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는 인문학 입문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흔히 기본적으로 '문사철'을 떠올리는데 이는 문학, 역사, 철학을 이야기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교육환경에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학문이지만 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교양학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한 주장들이 반갑기만 하다. 경쟁만을 외쳐대던 사회적 분위기가 자기 성찰의 분위기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기대감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문학은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만만한 분야는 아니지만, 사회 전반에 대한 기초 지식과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가까이할수록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학문이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인문학, 오늘은 더욱 쉽게 인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입문서 몇 권을 소개하려고 한다.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 조승연

이 책의 저자인 조승연은 영어, 이탈리아어, 불어 등 7개 국어를 공부해온 사람이다. 사실 몇 년 전 50만 독자를 사로잡았던 그의 전작도 특별한 외국어 공부법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조승연 표 인문학의 첫 번째 키워드는 ‘언어’다. 언어에는 인간의 희로애락, 사랑과 갈등, 전쟁의 잔인함과 영웅들의 발자취, 예술과 문학의 원천이 스며있기 때문에,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곧 인문학을 한다는 것과 상통한다는 것이다. 조승연 표 인문학의 두 번째 키워드는 ‘이야기’다. 공부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해왔던 저자는 인문학 역시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방적인 지식 나열 혹은 지식 주입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할 것,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지식이 겉돌지 않고 바로 가슴과 머릿속에 깊숙이 스며들 수 있어야 할 것. 그래서 저자는 그 지식 전달의 방법으로 ‘이야기’라는 노선을 취했다. 6,000년 전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일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까지,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특유의 위트 넘치는 문체로 펼쳐진다.

글래머는 ‘문법 잘하는 여자’, 럭셔리는 ‘바람난 남자’, 프리티는 ‘속물’, 로맨스는 ‘로마답다’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날씨가 쌀쌀할 때 걸치는 ‘카디건’이 사실 어마어마한 재산을 지닌 영국의 한 귀족 이름에서 비롯되었고, ‘샌드위치’가 모래 덮인 해안을 다스리던 한 백작이 개발해낸 전매특허품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 인문학>에서는 이렇듯 단어 하나하나에 숨은 ‘기막힌 반전’을 만날 수 있다. 다른 인문서에서는 결코 읽을 수 없었던 색다른 이야기들을 만나고 나면, 지루했던 인문학이 더욱 유쾌하게 다가온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1, 2 | 주현성

이 책의 저자인 주현성은 인문학의 핵심 분야를 심리학, 회화, 신화, 역사, 철학, 글로벌 이슈로 선정해 서술하고 있다.

먼저 심리학 분야에서는 근대 문화를 해석하는 데 가장 많은 심리적 기초를 제공했던 프로이트부터 현대 심리학의 대세라 할 수 있는 인지심리학까지 순서에 따라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심리학의 관찰 실험법과 베스트셀러 심리학 서적들의 내용까지 두루 살펴보고 있다. 회화 분야에서는 회화 지식의 흥미를 각인시키기 위해, 회화 운동이 본격화되는 근대의 인상파부터 다루기 시작하고 있는데 최대한 각 유파 간의 인과관계를 추적하여 현대 회화까지 소개해 준다. 서양 문화를 이해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리스 신화 분야에서는 기존 신화를 다룬 책들이 방대한 내용을 보여주느라 정리가 잘되지 않는 점을 염려해, 신화의 주요 주인공인 올림포스 12신과 테세우스 등 전쟁 영웅들만을 골자로 다룸으로써 그들의 계보를 쉽게 정리할 수 있게 했다. 그 외에도 서양 유럽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역사 분야, 현대 이전의 철학과 현대의 철학으로 나누어 최대한 쉽게 쟁점을 다룬 철학 분야, 마지막으로 현대 사회의 쟁점인 세계화, 자유무역, 환경, 종교 및 지역 분쟁 등을 다루고 있는 글로벌 이슈 분야까지 끊임없이 독자의 흥미를 자아낸다.

저자가 최소한의 인문학이라고 이야기한 1권에 이어 발간된 2권에서는 모네 이전의 회화, 문학과 문예사조, 과학의 독립사, 사회이론의 대가들, 미학의 역사와 대중문화 등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읽는 데 있어 꼭 알아야 할 분야를 엄선하여 소개하고 있다. 특히 1권이 인문학의 ‘뼈’라면, 2권은 그 ‘살’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크로스 1, 2 | 진중권+정재승

미학자 진중권은 이제 취향이 계급보다 강하게 사람들을 구분 짓는다고 단언한다. 예를 들면 어떤 상표의 커피를 좋아하는 지가, 월급 수준보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더 강한 기준이 된다. 상품을 통해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자 정재승은 명품 프라다에서, 아이폰으로 한창 주가를 올렸던 애플에서도 사용가치보다 거기에 결부된 브랜드나 디자인 가치로 평가하는 탈산업화의 경향을 잡아낸다. ‘멋진 것들’이 얄밉도록 잘 써먹는 방식이다.

인터넷에 나온 정보로만 리포트를 쓴다며 한탄하는 교수님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한 포털사이트는 ‘한 번의 검색으로 리포트 끝’이라는 광고를 공공연히 내보낸다. 21세기 기술은 글쓰기 방법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진중권은 이런 현상에 적응하는 새로운 창작법을 제시한다. 바로 구글에 들어가 검색어를 치고, 검색된 문건들을 읽으며 쓸 만한 자료들을 모아 이리저리 결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재승은 웹 세상에 만들어진 <위키피디아>를 대중이 스스로 가르치고 스스로 배우는 사이버 민주주의의 실천이자 집단지성의 구현으로 주목한다. 그리고 또 <위키피디아>와 <네이버 지식 in>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 사이의 문화적 차이가 말해주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인은 어떠한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것을 미학과 과학이라는 각각의 측면에서 읽어 내려가는 건 독자들이 각각에서 확인되는 편차를 통해 사물을 더 깊이 이해하고 경계를 넘어 사고할 줄 아는 시각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시즌 1이 그를 위한 워밍업이었다면, 시즌 2는 본격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엉뚱하고 무의미한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시도는 의미 있는 도전이다. 세상이 만들어내는 현상 대부분은 그 안에 존재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신드롬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강신주는 일반교양 독자들의 목마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철학자이다. 그는 직접 대중들을 만나 소통하는 대중 아카데미에서 주로 강의해왔다. 대학 강단에서의 일방적인 주입식 철학 교육이 아니라, 각자 삶의 고민과 불만족을 해소하기 위해 철학 강의를 찾아 듣는 사람들과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나누고 공감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강의가 환영받는 이유는 강신주 만큼 일반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그들 하나하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인문학을 강의해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몇 년간 대중 강연에서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고민하면서 어려운 인문학 강좌가 아닌, 실제 현실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적용 가능한 철학적 조언이 어떤 것인지를 터득했다. 이 책은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장 잘 반영한 ‘현실감 있는 인문 공감 에세이’이다. 강신주는 동서양 철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사유들을 땅 위의 문제와 접목하는 탁월한 내공을 바탕으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그러했듯이 ‘거리의 철학자’로 고민과 철학을 ‘나누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점에서 기존의 고전 안내서와 차별점을 두고 있다. 첫 번째는 틀에 박힌 철학 고전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의식을 투영할 수 있는 모티프를 가진 인문학자들의 저작을 위주로 책을 구성한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여느 고전 안내서에서 볼 수 없었던 낯선 인문학자들인 이리가라이, 나가르주나, 이지, 라베송, 마투라나 등의 이름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독자들에게 현실감 넘치는 철학적, 인문학적 조언을 제공하면서 마치 심리 상담을 하듯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쉽게 읽히는 에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달콤한 거짓 위로나 자기 최면을 위주로 하는 심리 에세이가 아니라, 오히려 직접 문제에 부딪혀서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는 인문학적 충고가 담겨 있는 철학 에세이이다.

 

정리_서미순(월간탁구 2014년 6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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