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오페라 VS 뮤지컬

오락거리가 부족하던 시대에 처음 등장한 오페라는 귀족층이나 즐길 수 있는 고급문화였다. 이후 차차 서민들까지 오페라를 즐길 수 있게 되긴 했지만, 현대까지도 어려운 고급문화라는 인식이 많이 깔려있다. 그에 비하면 뮤지컬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장르다. 무겁고 어려운 클래식 음악과는 달리 친숙한 스토리와 음악, 화려한 무용을 통해 최고의 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페라, 르네상스가 만들어낸 음악극
르네상스는 로마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야만의 시대인 중세를 끝내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다시 부흥시키려 한 운동이었다. 그동안 기독교 중심의 사상과 봉건제도로 억압받던 인간성을 되찾고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발현시키려는 노력이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운 것이다. 특히 기독교 유일신을 찬양하는 도구로만 치부되던 예술은 인간중심의 사고를 지향하던 르네상스를 통해 우리 인간의 모습과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재조명받게 되었다.
 

▲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한 장면. 오페라 출연자들은 연기보다 뛰어난 가창력을 가장 필요로 한다.

오페라는 그런 사회,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주로 춤과 노래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대사의 일부 또한 노래로 불렀다는 고대 그리스 연극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작곡가 야코포 페리의 <다프네>와 <에우리디체>를 만들게 한 것이다. <다프네(1597)>는 상연 기록과 각본만 남아있는 정도지만, 프랑스의 앙리 4세와 메디치 가문 마리아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에우리디체(1600)>는 악보가 전해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로 손꼽히고 있다. 물론 오페라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음악을 사용하는 음악극은 존재했지만, 그것들이 오페라로 분류되지 않는다.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음악 연극의 흐름을 따를 뿐만 아니라 대사를 포함한 작품 전체가 작곡되어야만 비로소 오페라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오페라는 크게 독창, 중창, 합창, 관현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연 격인 가수가 주로 독창과 중창을 부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이는 아리아와 말하는 것처럼 대사를 노래하는 레치타티보로 나뉜다. 합창은 무대 등장인물들이 다 함께 부르는 곡이고 관현악은 공연 전체의 서두에 서곡으로 연주되거나 막과 막 사이에 간주곡으로 연주되는 것들이 많다. 오페라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장르였던 만큼 많은 작곡가가 오페라를 썼지만 그중에서도 바그너(탄호이저, 로엔그린, 니겔룽겐 반지 등), 베르디(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등), 푸치니(토스카, 나비부인, 라보엠, 투란도트 등), 모차르트(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마적 등)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뮤지컬, 미국에서 꽃 핀 대중적인 음악극
뮤지컬은 18세기에 생겨나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에서 뜨거운 인기를 얻었던 오페레타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오페레타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오페라를 의미하는데 정통 오페라와는 달리 직접 말로 하는 대사들이 있고 무용이 많이 들어가 있으며 주로 희극적인 내용을 다루던 오락성 음악극이었다. 여러 오페레타 중에서도 뮤지컬의 원형으로 보는 것은 런던에서 상연되었던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1728)>이며 현대의 뮤지컬과 형식을 같이하는 최초의 뮤지컬로는 조지 에드워드가 제작한 <거리에서(1892)>를 꼽는다. 
 

▲ 뮤지컬 캣츠의 한 장면.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뮤지컬은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영국에서 이제 막 싹을 틔우던 뮤지컬은 노래와 춤, 코러스 걸의 군무가 정착되어있던 미국의 공연 문화와 만나 진정한 꽃을 피우게 된다. 특히 1차 세계 대전과 대공황을 겪던 미국인들에게 낙천적이고 유쾌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뮤지컬은 큰 환영을 받았다. 이 시기의 뮤지컬은 가볍고 발랄한 재즈 음악을 기본으로 했는데 차차 연극적 요소와 등장인물의 성격을 강조하면서 극의 완성도를 높여갔고 당당히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한 축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이후 <너를 노래한다(1931)>의 퓰리처상 수상과 <오클라호마(1943)> 2천 회 이상 장기 공연이 성공하면서 새로운 예술 공연분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뮤지컬 무대에서 제일 중요한 곡조로는 공연 시작 전에 연주되는 서곡, 상황을 설명하여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오프닝 넘버, 주로 1막 중간과 1막의 끝에 나오며 화려하고 대담한 무대를 선보이는 프로덕션 넘버, 뮤지컬의 클라이맥스 곡으로 손꼽히는 솔로 혹은 이중창의 아리아를 꼽는다. 뮤지컬 곡들은 원래 제목은 존재하지 않고 극 중 등장하는 순서에 맞춰 넘버(number)를 붙여 부른다. 대본이나 대사가 수정되면 가사와 제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음악 못지않은 인기를 얻은 뮤지컬 넘버는 제목을 붙여 부르는 일이 많다. 
한국에서는 흔히 4대 뮤지컬이라 하여 <캣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을 손꼽는데 사실 뮤지컬계에 4대 뮤지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980년대에 등장한 이 네 편의 뮤지컬들이 그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큰 성공과 영향력을 가지면서 영어권에서 <뮤지컬 빅 4>라고 부르던 것이 번역의 오류로 4대 뮤지컬로 둔갑한 결과다. 


같은 듯, 다른 지상 최대의 음악극
뮤지컬이 그 뿌리를 오페라에 두고 있는 만큼 두 장르는 매우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많은 차이점이 있다. 먼저 오페라는 주로 고전 문학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음악 역시 클래식에 한정된다. 또한, 오페라에 출연하는 사람을 오페라 가수라고 부르는 만큼 노래 실력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 된다. 그에 비해 뮤지컬은 그 소재에 한계가 없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이고 있으며, 음악 역시 클래식, 팝, 록, 재즈, 힙합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게다가 뮤지컬에서는 화려한 댄스 무대를 선보이기 때문에 출연자의 춤 실력은 필수적이며, 말 대사 표현을 위한 높은 연기력까지 필요로 한다. 따라서 뮤지컬에 전문적으로 출연하는 사람들은 뮤지컬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라고 부른다. 특히 오페라 구성의 중요한 요소가 관현악인 만큼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필수적이지만 뮤지컬은 녹음된 반주를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관객에게 감상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오페라와는 달리 뮤지컬은 관객과 함께 보고 듣고 즐기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 일년 내내 다채로운 뮤지컬 공연이 펼쳐지는 뉴욕 브로드웨이 거리는 뮤지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오페라와 뮤지컬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오페라가 뮤지컬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거나 뮤지컬을 오페라 전문극장에서 볼 수 있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오페라에 오르던 가수들이 뮤지컬 무대에 서고, 그 반대의 양상을 보이는 일도 많아졌다. 뉴욕 현대오페라센터에서 2006년 초연된 오페라 <셰리>의 전반부는 뮤지컬 캐스팅을, 후반부는 오페라 캐스팅을 하면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 오페라가 공연되는 공연장의 무대 바로 앞쪽에는 반드시 관현악단이 자리를 잡는다. 뮤지컬처럼 녹음된 반주를 틀어주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전통이란 이름으로 보수적인 태도를 지켜오던 오페라는 현대적인 무대 장치와 연출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뮤지컬 스테프를 영입하고, 점점 과장되며 장식적인 볼거리에 집착하던 뮤지컬은 오페라와의 만남을 통해 음악극의 중심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월간탁구 2016년 3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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