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설탕 VS 소금

얼마 전 한 음식 평론가가 ‘단맛과 짠맛의 균형만 잘 맞추면 사람들은 맛있다고 착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먹을 만한 음식이지 맛있는 음식은 아니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직접 요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음식의 맛을 내는 일은 간을 잡는 것에서 시작되며, 이는 설탕과 소금의 사용법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이 두 식자재의 균형보다 그저 더하기에만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만 말이다.

 

설탕, 달콤한 사치품
설탕의 원자재인 사탕수수는 볏과의 식물로 남태평양의 뉴기니 섬에서 BC 8천 년경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동남아시아 등지로 퍼져나가 재배되었는데 이를 원재료로 한 결정체인 설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곳은 바로 인도였다. BC 327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로 파견한 원정군 사령관이었던 네아르코스 장군이 “벌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갈대 줄기에서 꿀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즈음 인도를 방문했던 역사가이자 <인도지>라는 책을 썼던 그리스인 메가스테네스 역시 설탕을 ‘돌꿀(石蜜)’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초창기의 설탕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단맛을 내기 위해 비싼 꿀을 사용해야만 했던 사람들의 눈에 갈대처럼 보이는 식물을 재료로 한 설탕은 무척 놀라운 물건이었을 것이다. 
 

▲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노예로 끌려갔던 아프리카 원주민들.

설탕이 본격적으로 다른 나라로 전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5,6세기 무렵이었다. 인도와 가까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설탕이 전해진 것은 물론 아랍을 거쳐 유럽에까지 설탕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특히 11~13세기에 벌어진 십자군 전쟁은 설탕이 온 유럽에 퍼지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지중해 지역에서도 사탕수수가 재배되기 시작했다. 또한, 인도에서 시작된 설탕 정제 기술은 아랍과 이집트를 거치면서 점점 발전되었는데 이 기술을 손에 넣은 베네치아 상인들이 더 큰 부를 축적하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이후 콜럼버스에 의해 신대륙이 발견되면서 사탕수수는 바다를 건너 대대적인 이동을 하게 된다. 주로 페루,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아프리카에서 잡아들인 검은 피부의 노예들로 충당했다. 그리고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발판으로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부의 소유권은 신대륙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유럽 열강들의 몫이었다.


소금, 생명 유지 장치
염분은 생명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지만, 농경사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주로 동물의 피나 고기를 통해 염분을 섭취해왔다. 그러나 곡류와 채소 섭취가 늘어나면서 염분을 따로 챙겨 섭취해야 했다. 그리고 생명과 직결되는 염분의 섭취제로 소금이 등장하면서 소금은 곧 부와 권력을 상징하게 되었다. 중국 윈청(運城)에는 수천 년 전부터 소금 채취를 해 온 소금 호수 해지(解池)가 있는데 윈청 태생이자 무장인 관우는 오래전부터 소금으로 부유했던 이곳 태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도 부를 상징하는 성인으로 추앙받아 신격화되어 있을 정도다. 

▲ 단디의 바닷가에 도착한 간디가 소금을 한줌 집어 들고 있다.

서양에서도 소금은 곧 돈을 상징했다. 월급을 뜻하는 영어 단어 ‘샐러리(salary)’는 라틴어로 소금(sal)을 지급한다는 ‘살라리움(salarium)’이 어원으로 고대 로마의 군인들이 월급을 소금으로 받았던 일에 근거하고 있다. 군인을 뜻하는 ‘솔저(soldier)’ 역시 소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금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역사적 사건도 있다. 인도가 영국의 지배로 고통받던 시절, 영국이 생필품이나 다름없는 소금에 과도한 세금을 부여했다. 그러자 마하트마 간디는 1930년 3월 12일, 사바르마티 아쉬람에서 78명의 동지와 함께 걷기 시작해 24일 만에 구자라트 주의 단디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도착해서는 바닷물에서 자연 생성된 소금을 집어 드는 행동을 한다. 인도의 소금을 인도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 영국군의 탄압 속에서도 단디에 도착할 즈음엔 일행이 수천 명으로 늘어나 있었고 이는 인도 해방 운동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설탕은 한때 값비싼 물건이었지만 꾸준히 가격이 하락하면서 소비량은 점점 늘어만 왔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인류 건강을 해치는 식품의 하나로 지목받으면서 설탕 섭취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멕시코, 헝가리 등이 설탕이 많이 든 음료에 설탕세를 부과하고 있는 것에 이어 영국에서도 2018년 4월부터 ‘설탕세’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루 첨가당 섭취량을 총 에너지섭취량의 10%(성인 50g) 미만으로 권고해오던 세계보건기구(WTO)에서도 지난해부터는 5% 미만으로 낮추자는 추가 권고안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제1차 당 섭취 저감 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는 빠르게 늘어나는 한국인의 당 섭취량을 줄이기 위한 계획이다. 


▲ 맛있는 음식이란 어떤 것일까. 점점 자극적으로 가는 우리 입맛을 한번쯤 초기화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심각한 것은 과다한 소금 섭취량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짜게 먹는 나라인 것은 물론 하루 권장량인 5g의 2배 이상을 섭취하는 사람도 매우 많은 실정이다. 과다한 염분 섭취가 뇌경색이나 심장질환, 위장장애, 비만 등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생명 유지장치라고 할 수 있는 소금이 현대에 와서는 오히려 목숨을 앗아가는 한 요인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런데도 짠맛의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음식이 짭짤해야만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맛과 짠맛은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가지 맛 중에서도 가장 중독되기 쉬운 맛이다. 설탕이 더해지고 소금이 더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맛있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그에 무뎌지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식생활을 바꿔보겠다는 결심만 하면 어렵지 않게 설탕과 소금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음식 맛을 느끼게 하는 혀의 ‘맛봉오리 세포’는 계속해서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며 12주 정도면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바뀌기 때문이다. 단지 일주일 동안만 저염식을 해도 훨씬 더 입맛이 민감해진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설탕과 소금을 더해 음식을 더욱 맛있게 만들려는 노력이 아닌 더 적은 양으로 입맛과 건강을 모두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월간탁구 2016년 4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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