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저우 세계선수권 베스트랠리 10선에 등장한 미즈타니 ‘통곡의 로빙벽’

국제탁구연맹(ITTF)이 쑤저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수놓은 수많은 랠리들 중에서 최고의 10선을 뽑아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했다. 전 세계의 탁구스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펼친 묘기의 향연이다.

세계 탁구의 절대 1강 중국의 강호들이 보여준 묘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한 가운데 한국 팬들의 시선을 잡아끌만한 랠리는 10위로 선정된 정영식(KDB대우증권)과 일본 에이스 미즈타니 준의 경기다. 동영상 맨 처음에 나오는 이 랠리에서 정영식은 무려 스무 번이 넘는 드라이브를 퍼붓지만 미즈타니 준의 끈질긴 로빙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실점하고 만다.
 

▲ 국제탁구연맹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한 쑤저우 세계선수권대회 베스트 랠리 10선.

실제로 정영식은 풀게임 접전을 펼친 이 경기에서 마지막 7게임 매치포인트(+3)를 먼저 잡고도 통한의 역전을 허용하는 굴욕을 당했다. 동영상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 정영식의 무차별 공격이 미즈타니의 끈질긴 로빙을 뚫지 못했다. 이 패배로 정영식은 코앞에 있던 남자단식 16강전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한층 강화된 공격력을 앞세워 상승세를 타고 있던 정영식이었기에 미즈타니와의 남자단식 32강전은 다시 곱씹고 곱씹어 봐도 아쉬운 경기였다. 경기 후 정영식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넋이 나간 표정도 감추기 어려웠다.
 

▲ (쑤저우=안성호 기자) 쑤저우에서 활약한 정영식. 남자단식 32강전에서 미즈타니 준에 아깝게 패했다.

하지만 정영식이 누군가. 그는 국내 최고 ‘성실함의 대명사’다. 이왕에 지나간 경기는 지나간 경기로 떨쳐내고 다시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ITTF가 게재한 이 동영상은 내년 리우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는 정영식에게는 분발을 촉구하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한 후일담 하나! 미즈타니 준은 일본 최고의 탁구스타다. 일본 내에서는 다양한 제품의 광고모델로도 활동할 정도다. 대회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일본 취재진이 저녁을 거른 본지 기자들에게 즉석요리 식품 하나를 선물했다. 한국의 ‘3분 카레’ 비슷한 거였는데, 포장지에는 뜻밖에도 미즈타니 준이 모델로 등장해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미즈타니 준이 모델로 등장한 일본의 즉석요리. 정영식은 ‘와신상담’ 중이다.

물론 취재진은 그날 밤 이 제품을 먹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 귀국 공항에서 정영식에게 전해줬다. 시간도 없었거니와, 일본 기자들의 선의에는 조금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러는 편이 나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얄미웠을 미즈타니의 미소를 받아든 정영식의 반응은 어땠을까? 정영식은 포장을 책상 앞에 붙여놓고 다시 만날 때까지 ‘와신상담’하겠다며 웃었다.

미즈타니와 정영식은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미즈타니 뿐만 아니라 이번 세계대회에서 만났던 모든 상대들은 다음 국제무대에서 필연코 다시 부딪칠 라이벌들이다. 한 경기로 끝이 아니다. 이겼으면 이긴 대로 패했으면 패한 대로 쑤저우에서 치른 경기들을 복기하고 향후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하는 과제가 지금 우리 선수들에게 주어져 있다.

책상 앞에서 내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미즈타니 준의 미소가 정영식에게 정말이지 아주 특별한 자극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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