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 탁구 미리보기 ③ | 한국은 올림픽 탁구에서 중국의 유일한 ‘대항마’였다

역대 올림픽에서 시상된 총 88개의 메달 중에서 한국탁구는 지금까지 모두 18개의 메달을 따냈다. 금메달 셋, 은메달 셋, 동메달이 열둘이다. 47개를 휩쓴 중국 다음으로 20개에 육박하는 복수의 메달을 따낸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한국탁구가 왜 올림픽에서 중국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혀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금메달만 봐도 비(非)중국 선수가 따낸 경우는 단 4회에 불과한데, 스웨덴의 ‘전설’ 얀 오베 발트너가 따낸 92년 올림픽 남자단식 외에 나머지 세 개는 모두 한국탁구의 전적이다. 한국탁구 올림픽 히어로들의 ‘금메달’을 돌아본다.

올림픽 개최지 선정일에 올림픽 첫 금메달 따낸 양영자-현정화 조
 
한국탁구에서 올림픽 시상대 그것도 가장 높은 곳에 처음 올랐던 주인공들은 탁구원년 88년 서울올림픽 여자복식의 양영자-현정화 조다. 이들은 당시 8강전에서 네덜란드의 브리셰쿠프-클로렌버그 조를 2대 0(21-10, 21-11)으로, 4강전에서 일본의 호시노-이시다 조를 역시 2대 0(21-19, 21-9)으로 제압하고 결승에 오른 뒤, 강력한 금메달후보였던 중국의 자오즈민-첸징 조마저 꺾었다. 결승전 스코어는 2대 1(21-19, 16-21, 21-10)이었다. ‘환상적인 호흡’으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된 이들은 ‘환상의 복식조’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스타덤에 올랐다.
  잠시 쉬어가는 뜻으로 재미있는 우연 하나!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날은 1981년 9월 30일이다.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는 사마란치 IOC 당시 회장이 어눌한 발음으로 “쌔울”을 선언하던 목소리가 생생할 것이다. 탁구인들은 더구나 우리나라에서의 역사적인 올림픽에서 최초로 탁구를 치러내게 됐다는 점에서 더 잊을 수 없는 기억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양영자-현정화 조가 서울올림픽에서 여자복식 금메달을 따낸 날도 바로 9월 30일이다. 한국탁구인들은 약 7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날 남다른 감격에 젖었다. 탁구원년 올림픽, 첫 번째 올림픽탁구 금메달리스트들은 그처럼 신기한 우연 속에 탄생했다.
 

▲ 첫 번째 올림픽 탁구경기 첫 번째 금메달을 따낸 환상의 복식조. 양영자-현정화 조. 월간탁구DB.

한국선수끼리 벌인 올림픽 결승전, 유남규 금! 김기택 은!
 
그리고 한국탁구인들은 이틀이 지난 1988년 10월 1일, 또 한 번 크게 환호했다.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약관의 유남규가 또 하나의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더구나 결승전 상대는 우리나라의 김기택이었다. 탁구인들은 당시 결승전 경기를 지켜보면서 “꿈꾸는 것 같았다”고 전한다. 남자단식 금은메달을 우리끼리 다투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결승전 이전까지 두 선수는 당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유럽의 선수들을 연파했다. 유남규는 8강전에서 페르손(스웨덴)을 3대 1(19-21, 21-16, 21-15, 21-9), 4강전에서 린드(스웨덴)를 3대 0(21-10, 21-22, 21-9)으로 완파했다. 김기택은 ‘레전드’ 발트너(스웨덴)와의 8강전을 풀게임접전 끝에 3대 2(17-21, 21-17, 20-22, 21-17, 21-18)로 극복했고, 4강전에서는 헝가리의 클람파를 3대 0(21-18, 21-9, 21-14)으로 꺾었다. 결승전 스코어는 3대 1(17-21, 21-19, 21-11, 23-21)! 속공을 앞세운 ‘선배’ 김기택이 먼저 앞서갔으나 이후부터는 유남규 특유의 왼손드라이브가 우위를 지켰다. 금메달 유남규! 은메달 김기택!
 

▲ 우리 선수들끼리 금은메달을 나눠가졌다. 금메달 유남규! 은메달 김기택! 월간탁구DB.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유남규가 세계 최강 중국의 장지아량, 후이준을 잇따라 꺾고 우승했을 때 전 세계 통신들은 세계 탁구계에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급전을 쳤었다. 당시 18세 고교생 신분으로 세계랭킹 100위 안에도 들지 못했던 그의 우승이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86년의 MVP는 2년 만에 또 하나의 ‘대형사고’를 치고 당시의 사건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국제적인 스타플레이어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아울러 한국탁구는 양영자-현정화 조의 여자복식 금메달, 김기택의 남자단식 은메달, 그리고 남자복식 안재형-유남규 조의 동메달을 더해 모두 네 개의 메달을 따내며 우리나라에서 치러진 첫 번째 올림픽탁구경기를 ‘화려한 잔치’로 마감할 수 있었다.
 

▲ 특유의 영리한 게임운영으로 금메달을 따낸 유남규! 한국탁구 전성기의 정점에 그가 있었다. 월간탁구DB.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는 ‘아테네 영웅’ 유승민
  하지만 잔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유남규의 금메달 이후 한국탁구가 올림픽에서 다시 금메달 맛을 보기까지는 16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어렵사리 금맥을 이은 주인공은 모두가 알고 있듯 유승민이란 새로운 히어로! 그가 금메달을 따낸 2004년 올림픽은 특히 올림픽발상지 아테네에서 치러진 대회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깊은 전적으로 남아있다.
  당시 대회에서 유승민은 일본의 마츠시타 고지, 타이완의 창펭룽, 홍콩의 렁츄안 등 아시아의 라이벌들을 차례로 꺾은 뒤 4강전에서는 92년 금메달, 2000년 은메달 등 올림픽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쌓고 있던 ‘스타’ 발트너(스웨덴)를 4대 1(11-9, 9-11, 11-9, 11-5, 11-5)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이면타법의 완성자’ 왕하오(중국)를 4대 2(11-3, 9-11, 11-9, 11-9, 11-13, 11-9)로 꺾었다.
 

▲ 금메달의 순간! 여전히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월간탁구DB.

  이전까지 상대 전적에서 절대열세였던 유승민은 올림픽에서 괴력을 발휘하며 왕하오를 몰아붙였다. 고집스럽게 돌아서며 강력한 포어핸드 드라이브를 연달아 구사했다. 마지막 공격이 테이블 모서리를 튕기는 순간 경기장으로 뛰어든 김택수 코치가 유승민을 얼싸안고 길길이 뛰던 장면은 지금도 많은 팬들에게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시상식에서 유승민은 당대 최강자들 왕하오와 왕리친을 나란히 아래에 세우고 월계관을 썼다. 다른 종목 금메달을 모두 가져간 중국이었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의 승자는 유승민이었고, 한국탁구였다.
  이어진 두 번의 올림픽에서 단체전 동메달(베이징)과 은메달(런던)을 추가한 유승민은 이번 올림픽에서는 IOC 선수위원 선거에 출마,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삼성생명 여자팀 코치 신분인 그가 경기 외적으로 한국탁구계에 또 한 번의 경사를 안겨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청소년대표팀 양영자 감독, 삼성생명 여자팀 유남규 감독, 렛츠런파크 현정화 감독, 이제는 모두 지도자로 변신한 한국탁구의 ‘영웅’들도 리우에서의 후배들의 선전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
 

▲ 당대 최강자들 왕하오와 왕리친을 모두 발아래 세웠던 유승민. 이번 올림픽에서는 선수위원 후보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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