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아! 첫 올림픽 꽃길 걷자!

[올림픽 대표 릴레이 인터뷰 ⑥]

한국 여자탁구의 희망 양하은(대한항공)
첫 올림픽 꽃길 걷자!

서효원(렛츠런파크), 전지희(포스코에너지), 양하은(대한항공), 주세혁(삼성생명), 정영식(미래에셋대우), 이상수(삼성생명).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빛낼 6인의 탁구 국가대표다. 오상은, 유승민, 김경아, 박미영 등 걸출한 선배들이 떠난 자리, 당찬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한국 탁구의 자존심을 걸고, 오늘도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월간탁구는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선 여섯 전사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전영지 탁구전문 기자가 이 특별한 기획을 책임진다. 월간지와의 시차를 전제로 [더 핑퐁]도 함께 한다. 한국 여자탁구의 희망 양하은이 길었던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다.
 

 

  “4년 전 런던에서 언니들을 보며 ‘나도 나가고 싶다’ 했었는데, 4년이 정말 빨리도 지나갔다.”
  4년 새 ‘주전’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희망’ 1994년생 양하은(대한항공)의 첫 올림픽이 시작된다. 김경아 박미영 당예서 등 내로라하는 언니들이 모두 떠난 자리, 스물두 살의 그녀는 조국의 무게를 어깨에 오롯이 짊어졌다. 리우올림픽 탁구대표팀 가운데 가장 어리지만 가장 경험 많은, 당찬 막내다. 첫 올림픽에 대한 설렘보다 한국 여자탁구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역사의 책무감이 앞선다. “3명의 올림픽 대표 중 하나가 됐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솔직히 그보다는 ‘이겨내야 한다.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뤄왔다. 2014년 아시안게임 단식 동메달 수상 직후다. 앞으로도 꽃길만 걷자! 월간탁구DB(ⓒ안성호).

꽃길을 걸어온 ‘천재 탁구소녀’
  양하은은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만을 밟아온 자타공인 여자탁구 에이스다. 대우증권 출신 엄마 김인순 코치(여자대표팀 트레이너) 덕분에 아기 때부터 탁구공을 장난감 삼아 놀았다. 여섯 살 때 테이블 앞에 디딤판을 놓고 시작했던 탁구는 평생 직업이 됐다. 재밌어서 치다보니 1등이 됐고, 1등을 하다 보니 선수가 됐다. 어느새 탁구는 그녀에게 길이자, 꿈이 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꿈나무대회 단식 1위에 오른 이후 1인자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군포중-흥진고 시절 같은 군포 출신 ‘피겨여제’ 김연아를 보며 자랐다. 나란히 ‘경기도 유망주’로 선정됐고, ‘핑퐁 김연아’의 꿈을 키웠다. 2008년 헝가리주니어오픈에서 3관왕에 오르며 ‘천재 탁구소녀’로 주목받았고, 바레인, 도하, 프랑스 주니어오픈에서도 단식, 단체전 1위에 올랐다. 21세 이하 국제대회에서 일본 톱랭커 이시카와 카스미와 경쟁하며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10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광저우아시안게임에 나섰고, 2014년 스무 살 때 출전한 인천아시안게임에선 여자단식 동메달을 따냈다. 대한민국 인재상, 코카콜라체육대상, 윤곡체육대상 신인상을 줄줄이 휩쓸었다. 지난해 쑤저우세계선수권에선 ‘세계 최강’ 쉬신과 함께 혼합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탁구 신데렐라’ ‘포스트 현정화’라 불리며 또박또박 성장해온 소녀가 첫 올림픽 시험대에 섰다.
 

▲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좌절하던 그녀의 모습은 현재 한국여자탁구의 상징처럼 남아있다. 그만큼 그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월간탁구DB(ⓒ안성호).

단체전 가시밭길, ‘트라우마’ 극복하기
  탁구를 시작한 이후 줄곧 ‘꽃길’만 걸었었다. 2012년 이후 세대교체기, 시니어 무대에서 혹독한 ‘가시밭길’을 온몸으로 맞닥뜨렸다. 쑤저우세계선수권 혼합복식 금메달, 인천아시안게임, 광주유니버시아드 여자단식 동메달 등 메이저대회 개인전에선 보란 듯이 선전했지만, 단체전에선 이상하리만큼 고전했다.
  서효원, 석하정 등과 단체전 첫 주전으로 나선 2014년 도쿄세계선수권, 숙적 루마니아에게 16강에서 분패했다. 4강권을 지켜온 여자탁구의 시련, 따가운 눈총 속에 호텔방에 짙은 커튼을 내린 채 칩거했다. 2016년 쿠알라룸푸르 세계선수권에서 명예회복을 노렸건만, 또다시 눈물을 쏟았다. 서효원, 박영숙, 이시온 등과 함께 나선 단체전, 그녀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햄스트링, 골반 부상에 시달리며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 “편안하게 하지 못했다. ‘멘붕’이 왔다. 숨이 막혀오는 느낌이었다. 도쿄에서의 실패를 꼭 이겨내고 싶었는데, 올해 첫 목표가 세계선수권에서 고비를 넘겨보는 것이었는데….” 또다시 4강행이 불발됐다. 테이블에 고개를 파묻고 울었다. 설욕을 다짐했던 단체전은 ‘트라우마’가 됐다.
  “2012년 올림픽 이후 여자탁구가 4강에서 밀려났다. 한 번 메달권에서 떨어지면 다시 올라가기 힘들다. 8강권으로 떨어지면 다시 올리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양하은은 ‘올림픽 챔피언’ 유승민 코치의 냉정한 조언을 복기하고 있다. 단체전 부진의 이유를 스스로 분석했다. “단식할 때는 결과와 무관하게 작전 생각만 한다. 단체전에선 생각이 너무 많다. 부담감이 크다.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간절하다.”
  지나친 간절함은 때로 독이 된다. “승리가 너무 간절하다 보니 안 해본 생각이 없다. ‘첫게임이다, 1회전이다, 오픈대회다’ 다 해봤는데 안 통했다. ‘괜찮아’ 했다가 ‘왜 안 되지’ 했다가 ‘안 될 것 같아’ ‘지면 어떡하지’ … 어떨 땐 혼자 뮤지컬을 찍는 것 같다.” 양하은은 “이 지독한 트라우마를 기필코 한 번은 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림픽 단체전을 준비하는 자세는 그래서 더 비장하다. 자신의 전 경기를 찍어낸 듯 복기하는 완벽주의자 양하은은 자신의 탁구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채근한다. ‘이렇게 쳐서 올림픽 가서 어떻게 할래’ 스스로를 다그친다. “연습이 끝나고 나서도 계속 고민한다. 쉬는 동안에도 ‘뭘 좀 더하면 될까’ ‘뭘 더해볼까’ 한다.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더 그렇게 된다.”
 

▲  쉬신과 함께 세계선수권 혼합복식을 제패했다. 짜릿했던 기억을 자양분으로! 월간탁구DB(ⓒ안성호).

'꽃길'도 '가시밭길'도 모두 감사할 뿐
 
그녀는 탁구인 선후배, 지도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선수 중 하나다. 대한탁구협회 회장사인 대한항공의 전폭적인 투자와 지원 속에 열다섯 살 때부터 국제경험을 쌓았다. 잘할 때 칭찬도 많이 받지만, 못할 때 그만큼의 질시와 질책이 따른다는 것도 안다.
  지난해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쉬신과의 세계선수권 금메달은 짜릿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올림픽 티켓 경쟁에서 전지희에게 개인전 티켓을 내줬다. “탁구를 하면서 제일 행복했고, 제일 힘든 한 해였다. 쉬신과 함께하며 ‘내가 이렇게 잘할 수 있구나’ 느꼈고, 지희 언니와 경쟁하면서 라켓을 더 이상 잡고 싶지 않은 순간도 왔었다”고 고백했다.
  올해 1월 헝가리오픈에서 그녀는 단복식 모두 결승에 올랐다. 우승 하나, 준우승 하나를 기록했다. 2월 세계랭킹에서 생애 최고인 11위를 찍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3월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최악의 시련을 맛봤다. 롤러코스터 속에 웃고 울었다. 탁구는 참 어렵다. 열리는 순간 닫히고, 닫혔나 싶은 순간 열린다.
  여섯 살 때부터 무려 17년간 탁구와 동고동락했다. 탁구는 까탈스럽지만 속 깊은 친구다. 가장 좋은 친구이자, 가장 재미있는 일이다. “못했을 때, 잘 안 될 때는 한없이 작아지고 죽을 것 같다. 이겼을 때는 정말 좋다. 탁구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데도 정말 좋다. 이렇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내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한다.”
 

▲  양하은의 다짐이 굳을수록 한국여자탁구의 앞길도 훤히 열릴 것이다. 월간탁구DB(ⓒ안성호).

3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 ‘최강 복식조’의 자신감
 
6월 ‘안방’ 코리아오픈에서 양하은-전지희 복식조는 올 시즌 5번째 결승무대에 올랐다. 1월 헝가리, 독일오픈 4월 폴란드오픈 우승, 5월 크로아티아오픈 준우승에 이어 값진 준우승을 일궜다. 최강 딩닝-류스원 조에 패하긴 했지만 내용적으로 괄목할 성장을 보여줬다. 선제, 연결은 물론 강력한 포어드라이브를 때려내는 양하은의 플레이, 전지희와의 스피디한 호흡은 단연 눈에 띄었다. 양하은은 “복식은 흐름을 찾았다. 안정감을 느낀다”고 했다. 첫 올림픽을 앞둔 대표팀에게 복식은 불안감을 내리고 자신감을 끌어올릴 든든한 무기다.
  ‘오른손’ 양하은-‘왼손’ 전지희 복식조는 세계 최강이다. 어느 누구와 맞서도 밀리지 않는다. ‘1, 2단식, 3복식, 4, 5단식’으로 구성되는 올림픽 단체전에서 확실한 1점을 잡아줄 ‘복식카드’는 천군만마다. 양하은은 “복식은 한 명이 불안할 때 한 명이 잡아주는 것이다. 복식을 하다보면 파트너가 느껴진다. 둘이 호흡을 맞추고 함께 뛴다는 것이 큰 의지가 된다”고 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은 확고했다. “지희 언니가 빠른 볼 반사신경이 정말 좋다. 내가 리시브로 흔들어주고, 언니가 올라오는 볼을 드라이브 걸어주고, 내가 코스를 몰아주고 언니가 공격하고, 다시 넘어오는 볼은 내가 포어로 잡고…. 박자가 잘 맞는다”며 웃었다.
  ‘우승을 3번이나 해, 상대에게 읽힌 부분도 있지 않겠냐’는 우려에 양하은은 씩씩하게 답했다. “코스는 읽혀도 구질은 안 받아보면 몰라요.”
 

▲  전지희와 함께 하는 복식은 이제 안정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다. 올림픽에서 한국여자탁구의 든든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월간탁구DB(ⓒ안성호).

“첫 올림픽 매순간 내 몫 하는 것이 중요”
 
리우올림픽 탁구대표팀 엔트리는 남녀 각 3명, 여자대표팀에선 지난해 10월 랭킹 순으로 서효원, 전지희가 개인전에 나선다. 양하은은 단체전에 집중한다.
  여자대표팀의 목표 역시 하나다. 서효원, 전지희가 그랬듯 양하은 역시 “동메달 이상, 무조건 메달!”을 외쳤다. 런던에서 끊어진 여자탁구 메달의 맥을 이어야 한다.
  2013년 이후 여자탁구의 시련을 함께 겪어내며 세 선수는 한마음이 됐다. 양하은은 “세계선수권이 끝난 후 내 다음 오더로 나서야 했던 효원 언니한테 제일 미안했다. 단체전에선 각자 해야 할 몫이 있는데 내가 못해서 언니한테 큰 부담을 줬다. 효원 언니가 잘 안 우는데 그 날, 언니가 우는 걸 보며 ‘갚아야겠다’ 생각했다”고 했다.
  양하은의 복식 파트너 전지희는 “하은이는 ‘리우올림픽까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양하은은 “‘시한부’라도 어디에요. 정말 고맙죠”라며 깔깔 웃었다. “지난해 지희 언니와 랭킹경쟁을 할 때는 정말 끔찍했었다. 경기장에서 서로 말도 안 할 만큼 첨예했다. 이제는 편한 언니다. ‘독한 언니’가 ‘편한 언니’가 됐다”고 털어놨다.
  막내로서 믿음직한 ‘쩜잡이(1점을 잡아내는 선수)’ 역할을 거듭 다짐했다. “복식에서 1점을 꼭 잡고, 단식에서 ‘3분의 1’ 몫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언니들이 나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올림픽에 가는 것, 언니들이 나를 신경 쓰지 않도록 하는 것, 팀에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 내 몫을 하는 것.”
  1994년생 양하은에겐 아직 두세 번의 올림픽이 더 남아 있지 않을까. 양하은은 “다음은 없다”고 단언했다. “올림픽에서 ‘경험’이란 말은 없다.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4년 뒤도 똑같다. 지금 기회가 왔을 때 잘 이겨내고 싶다.” 물론 힘이 닿는 한, 체력이 허하는 한, 도전은 계속된다. “나갈 수 있을 때까지는 나갈 것이다.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보겠다. 그러나 ‘이번에 못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 라는 생각은 안 한다. 우리에게 다음은 없다.”
  6월 코리아오픈이 끝난 후 양하은을 만났다. 양하은은 쉬신-마롱의 남자단식 결승전 이야기를 꺼냈다. 쉬신이 게임스코어 3대 3, 마롱에게 10-5로 앞서다 10-9까지 따라잡힌, 절체절명의 순간을 복기했다. “극도로 몰린 상황, 심지어 리시브 상황에서 쉬신이 과감하게 돌아서며 결정구를 때리는데 정말 멋있었어요.” 위기의 순간, ‘세계 1위’ 마롱을 기어이 돌려세운 쉬신의 ‘강심장’ 승부수 한방을 주목했다.
  영리한 탁구소녀는 생애 첫 올림픽에서 ‘뭐시 중헌지’ 꿰뚫고 있었다. “한 포인트로 승패가 갈리는 순간, 망설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공이 잘 맞든, 맞지 않든, 8-8, 9-9, 10-10 상황에서 누가 확실히 판단해 자기 것을 하느냐의 싸움이다. 올림픽도 결국 한 포인트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몰리는 순간, 이기는 순간, 잡히는 순간, 승부의 매순간, 흔들림 없이 내 것을 해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글_전영지(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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