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좋아하는 열아홉 살 탁구소녀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제21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출전한 올가 킴은 3일 하루 동안 꿈만 같은 시간을 보냈다. 팀 동료 조키드 켄자예프와 함께 짝을 이뤄 출전한 혼합복식 32강전에서 한국의 서현덕-석하정 조를 이겼다. 세계 정상급 강호들을 상대하면서도 기죽지 않고 야무진 플레이를 펼쳐 보였다. 수비전형 올가의 커트를 세계랭킹만으로도 500위 가까운 차이가 나는 한국 선수들이 제대로 대응해내지 못했다. 비록 이어진 16강전에서는 태국의 차이탯-콤웡 조에 아깝게 패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을 만들었다.

▲ (부산=안성호 기자)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출전한 고려인 3세 올가 킴.

  혼합복식에서 달아오른 기세는 개인단식으로도 이어졌다. 오후에 치러진 여자단식에서 올가는 이란의 네다를 4대 3으로 꺾었다. 2대 3으로 뒤지던 경기를 뒤집은 대역전승이었다. 네다의 묵직한 드라이브를 끈질긴 커트로 이겨냈다. 이란의 네다는 지난해 런던올림픽으로 가는 길을 막았던 라이벌.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올가는 바로 네다에게 패해 아깝게 런던행이 좌절됐었다. 이번 대회에서 멋진 설욕전을 펼친 셈이다.

▲ (부산=안성호 기자) 혼합복식과 개인단식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고 있는 올가 킴이다.

  올가 킴은 한국계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한국 사람으로 우즈벡으로 이주했다. 고려인 2세인 아빠와 카자흐스탄 태생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말하자면 고려인 3세다. 그 때문인지 올가는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 K-POP과 드라마 등등 다양한 한국 문화도 자주 즐긴다고 한다. 올가는 특히 걸그룹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열아홉 살 탁구소녀.

  탁구는 여섯 살에 시작했다. 유도선수 출신인 아버지(로버트 김)가 우연히 탁구클럽으로 데려간 게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공격형이었다가 수비전형으로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탁구로도 한국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3년 전 한국에서 약 두 달 동안 전지훈련을 한 경험이 있다. 서울 명지고와 장충초등학교 등에서 한국의 탁구기술을 습득했다. 좀 더 어릴 때 바로 잡은 기본기가 이번 대회에서의 맹활약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국 선수 중에서는 자신과 같은 전형을 구사하는 주세혁을 좋아한단다.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한국 선수들을 상대로 일으킨 이변이 좀 미안하기는 했지만 치열했던 풀게임 접전을 승리로 끝내는 순간 너무 너무 기뻤다고 웃었다.

▲ (부산=안성호 기자) 자매결연을 맺은 부산시청의 직원들이 경기장에 나와 열렬한 응원전으로 힘을 더했다.

  올가는 욕심이 많다. 국제대회에 자주 출전하지 못한 탓에 세계랭킹은 524위에 불과하지만 좀 더 실력을 끌어올려서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올림픽에도 출전해 금메달에 도전해보는 것이 꿈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쉽지는 않겠지만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당당히 밝힐 정도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지만 또박 또박 꿈을 다지는 이 선수의 웃음이 밉지 않다. 하긴, 아직 10대로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이 선수가 또 무슨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다. 경기를 지켜본 탁구인들도 “조금 높은 커트를 더 다듬어야 하겠지만 무한한 성장가능성이 있는 선수”라고 평했다. 탁구로는 아직 변방이지만 우즈베키스탄이 이 고려인 3세 선수를 중심으로 아시아권 강자로 떠오를 지도 모른다.

  “부산시청에서 오신 응원단이 뜻밖의 응원을 해주셔서 많은 힘이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더욱 좋은 성적을 내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힘을 주세요.”

▲ (부산=안성호 기자) 이겼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올가 킴. 그녀는 4일 오후 3시 15분, 혼합복식에서 자신의 희생양이 된 한국의 석하정을 상대로 여자 개인단식 64강전에서 다시 한 번 이변에 도전한다. 또 이기기는 쉽지 않을지 모르지만 결코 힘없이 물러나지는 않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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