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리에 방송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

얼마 전 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에서 노년 배우들의 해외 배낭 여행기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노년의 배우들이 전혀 낯선 나라와 상황을 만나 새로운 것을 느끼고 감탄하는 모슴을 보며 많은 이들이 감동하기 했고 또 어떤 이들은 '나도 저들처럼'이라는 생각에 여행을 계획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해외여행.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단어지만 그저 비행기를 타고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땅을 밟았다는 것만으로 진정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할 수 있을까? 현지인을 접할 기회도 없이 한국인끼리 몰려만 다니고, 한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에 가서 기념 촬영을 하고, 실컷 쇼핑을 즐기고 온 것만으로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내가 다녀온 여행은 목적지는 있되 목적은 없었던 의미 없는 여정은 아니었을까?

 

어디로 떠나 무엇을 할 것인가

지난 가을, 십여 년 만에 대만을 다시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십 년 전에도 한국 관광객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기는 했지만 이번에 방문한 대만은 말 그대로 한국인이 넘쳐나고 있었다. 재미있던 것은 많은 사람이 대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로 앞서 말한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고 싶은 대만 여행지로 TV 속에서 연예인들이 방문한 장소를 꼽았다. 그들이 먹고 감탄하던 망고 빙수를 먹어보고 싶고, 그들이 즐긴 노천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싶고, 그들이 방문했던 박물관에서 국보급 유물들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TV를 통해 대만이란 나라에 호기심을 갖고 여행까지 오게 된 것에 반가움을 느끼긴 했지만, 그 이상 관심이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행, 어디로 떠나갈까.

많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지 선택의 이유는 알고 보면 단순하다. 누군가의 추천, 남들이 많이 가는 장소, 매스 미디어의 소개 등이 그것이다. 사실 여행의 목적이 특정한 장소를 가기 위함이 아닐 때도 많다.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여행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찾아가는 장소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라면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될 것이 틀림없다. 프랑스 파리를 여행해도 모두가 그러하듯 에펠탑에 오르고,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쇼핑을 하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는 사람보다는 평소 제일 좋아했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묘가 있는 파리의 묘지공원을 가보고,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불어로 인쇄된 낡은 카뮈의 소설 한 권을 흥정해 본 사람에게 프랑스는 더 인상 깊게 남아있게 된다. 후자의 여행자가 가진 경험은 온전히 자신의 취향에 맞춘 자기만의 여행담으로 남아있게 되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 아니라도 좋다. 혹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생각의 폭을 조금만 넓혀보자. 당신이 좋아하는 것, 당신이 하고 싶은 것, 당신이 느끼고 싶은 것 등을 따라가다 보면 여행지 선택의 방향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

여행지를 결정하고 떠나기로 했어도 걱정거리는 많다. 특히 단체 여행을 갈 것인가, 자유 여행을 갈 것인가 하는 문제야말로 제일 큰 고민이 되기도 한다. ‘내가 20대라면 호기롭게 배낭여행에 도전이라도 해볼 텐데’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알고 보면 20대들도 배낭여행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럭저럭 쓸만한 외국어 구사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자신이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와 목적을 먼저 생각해보자

결론부터 말해서 자신만의 일정과 취향을 따라가는 여행을 원한다면 자유 여행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여행 중 날씨가 우중충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날의 오전 스케줄을 변경한다든가,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가 너무 멋있어서 하루 정도 묵고 가는 식의 탄력 있는 여행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하루 일정이 빈틈없이 정해져 있는 단체 여행은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이드가 숙소와 이동, 식사, 일정 등을 책임져주는 단체 여행은 여행자가 직접 나서 문제 해결에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큰 부담감 없이 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자유 여행은 세세한 것까지 여행자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결정해야 하는 만큼 여행을 즐기는 도중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단체 여행은 말 그대로 단체로 움직여야 하므로 개인적인 관심의 충족은 기대하기 힘들다. 매일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단체로 움직이다 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 반 고흐 미술관이 숙소 근처에 있어도 방문할 기회를 놓치고 마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자유 여행을 한다면 자신의 관심사를 충실하게 따라가는 여행이 가능하다. 평상시 놓치지 않고 TV로만 봐왔던 프리미어리거들의 축구 경기를 직접 관람한다든가, 유명하다는 도쿄의 라멘 집들을 모두 찾아가 본다든가 하는 식의 여행 말이다.

남에게 좋은 것이 꼭 내게도 좋은 것은 아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동남아의 휴양지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를 바라보며 해수욕을 즐기는 것이 누군가에겐 기쁨이 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지루함만 가져다 줄 수 있다. 대영박물관의 유물들을 구경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오랜 호기심의 충족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팔다리만 피곤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남들이 다 가는 뻔한 곳으로의 여행도 좋고 도무지 왜 그런 곳으로 가는지 남들이 이해 못 하는 오지로의 여행도 좋다. 중요한 것은 내게 여행이 어떤 의미인지, 이 여행을 통해 내가 진정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결론의 끝에서 떠나는 여행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원하던 꿈의 여행이 될 것이다.

 

글_서미순 (월간탁구 2014년 1월호 게재)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