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열전> 젓가락 VS 포크

 

우리는 오랫동안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인간에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먹이를 먹기 위해 나뭇가지나 지푸라기, 돌 등을 사용하는 동물의 모습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도구 사용이 인간에게만 국한된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일각에서 동물의 도구 사용은 먹이를 먹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류 최초의 도구 역시 사냥과 고기 손질을 위한 돌도끼였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도구 사용의 첫걸음은 생존, 그중에서도 식생활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현대 인간의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들은 돌도끼보다는 훨씬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젓가락 이야기
인류의 30% 정도가 매일 사용하는 젓가락은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도구다. 중국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또한, 초기의 젓가락은 음식을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을 써서 조리하는 과정에서 뜨거운 돌이나 음식을 옮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젓가락은 기원전 1,200년경에 은나라에서 만들어진 청동젓가락이다. 하지만 중국 전역에 걸쳐 젓가락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B.C 206~A.D220) 때였다. 부자들은 청동, 상아, 옥, 칠기 등으로 만들어진 젓가락을 썼고 서민들은 주로 나무로 만들어진 젓가락을 썼다. 절대 권력의 상징인 왕궁에서는 은으로 만들어진 젓가락을 사용했는데 이는 그저 사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은은 독약의 일종인 비소가 닿으면 까맣게 변하기 때문에 정적들에게서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는 최후의 방책이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젓가락은 약 1,800년 전부터, 일본에서는 1,500년 전부터 사용해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베트남, 태국 등에서도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한, 중, 일 세 나라가 젓가락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세 나라의 젓가락은 그 모양과 재질이 조금씩 다른데 이는 각 나라의 식생활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먼저 젓가락의 원산지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젓가락은 주로 나무로 만들어지며 길이가 긴 편이다. 커다란 탁자에 모여앉아 가운데 반찬을 놓고 각자의 밥그릇에 반찬을 덜어먹는 음식문화 때문에 중국의 젓가락은 길어야 한다. 게다가 기름에 볶거나 튀긴 음식이 많으므로 잘 미끄러지지 않는 끝이 뭉툭한 나무젓가락을 선호한다. 일본 역시 나무젓가락을 주로 사용하지만, 독상을 놓고 먹는 편인 데다가 접시나 그릇을 들고 먹는 습관 때문에 길이는 다소 짧은 편이다. 그리고 생선 가시를 쉽게 발라먹을 수 있도록 젓가락의 끝이 뾰족하다. 우리나라의 젓가락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 정도 길이를 가지고 있으며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다. 물기가 많고 다양한 발효장과 젓갈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음식을 먹을 때 나무젓가락을 사용하면 냄새나 색이 배기 쉬워 음식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얇은 김치나 깻잎, 콩과 같은 반찬들을 집어먹기 쉽도록 모양도 넓적한 편이다. 
 

 

포크 이야기
젓가락과 비교하면 포크의 역사는 매우 짧은 편이다. 알알이 흩어지는 밥과 반찬이 아닌 손으로 뜯어먹을 수 있는 빵과 고기가 주식이었던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식사용 도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기의 포크는 두 갈래로 갈라진 커다란 쇠꼬챙이와 같은 형태였고 초기의 젓가락이 그랬던 것처럼 요리할 때나 사용하는 도구였을 뿐이다. 포크가 식탁 위에 등장하기 전까지 주로 사용되던 식사용 도구는 고기나 빵을 자르던 칼과 묽은 죽을 먹기 위한 숟가락뿐이었다. 

최초의 식사용 포크를 사용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은 사람은 11세기 베네치아 총독과 결혼한 비잔틴 제국의 테오도라 공주라는 인물이다. 그러나 신의 은총인 음식을 신이 주신 손이 아닌 포크로 먹는다는 비난과 조롱에 시달려야했다. 그녀가 죽고 200년이 지난 후에도 테오도라 공주는 포크로 먹었기 때문에 흑사병에 걸려 죽었다고 회자될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식사용 포크가 등장하기 시작한 곳은 중세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 국수인 파스타 면의 등장이 포크 문화의 발달을 가속화시킨 것이다. 놀랍게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파스타와 포크를 발명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가 발명을 했다기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개량해서 먹고,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넓직한 빈대떡 형태의 파스타를 길게 늘여 오늘날과 같은 파스타 면을 만들고, 두 갈래밖에 없던 포크를 세 갈래 형태로 개량한 사람이 다 빈치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파스타 면은 다른 음식을 먹을 때처럼 손으로 먹기는 불편했고 포크야말로 그에 안성맞춤인 도구였다. 

 

이탈리아에서 포크는 일상적인 물건이 되어갔지만 1533년, 피렌체의 카트린 드 메디치가 프랑스의 앙리 2세와 결혼할 때만해도 포크는 유럽 전역에서 생소한 물건이었다. 그녀가 혼수로 챙겨간 식사용 포크는 웃음거리가 되곤 했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초반에 이탈리아를 여행한 코리에이트라는 영국인은 포크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고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에야 유럽 전역에서 포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19세기 초반만 해도 여전히 나이프와 숟가락이 포크보다 더 많이 팔렸지만 그래도 결국 포크는 서양 식탁의 대세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른 문화 받아들이기
젓가락을 사용하는 동양인과 포크를 사용하는 서양인들이 서로 상대방의 식탁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저급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젓가락을 본 서양인들은 뜨개질 바늘을 들고 있는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고, 포크를 본 동양인들은 함께 상에 오른 나이프와 숟가락까지 싸잡아 밥 한 끼 먹는 데 필요한 도구가 너무 많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포크는 그 편리함으로 인해 전 세계 어디에서나 거부감 없이 사용하는 식사 도구가 되었고, 서양인들 사이에서 젓가락질의 가능 여부는 상식과 교양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익숙한 문화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내가 속한 문화가 곧 상식이고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릴 때 비로소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저 젓가락과 포크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월간탁구 2015년 7월호>

저작권자 © 더 핑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