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팀을 정말 이대로 잃어야 하나!

남자실업 4강 중 한 축을 지켜왔던 농심탁구단이 끝내 해체됐다. 농심의 이름을 걸고, 혹은 삼다수의 이름을 가슴에 달고 경기장을 누비던 선수들은 2014년 3월 31일자로 무적(無籍) 신분이 되고 말았다. 이 유력한 팀의 해체를 무기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탁구계의 시선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급작스런 해체에 당면한 (전)농심 선수들의 '현재'를 전한다.
 

▲ 끝내 해체되고 만 농심탁구단. 2011년 팀에 취재를 갔을 때의 모습이다. 에이스 이정우는 당시 상무 소속이었다.

기업 간 계약논리에 '희생'된 선수들
  아시안게임 대비훈련도 아니었다. 다음 대회 성적도 아니었다. 선수들에게 우선 주어진 걱정은 짐을 어디다 맡겨 두느냐였다. 당장의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들을 지방의 본가에 가져다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임시거처를 옮길 때마다 실업생활 동안 늘어온 짐들을 모두 싸들고 다녀야 한다는 게 기가 막혔다. 어떤 비장한 각오나 다짐을 논하기에는 물리적 시간도,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대책 없이 정든 숙소를 나와야 하는 선수들에게 뜻하지 않은 해체소식은 너무도 급작스레 들이닥친 현실의 문제였다.
  농심탁구단이 결국 해체됐다. 지난해 초부터 나돌았던 소문은 (주)농심이 지난달 대한탁구협회에 정식으로 해체를 통보하면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농심의 이름을 걸고, 혹은 삼다수의 이름을 가슴에 달고 경기장을 누비던 선수들은 끝내 2014년 3월 31일자로 무적(無籍) 신분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굵은 땀을 흘려왔던 안양의 체육관과 힘든 훈련의 피로를 풀던 숙소도 더 이상은 맘대로 드나들 수 없는 '남의 집'이 됐다.
  농심탁구단의 해체 이유는 전신인 '제주삼다수탁구단'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농심탁구단은 제주도개발공사가 2000년 하반기에 창단했던 '제주삼다수탁구단'이 모태였다. 삼다수를 유통판매하던 (주)농심이 2003년에 인수하여 '농심삼다수탁구단'으로 재창단, 10년간 운영했다. 하지만 2012년 12월 제주도개발공사가 농심과 맺었던 '삼다수' 판권 계약을 종결하면서 탁구단 명칭은 '농심탁구단'이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탁구인들은 '농심'의 이름으로 남자실업탁구팀이 유지될 거라는 기대를 품었던 게 사실이다.
​  하지만 1년간 삼다수를 빼고 구단을 운영했던 농심은 애초부터 팀을 계속 유지할 뜻이 없었다. 삼다수와 함께 '패키지'로 인수했으므로 판권계약 종료와 함께 탁구단 운영근거도 사라졌다는 것. '삼다수'가 빠져나가면서 경영이 악화됐고, 탁구단을 운영할 여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처음 탁구단 창단의 주체였던 제주도개발공사나 새로운 삼다수 판매사인 광동제약 역시 탁구단 경영은 농심의 고유권한일 뿐 재인수할 근거는 없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지난 1년은 구단과 선수들에게 주어진 유예기간에 불과했다. 남자실업 4강 중 한 축을 이루던 '농심탁구단'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 열성적인 서포터스를 갖고 있던 팀이어서 '농심'의 해체는 더욱 안타깝다.
▲ 추교성, 장영민 코칭스태프. 선수들의 앞날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지난 1년여 간의 시간 동안 탁구계의 움직임이었다. 유력한 실업팀의 해체를 앞두고도 아무런 자구책을 내놓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되고 말았다. 성적이나 여타 내부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기업 간의 계약논리에 따라 사라져가는 한 팀을 구제하지 못했다. 해체를 막기 위한 노력은커녕 "모기업이 안한다는데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분위기만 팽배했다. 자금줄을 쥐고 있는 기업의 입장을 막을 수 있는 강제권한이 없으니 틀린 시각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성과로 성패를 결정짓는 자본주의 사회기 때문에 더욱 더 농심의 해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탁구인은 없다.
  탁구계가 단합해서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었다면, 팀의 유지가 회사에 미칠 수 있는 더 밝은 희망과 미래를 제시할 수 있었다 해도 이렇게 쉽게 하나의 팀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 오히려 해체 이후 어떤 선수를 어느 팀이 스카우트하려 한다거나 새롭게 인수해서 창단할 새 팀 지도자로 기존 코칭스태프가 아닌 다른 인사가 가기 위해 물밑작업을 한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만 무성하게 떠돌았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응집력 있는 탁구계의 모습을, 차고 넘치는 팀 유지의 당위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결국 팀의 해체로 추교성, 장영민 코칭스태프와 이정우를 비롯한 여섯 명의 선수들만 고스란히 희생양으로 남고 말았다. 목표를 위해 오로지 탁구에 온몸을 던졌던 선수들은 라켓을 들고 설 테이블이 없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탁구훈련만으로는, 자신만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하고 있지는 않을까. 급하게 싸들고 나온 짐들의 무게가 지나치게 무거울까봐 걱정된다.
 

▲ 지난 연말의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농심의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멋진 플레이를 펼쳤다. 단식 준우승을 차지한 왼손 에이스 이정우.
▲ 종합선수권 개인복식을 우승한 이정우-최원진 조.
▲ 단체 준우승을 기록했던 작년 실업대회 시상식 모습.

앞으로 3개월
  "선수들에게 미안할 뿐이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최대한 빠른 시간에 새 팀을 찾아 다시 뭉칠 수 있는 길을 열어보겠다는 것뿐입니다."
  운명은 참 얄궂다. 선수로 동아증권에서 해체를 경험했던 추교성 감독은 코치시절 현대백화점에서 또 해산되는 아픔을 겪었고, 다시 농심에서 팀이 사라지는 걸 막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전까지는 뒤에서 따르는 위치였지만 지금은 앞에서 끌고 가야 하는 입장이다. 책임져야 하는 제자들 때문에라도 선수나 코치 때보다 더 충격이 크다는 그는 "앞으로 3개월"을 강조했다.
  추 감독에 따르면 팀은 해체됐지만 향후 3개월간은 선수들이 흩어지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추 감독은 그동안 팀을 온전히 인수하여 창단할 수 있는 기업을 찾을 계획이라는 것. 완전히 소속을 벗어난 현재는 이적이 아닌 창단이므로 별도의 비용이 발생하지 않고, 완성된 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식이어서 스카우트비도 따로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창단팀 자격으로 신인 우선지명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은 게 문제지만, 최소한의 비용으로 검증된 전력의 12년차 실업팀을 인수할 수 있다는 이점을 내세운다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미 창단의향을 보인 기업이 다수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동안 선수들은 태릉선수촌에 상비군으로, 또는 훈련파트너로 입촌해서 훈련을 지속하거나 상비군훈련 기간이 아닐 때는 다른 실업팀의 양해를 구해 '더부살이'로라도 연습을 계속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앞으로 3개월'은 선수들에게도 추 감독과 장영민 코치에게도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이 될지 모른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승부보다 강인한 인내심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 약속한 시간 안에도 해결을 하지 못한다면? 추 감독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로 '해산'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 이정우화 함께 쌍두마차를 이뤄왔던 최원진.
▲ 이승혁의 파이팅, 새로운 팀에서 계속되길 희망한다.
▲ 팀의 중심을 잡아왔던 뚝심의 한지민(오른쪽). 왼쪽은 해체가 아니라면 입단 예정이었던 주니어 챔피언 장우진이다.
▲ 왼손 셰이크핸더 김지환은 현재 상비군 신분이다.
▲ 작년 입단한 신예 김민주.
▲ 선수들은 스스로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활기찼던 벤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탁구인들의 지원과 협조 절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선수들의 굳건한 의지다. 지난 연말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도 멋진 플레이를 펼쳤다. 개인복식 우승(이정우-최원진), 개인단식 준우승(이정우) 등등 성과도 좋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직접적인 언급을 듣지 못했지만 이미 해체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선수들은 경기력으로 가치를 증명하는 길이 주어진 최선이었다. 해체에 당면한 지난달에도 주장을 맡아왔던 왼손 에이스 이정우는 "선수들이 스스로 가치를 높이려는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은 소속이 없지만 훈련만은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왼손 펜 홀더 최강자 이정우와 든든한 파트너 최원진, 꾸준히 차세대 주자로 거론돼왔던 한지민과 이승혁, 그리고 현역 국가상비군으로 장래가 유망한 김지환과 지난해 입단한 신예로 참신한 자극을 더하고 있는 김민주까지 가능성은 무한할 것으로 평가되는 선수들이다. 태릉에서, 또는 몇몇 실업팀에서 이름 없는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될 선수들에게 '고난의 날'이 길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추교성 감독과 장영민 코치의 갈증이 최소한 약속된 시간 안에 해갈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 하나였던 팀이 정말 공중분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탁구인들의 지원과 협조가 절실하다. 지금까지 탁구계는 유망했던 팀들이 사라지는 것을 늘 손 놓고 지켜보기만 했다. 숱한 금융팀들과 실업팀들을 그렇게 보냈다. 실업팀은 둘째치고 서울여상, 신진공고, 한국체대처럼 한국탁구 역사의 중요한 장을 차지했던 학생부 명문팀들조차 별다른 반대운동 한 번 없이 잃어버리기를 반복해왔다. 더욱이 실업팀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의 꿈이자 미래다. 실업팀이 무기력하게 사라지면 선수들의 희망도 그만큼 줄어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꿈'이 작아진 탁구계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남의 일이 아닌 탁구계 전체의 문제다. '농심'이란 팀은 끝내 해체됐지만 아직 '약속의 시간'이 남아있다.

글_한인수 |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4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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