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 디즈니 VS 미야자키 하야오

 

미키마우스와 토토로. 

어린 시절, 어느 날 갑자기 TV 화면 속에 나타난 반바지, 맨발 차림에 창을 든 소년은 마음을 홀딱 빼앗아 갈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천진하고 정직한 성격에 때때로 깜짝 놀랄 정도의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그 소년의 이름은 코난이었다. 할아버지와 둘이 살면서 바닷속을 누비고 들판을 달리던 코난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환영받던 캐릭터였다. 한편, 모처럼의 늦잠이 허락되는 일요일 아침에도 언제나 정신을 번쩍 들게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디즈니 만화동산’이었다. 욕심 많은 스크루지 오리 아저씨, 언제나 아옹다옹하는 두 마리의 다람쥐, 조금은 바보스럽던 구피의 슬랩스틱을 봐야 일요일 아침을 제대로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월트 디즈니와 월트 디즈니 컴퍼니

애니메이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월트 디즈니다. 그는 단순히 자신과 동명의 영화 제작사와 디즈니랜드를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기준을 만든 인물이자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1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운 집안환경으로 제대로 학업을 이어나가기도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나마 중등과정을 캔자스의 예술디자인학교에서 이수하면서 그림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과 실기 교육을 받았고 그 이후엔 학교 신문이나 광고 등에 도안을 그리면서 애니메이션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다가 평생의 동지인 어브 아이웍스를 만나 함께 일하고 거기에 형인 로이 디즈니까지 합세해 1923년, 오늘날의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뿌리가 되는 디즈니 브라더스 스튜디오를 열어 다양한 캐릭터와 작품을 선보이게 된다. 특히 월트 디즈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미키 마우스’가 처음으로 등장한 ‘증기선 윌리호(1928)’는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던 월트 디즈니에게 처음으로 성공의 가능성을 가져다준 작품이었다. 미키 마우스를 내세워 만든 여러 편의 장·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주목을 끈 이들은 이후 첫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로 초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디즈니의 발목을 잡아온 지긋지긋한 자금난에서 벗어나게 한 이 작품의 성공 이후 ‘피노키오(1940)’, ‘신데렐라(1950)’, ‘피터팬(1953)’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애니메이션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1966년 월트 디즈니가 폐암으로 사망한 후로는 디즈니 컴퍼니도 애니메이션보다 극영화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후 선보인 ‘아리스토캣(1970)’과 ‘타란의 대모험(1985)’ 또한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디즈니 컴퍼니의 애니메이션 역사는 그대로 초라하게 막을 내리는 듯했다.

미키 마우스가 첫 등장한 ‘증기선 윌리호’와 디즈니 성공의 발판이 되어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두 번째 부흥기를 열었던 ‘인어공주’.

 

그런 디즈니 컴퍼니가 1989년에 선보인 28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잃었던 명성을 되찾아 준 소중한 작품이다. 디즈니 컴퍼니의 작품들이 오래전부터 음악과 화면을 적절하게 결합하는 일에 힘을 쏟아온 것이 사실이었지만 ‘인어공주’는 음악의 비중을 훨씬 더 늘리고 뮤지컬 형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인어공주’의 성공은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 부활의 신호탄이 되면서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라이언킹(1994)’까지 잇달아 성공시킨다. 그러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디즈니의 영광도 ‘토이 스토리(1995)’와 함께 나타난 3D 애니메이션으로 인해 한동안 다시 자리를 내놓게 된다. 물론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겨울 왕국’으로 그동안 빼앗겼던 왕의 권좌를 재탈환하기 위한 태동을 시작한듯싶지만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캐릭터 ‘미래소년 코난(1978)’을 만든 사람은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다. 1941년 도쿄에서 태어난 미야자키 하야오는 고교 시절부터 애니메이션 작가의 꿈을 꿨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가큐슈인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학의 아동문학 연구회라는 모임에서 인형극의 캐릭터 디자인과 스토리 구성일을 맡아 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애니메이션 회사인 도에이 동화에 입사해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플란다스의 개’ 등의 스테프로 참여한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연출을 맡아 만든 애니메이션이 바로 ‘미래소년 코난’이다. 당시 제출된 기획안에 실린 제작 의도를 보면 ‘강력한 과학병기의 사용으로 인류 대부분이 사라져 버린 미래,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다시 생활을 바로 세우고 살아갈 것인가. 한 명의 용감한 소년과 소녀가 중심이 되어 신뢰와 우정을 통해 인간의 미래를 지키는 이야기’ 정도로 요약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획의도가 다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사실이다. 이후 만들어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원령공주(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속에서 ‘미래소년 코난’의 기획안에 실린 인류 종말, 인간애, 공동체 등의 이미지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속에서도 특히 사랑받는 작품은 ‘이웃집 토토로(1988)’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상업적 성공 이후 그가 1985년에 설립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두 번째 작품인 ‘이웃집 토토로’는 일본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커다란 녹나무의 정령인 토토로와 요양원에 아픈 엄마를 두고 있는 어린 두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잃어버린 동심과 동화적 판타지가 그대로 녹아있는 이 작품은 그 해 모든 영화를 제치고 일본 내 모든 영화제의 상을 휩쓸어 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토토로는 이후 지브리 스튜디오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마녀배달부 키키(1989)’, ‘붉은 돼지(1992)’, ‘원령공주(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때로는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는 보편적 정서를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일본 특유의 샤머니즘과 보수적 시각을 내비치기도 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연출작 ‘미래소년 코난’, 지브리 스튜디오의 상징이 된 ‘이웃집 토토로’와 다이아나 윈 존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환상과 동심의 월트 디즈니, 자연과 인간의 미야자키 하야오

보통 애니메이션을 ‘어린이를 위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오랫동안 접해왔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려보면 그 말을 부인하긴 어렵다. 미키마우스, 도널드덕, 구피 등의 디즈니 캐릭터들은 1차원적인 이미지를 선보이며 어린이들을 즐겁게 했다. 최근 개봉하여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겨울 왕국(2013)’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디즈니 특유의 ‘권선징악’, ‘기승전결’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 때문에 디즈니의 작품들은 단순하고 유아틱한 동화적 세계에 갇혀있다는 평을 받아왔다.

이에 반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성인들에게도 크게 어필하는 작품들을 그려왔다. 생각해보면 그저 유쾌하게만 생각했던 ‘미래소년 코난’의 경우도 몇몇 인물외에는 대사량은 적었고 오히려 웅웅대는 기계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모래벌판이나 바다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여백 속에서 애니메이션이 주는 메시지와 상징을 읽는 것은 오롯이 관람자의 몫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바람이 분다(2013)’와 같이 종종 ‘일본 극우’나 ‘전범 미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계에 월트 디즈니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미 월트 디즈니는 수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들의 작품 철학은 여전히 발표하는 작품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린이들의 환상과 동심을 그리는 월트 디즈니, 인간의 꿈과 자연을 이야기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그들의 활동 여부를 떠나 그들이 만들어 낸 독자적인 작품 세계는 디즈니 컴퍼니와 지브리 스튜디오를 통해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글_서미순 (월간탁구 2014년 3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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