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구스타 서장훈이 은퇴경기를 마치고 취재진에 둘러싸여 인터뷰를 하고 있다(중계화면 캡쳐).

  오늘 아침 각종 언론의 스포츠 지면에는 어제 저녁 공식 은퇴한 농수선수 서장훈의 기사로 가득하네요. 현재 부산 KT 소닉붐 소속인 서장훈은 어제 저녁 전주 KCC와의 경기를 끝으로 화려했던 현역생활을 마감했는데요. 경기 직후 진행된 은퇴식에서는 선수 시절의 활약상과 동료들의 축하 영상 방영 등 여러 가지 기념행사도 가졌다고 합니다. 월드스타 가수 싸이까지 경기장을 찾아와 축하해 줬다네요. ‘국보센터’로 이름을 날렸던 선수답게 수많은 취재진이 경기장을 찾아 소식을 전한 것은 물론이고요.

  그런데 이 기사들을 접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착잡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네요. 물론 서장훈이라는 선수는 충분히 이런 은퇴식과 대우를 받을 만합니다. 프로선수로서 쌓아올린 각종 기록은 물론이고, 국가대표로서 그동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활약을 펼쳐왔던 주인공이니까요. 기사를 접한 순간의 착잡함은 단지 탁구기자라는 입장에서의 감정이에요.

  얼마 전 탁구계에서도 현역 생활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장식해왔던 선수 한 명이 은퇴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깎신’ 김경아(대한항공) 말입니다. 늦은 나이에 국가대표가 되어 10년 동안 세 번의 올림픽에 출전했던 이 선수는 수비수 최초로 올림픽 단식과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역시 수비수 최초로 세계랭킹을 4위까지 끌어올렸던 독보적인 인물입니다. 김경아라는 선수로 인해 공격수들이 득세하던 세계 탁구계는 전형의 질서를 새로 짰고, 극심한 유망주 부재에 시달려왔던 한국 여자탁구는 김경아의 활약에 기대 겨우 겨우 세계 강호로서의 체면을 유지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경아의 현역 은퇴는 참으로 소리 소문 없이 이뤄지고 말았죠. 지금까지의 활약상에 비춰볼 때 참 쓸쓸하기까지 한 결말이었습니다. 현재는 대한항공 여자탁구단 코치 신분으로 아이를 갖고 휴식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 김경아가 오늘 아침 대대적으로 보도된 타 종목 스타의 은퇴 기사를 접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탁구가 제대로 된 은퇴식을 마련하고 많은 관중 앞에서 화려한 퇴장을 기념해준 경우는 예전 한국 여자탁구의 일세를 풍미했던 3H(홍순화, 현정화, 홍차옥)의 공동 은퇴식이 마지막이었죠. 당시 유니폼을 벗고 우아한 정장차림으로 경기장에 선 세 선수는 팬들이 전해주는 꽃다발을 목에 걸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으며, 이들의 은퇴는 다음 날 각종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됐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탁구계 풍경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유남규, 김택수, 이철승, 류지혜, 김무교 같은 대형스타들의 은퇴 때도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한 이벤트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인기의 측면에서 갈수록 내리막길을 걸어온 실상에서 이제는 어떤 선수의 은퇴 경기나 은퇴식 같은 행사는 떠올리기조차 어려워진 것이 탁구계의 현실이죠.

  탁구가 프로종목은 아닙니다. 몇 몇 종목에 비해 인기가 떨어진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꼭 프로여야 하고 인기가 있어야만 은퇴식을 열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인기가 내려갈수록 눈에 띄는 주인공에 대한 대우에 정성을 들여야만 반전의 계기도 만들 수 있습니다. 선수 개인의 입장에서 은퇴식은 일면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지만 하나의 분야를 이끌어왔던 입장에서 기념비적인 정리를 통해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지는 것은 물론 해당 분야에 대한 마지막 봉사도 될 수 있는 겁니다. 서장훈 같은 경우도 최근 농구계에 불어 닥친 불미스런 사건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선수 스스로 여러 번 고사했다는데도 이처럼 성대한 은퇴식을 마련해주지 않았나요? 차가운 시선을 보내던 팬들도 조금은 풀어진 기분으로 농구코트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을지 모릅니다.

▲ 탁구계를 지키고 있는 두 노장 오상은(KDB대우증권)과 주세혁(삼성생명). ⓒ안성호.

  자칫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읽힐 수도 있겠네요. 필요에 따라 그런 행사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탁구도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죠. 극일의 역사를 개척했고, 구기 종목 최초로 세계를 제패했으며, 서울에서 원년을 맞은 올림픽 탁구에서 국민들의 하나 된 환호를 이끌어냈던 종목입니다. 지바에서의 '작은 통일'을 기억하시죠? 남북단일팀의 역사도 선두에서 이끌어가고 있는 탁구는 이를테면 ‘민족적인 향수’가 배어있는 스포츠입니다. 단지 인기의 차원으로만 논할 일이 아니에요. 게다가 최근 생활체육의 붐으로 저변도 어느 때보다 넓어지고 있습니다. 뭐가 부족해서 스스로 ‘비인기 종목’이라고 비하하고 먼저 움츠러드는 걸까요? 탁구가 가진 기반과 저변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앞서 적었던 착잡함이란 바로 이런 안타까움에서 비롯되는 거겠죠.

  최근 세계선수권대회 파견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남자팀 노장들의 출전문제로 대표팀이 한동안 어수선한 과정 속에 있었던 것을 아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자동출전권의 주인공들인 오상은(KDB대우증권)과 주세혁(삼성생명)은 현역들 중에서 은퇴에 가장 가까운 시기에 와있는 선수들이죠. 두 선수 역시 어느 종목 어느 선수들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 활약을 해온 대한민국의 보물들이고요. 과연 탁구계는 이들을 어떤 모습으로 떠나보내게 될까요? 화려한 은퇴식은 고사하고 탁구에 기여해왔던 선수들이 탁구에 대해 불편한 기억과 느낌을 갖고 라켓을 놓게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 말이 길어졌네요. 뭐 그저 아침에 신문을 보다가 서장훈의 웃는 얼굴이 부러워서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말씀... 직업병인가요? 어디서 자꾸 핑퐁핑퐁 랠리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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