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감자 VS 고구마

감자와 고구마는 매우 닮아 보인다. 땅속에서 자란다는 공통점에 비슷한 모양새 때문에 과거에는 이 두 작물을 혼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영어권에서 감자를 ‘포테이토(potato)’, 고구마를 ‘스위트 포테이토(sweet potato)’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두 작물이 얼마나 비슷한 취급을 받아왔는지 짐작할만하다. 

 

감자, 멸시받던 신대륙의 작물

▲ 흉하다고 생각했던 감자와는 달리 감자 꽃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감자는 쌀, 밀, 옥수수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작물이다. 원산지는 남미 안데스의 고산지대로 알려졌는데 약 7천 년 전부터 경작되기 시작했으며 인류가 재배하고 있는 작물 중 가장 적응력이 뛰어난 식물이기도 하다. 감자가 원산지인 남미를 벗어나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유럽이 신항로 개척에 한참 열을 올리던 16세기부터였다. 감자가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성서에도 없는 이 생소한 열매가 악마의 작물이라며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했다. 심지어 감자가 나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이렇게 식량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감자가 환영받은 곳은 뜻밖에도 귀족들의 정원이었다. 감자가 식용이 아닌 관상용으로 사랑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감자 꽃을 단추 사이에 꽂아 장식하곤 했고, 그의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감자 꽃을 머리 장식으로 사용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후 산업 혁명과 함께 급격히 인구가 증가하면서 감자는 부족한 식량을 대체할 수 있는 작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일찌감치 구황작물로서 감자의 가치를 알아보고 감자 재배를 강요하는 ‘감자칙령’을 내릴 정도로 보급에 널리 힘쓴 인물이다. 하지만 감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나라는 역시 아일랜드다. 아일랜드는 날씨가 춥고 습해 감자재배에 매우 적합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잉글랜드의 착취와 지역 갈등 속에서 극심한 식량난을 해결할 작물로 감자가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아침에도 감자, 점심에도 감자, 저녁에도 감자를 먹는다’는 아일랜드에 감자는 주식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그 때문에 1845년부터 1852년 사이에 일어난 ‘감자 대기근’ 때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유럽 전역에 감자 마름병이 돌아 감자 작황에 문제가 발생하자 감자를 주식으로 삼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굶주려 죽거나 이주를 감행했고, 결국 700만 명이었던 아일랜드 인구는 300만 명을 밑돌 정도로 줄어들었다.


고구마, 단맛으로 사랑받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대표적인 뿌리 작물로 15세기에 콜럼버스가 고구마를 스페인으로 가져오면서 감자보다 먼저 유럽에 알려졌다. 유럽에 처음 감자가 소개되었을 때와는 달리 고구마는 전파와 동시에 귀하게 여겨지며 귀족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았는데 아무 맛이 없고 밍밍하다고 생각된 감자에 비해 고구마는 유럽인들에게 인기 있는 단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춥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에 비해 재배가 까다롭다는 점 또한 고구마의 몸값을 뛰게 한 요인이었는데 당시 유럽에서는 달콤한 고구마로 만든 디저트가 부의 척도가 될 정도였다.

▲ 고구마는 단맛을 가지고 있어 간식용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고구마가 아시아에 전파된 것은 유럽 열강들의 식민 활동 중의 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각각 필리핀과 말레이 반도에 고구마를 전파했고 이것이 돌고 돌아 중국과 일본에서도 고구마를 접하게 되었다. 서늘한 유럽 대륙에서 잘 자라던 감자와는 달리 따뜻한 곳에서 재배하기 좋은 고구마는 아시아인에게 귀중한 식량이 되었다. 감자가 유럽을 살렸다면 고구마는 아시아를 살린 셈이다. 특히 식량문제가 항상 골칫거리였던 일본 대마도에 고구마가 전해진 것은 1715년이었는데 일본말로 ‘고오시마’라고 부르던 고구마를 대마도에서는 ‘고코이모(孝行藷)’라고 불렀다. ‘고코’는 ‘효행’, ‘이모’는 뿌리 열매를 총칭하는 말로 부모를 봉양한 고맙고 요긴한 뿌리 열매라는 뜻이 담겨 있다. 


감자와 고구마, 닮았지만 다른 두 작물

감자와 고구마는 둘 다 땅속에서 자라는 데다가 원산지와 전파 시기, 유입 경로 등이 비슷해서 사촌지간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완전히 다른 품종의 식물이다. 고구마는 메꽃과의 식물로 뿌리에 영양분이 축적되면서 크기가 커지는데 이를 ‘덩이뿌리’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감자는 가지과의 식물로 뿌리가 아닌 줄기가 비대해지는데 이를 ‘덩이줄기’라고 부른다. 우리가 먹는 고구마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뿌리의 일부분인 것이 맞지만 감자는 뿌리가 아닌 줄기의 일부분인 것이다. 그러므로 감자는 줄기의 일부분인 감자를 땅에 직접 심어서 재배하지만, 고구마는 싹을 틔워 재배한다. 주요 성분만 봐도 감자에는 전분이, 고구마에는 섬유질이 많이 들어 있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작물이다. 

우리나라에는 감자보다 고구마가 먼저 유입이 되었다. 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건너간 조엄이라는 인물이 대마도에 들렀다가 고구마 종자를 얻어와 부산과 제주도에서 시험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이것을 ‘감저(甘藷)’라고 불렀다. ‘단맛이 있는 마’라는 뜻이다. 이에 비해 1824년과 1925년 사이에 청나라 사람들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감자는 함경도 무산지방의 이현재라는 사람에 의해 보급되었다. 그는 감자의 가치를 알아보고 씨감자를 구해 널리 퍼트리기 위해 힘썼고 덕분에 불과 수십 년 만에 전국 각지에서 감자를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 
 

▲ 감자와 고구마는 가난한 사람들의 위장을 채워준 고마운 작물이다. 그림은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초창기에 감자는 고구마와 비슷한 모양새를 가진 데다가 북쪽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북감저’라고 불렸다. 감저라고 부르던 고구마는 ‘북감저’라는 감자의 이름에 맞춰 ‘남감저’로 불려 지다가 고구마의 일본 말인 ‘고오시마’가 변형되어 고구마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그리고 애초에 고구마를 일컫는 말이었던 ‘감저’는 이제 ‘북감저’, 즉 감자를 부르는 말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와 비슷한 일이 서양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고구마를 먼저 접한 유럽인들은 중남미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 그대로 ‘파타타(patata)’라고 불렀고 이 말이 ‘포테이토(potato)’로 변하게 되었다. 이후 유입된 감자는 고구마와 비슷했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 ‘하얀 포테이토(white potato)’라고 불렀지만 감자 보급이 고구마를 앞지르면서 감자가‘포테이토’라는 이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고구마는 ‘sweet’라는 보기만 해도 달콤한 형용사를 하나 더 얻게 되었으니 그리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감자와 고구마는 전혀 다른 성질의 작물이지만 가장 큰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다 해가 들지 않는 차가운 땅속에서 몸을 키워 인간들에게 제 살을 나누어주었고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감자와 고구마가 이제는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 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뿐이다. 

<월간탁구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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