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하는 공격수! 거친 경기매너 때문에 ‘악동’으로 불리기도

덴마크의 탁구스타 미카엘 메이즈(Michael Maze)가 전격 은퇴를 발표했다. 지난 3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 팬페이지를 통해 은퇴 사실을 알렸다.

미카엘 메이즈는 오랜 기간 덴마크 탁구를 대표해온 선수지만 지난 2010년 첫 부상 이후 지금까지 각종 부상 속에 치료와 재활, 복귀를 반복하며 어렵게 선수생활을 이어왔다. 결국 장기화된 무릎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34세(1981년 9월 1일생)라는 조금은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택하게 됐다.
 

▲ 유럽 최강자 중 한 명이었던 메이즈가 결국 은퇴를 선택했다. 끝내 부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월간탁구DB(ⓒ안성호).

미카엘 메이즈는 때때로 상대를 도발하는 거친 경기 매너로 '악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좌우를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역동적인 모습과 마지막까지 결코 포기를 모르는 로빙 플레이로 많은 팬을 거느린 인기 선수였다. 우리나라의 주세혁이 끈질긴 수비 끝에 드라이브 역습으로 마무리 짓는 '공격이 좋은 수비수'의 대명사라면, 반대로 메이즈는 좀처럼 뚫리지 않는 로빙 플레이 끝에 기어이 득점하고 마는 '수비가 좋은 공격수'로 평가받아왔다.

특히 ‘그’ 로빙 플레이로 중국선수 2명을 이기고 단식 4강까지 오른 2005년 상하이 세계탁구선수권은 미카엘 메이즈의 장점과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대회로 회자된다. 당시 미카엘 메이즈는 중국의 왕리친과 마린, 우리나라의 오상은(KDB대우증권)과 함께 4강에 오른 유일한 유럽선수였다.
 

▲ 2005년 상하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왕하오와 하오솨이를 연파하고 4강에 올랐었다. 월간탁구DB(ⓒ안성호).

'전매특허' 로빙 플레이를 앞세워 16강전에서 중국의 왕하오를 4대 0(11-9, 11-6, 12-10, 15-13)으로 '셧아웃' 시킨 메이즈는 이어진 8강에서 또 다른 중국선수인 하오솨이마저 4대 3(5-11, 8-11, 6-11, 12-10, 11-7, 11-9, 11-6)으로 격파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하오솨이와의 8강전은 게임스코어 0대 3에, 4게임마저 7-10으로 뒤지고 있던 시합을 강한 집중력으로 뒤집은 기적 같은 승리였다.

4강전에서 마린에게 패해 중국 상대 3연승은 이루지 못했지만 우승후보 중 하나였던 왕하오에게 거둔 완승과 하오솨이를 꺾은 충격의 역전승은 당시 체육관을 가득 메운 중국 홈팬들을 집단 ‘멘붕’에 빠지게 했던 극적인 활약이었다.
 

▲ 잦은 부상으로 재활과 복귀를 반복했다. 2009년 요코하마 세계선수권대회 때의 모습이다. 월간탁구DB(ⓒ안성호).

메이즈가 주최국 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악동' 같은 일화가 한 번 더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2009년 유럽선수권대회 단식 4강전에서 메이즈가 홈팀의 티모 볼을 꺾은 것이다.

2000년대 유럽탁구는 티모 볼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모 볼은 2002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2012년 덴마크 헤르닝 대회까지 무려 6번이나 유럽선수권 챔피언 자리에 올랐었다. 특히 2009년 슈투트가르트 대회는 티모 볼이 2007년 베오그라드, 2008년 상떼-페테르부르크 대회 우승에 이어 3연패를 노렸던 대회다. 그런 절정의 티모 볼을 미카엘 메이즈가 격파하면서 독일 홈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당시 대회에서 메이즈는 오스트리아의 ‘영웅’ 베르너 쉴라거마저 결승전에서 꺾고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럽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이외에도 메이즈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인복식 동메달, 2004년 독일 푸랑크푸르트 유럽TOP12 우승, 2005년 덴마크 오르후스 유럽선수권대회 단체전 금메달 등의 수상 기록을 남겼다.
 

▲ 런던올림픽에서 특유의 역동적인 모습을 선보이며 부활을 알렸지만 '희망고문'이 되고 말았다. 월간탁구DB(ⓒ안성호).

그러나 거침없던 메이즈를 막아선 것은 탁구 라이벌들이 아니라 바로 '부상'이었다. 2009년 덴마크 로스킬레 팀에서 함께 선수생활을 했던 오상은은 메이즈에 대해 “부상이 잦고 기복이 심한 선수”로 평가한 바 있다. 실제로 메이즈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잦은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국제대회 참가가 뜸해지면서 세계무대에서의 존재감도 점점 작아져갔다. 2012년 영국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과 리버풀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며 잠시 부활하는 듯 보였지만, 뒤이어 자국에서 개최된 헤르닝 유럽선수권 개인단식에서는 첫 경기였던 본선64강전에서 탈락하는 최악의 성적으로 실망을 안겼다.

이후 무릎부상으로 다시 긴 재활 기간을 가졌던 메이즈는 1년여 만에 국제무대에 복귀한 2014년 제1회 로잔 유럽컵대회 4강전에서 유럽 최강 디미트리 옵챠로프(독일)를 4대 2(7-11, 11-7, 11-8, 11-7, 11-13, 11-3)로 이기고 결승에 오르며 또 한 번 부활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 역시 '희망고문'으로 끝나고 말았다. 얼마 못가 또 부상이 재발하면서 메이즈는 유럽컵 결승진출로 출전권을 획득한 월드컵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다.
 

▲ 결국 은퇴를 선언한 메이즈. 그는 탁구를 넘어 덴마크의 스포츠스타였다. 사진 fkickr.com

그 뒤로도 재활과 복귀를 반복하던 메이즈는 결국 리우 올리픽을 겨우 5개월 앞두고 은퇴를 결정했다. 잦은 부상과 수술을 끈질기게 벼텨왔던 그의 신체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시간이 됐습니다. 내 인생에 있어 최고 힘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톱플레이어로서 나의 시간은 끝이 났습니다. 담당의사, 소속팀과의 상의 결과 우리는 힘든 결정에 도달했습니다. 나는 이번 여름 리우 올림픽까지 뛰고 싶었지만, 내 몸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몇 번의 수술 끝에, 나는 더 이상 통증 없이 훈련을 할 수도, 예전 수준으로 경기를 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특별히, 나의 가족, 친구들, 스폰서, 그리고 팬들 모두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선수 생활 중에 보내준 모든 성원과 응원에 영원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이 놀라운 스포츠는 나에게 많은 멋진 경험과 기억을 전해주었습니다." (출처 : 미카엘 메이즈 페이스북 내용 중)
 

▲ 메이즈의 근성과 열정은 끈질겼던 로빙 플레이만큼이나 세계 탁구팬들의 가슴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월간탁구DB(ⓒ안성호).

이렇게 미카엘 메이즈는 결코 놓을 것 같지 않았던 라켓을 스스로 내려놓으며 다산다난했던 선수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포기를 몰랐던 메이즈의 근성과 열정은 그의 끈질겼던 로빙 플레이만큼이나 세계 탁구팬들의 가슴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메이즈의 은퇴 소식을 접한 국제탁구연맹은 그간 그가 보여준 활약상들을 모은 헌정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리며 이 ‘특별했던’ 스타의 선수생활을 기렸다.
 

출처 : 국제탁구연맹(ITTF) 유튜브 채널 (하단 관련기사 목록에 더 많은 관련 동영상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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