스 디미트리 옵챠로프. 이 선수를 이겨야 한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상수야! 이젠 네 차례야!!

중요한 '키'를 쥐게 될 이상수는 탁월한 선제능력으로 매우 공격적인 탁구를 구사하는 선수다. ‘닥공(닥치고 공격)’이라는 닉네임이 따라붙을 정도다. 시종일관 테이블 가까이에서 빠른 박자의 랠리로 상대를 괴롭힌다. 단점도 있다. ‘모 아니면 도’식의 공격 탁구는 상대에게 먹히면 ‘필승’이지만, 반대로 한 번 막히면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상수는 2012년 코리아오픈에서 마롱(세계1위)을 꺾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 단식 첫 경기에선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보였던 아드리안 크리산(세계90위)에게도 패했다. 심한 기복을 극복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다.

사실 이상수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에서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었다. 강문수 대표팀 총감독이 조심스럽게 개인전 메달 가능성까지 내비쳤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좋았던 컨디션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경험이 없었던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과한 의욕의 원인이 됐고, 원하는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1년 후배 정영식이 중국의 최강자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며 큰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상수는 아직까지 꿈꿔왔던 올림픽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젠 차례가 왔다. 이상수는 작년 쑤저우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서 옵챠로프를 풀-게임접전 끝에 꺾은 적이 있다. 역대전적에선 뒤지지만 최근 승부였던 당시 대결에서 승리한 기분 좋은 기억이 있다. 모두 ‘이변’이라고 평했지만 이상수는 당시 “이길 경기를 이겼다”며 자신만만해 했었다. '이상수식' 공격탁구가 통하는 스타일이다.
 

▲ 사실 이상수는 개막 이전 가장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젠 몫을 해낼 차례가 왔다. 사진 국제탁구연맹.

그리고 이상수를 수식하는 단어 중엔 ‘국제용’도 있다.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대회에서 이상수는 한 번도 빈손으로 돌아온 적이 없는 선수다.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 은메달, 같은 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선 금메달도 땄다. 4강권에서 밀려났던 한국탁구를 금년 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4강권에 올려놓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주인공도 이상수다. 어디서도 주눅 들지 않는 두둑한 배짱으로 늘 ‘뭔가’ 보여줘 왔었다.

이번 올림픽 메달이 걸려있는 최후의 승부처에서도 예의 ‘배짱’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개인전에서의 흥분을 불렀던 ‘올림픽’의 생소함도 털어냈으니, 이젠 또 ‘뭔가’ 보여줄 일만 남았다. 정영식과 함께 메달을 목에 걸고 한국탁구 새로운 주전으로 확고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는 올림픽’이 될 것이다. 영웅은 마지막 순간에 출현한다! 할 수 있다. 이상수!!
 

▲ (더핑퐁=안성호 기자) 이상수는 특유의 배짱으로 승부하는 승부사다! 할 수 있다!

이철승 남자대표팀 코치는 “우리 선수들이 잘해왔다. 하지만 메달 없이 돌아간다면 지금까지의 선전이 허무해질지도 모른다. 긴장을 풀지 않고 마지막 승부를 대비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이기는 경기를 하겠다. 메달을 따겠다는 선수들의 의지는 확고하다. 독일은 쉽지 않은 상대지만 영식(정)이와 상수(이)가 잘해주고 있으니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고 독일전을 대비하는 대표팀 분위기를 전했다.

탁구가 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국탁구는 아직까지 노메달로 대회를 마친 적이 없었다. 리우올림픽 마지막 승부에서 우리 선수들이 전통을 이어주길 기대한다. 한국과 독일의 리우올림픽 탁구 남자단체 동메달결정전은 현지 시간으로 17일 오전 열한 시 리우센트로 파빌리온 3에서 열린다. 한국 기준으로는 17일 밤에서 18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