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파리세탁 혼합복식 은메달 이상수(삼성생명)-박영숙(KRA한국마사회)

파리 세계탁구선수권대회는 한국탁구가 세대교체 후 첫 출전한 메이저대회였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던 대회였다. 이상수-박영숙 조가 획득한 은메달은 그런 부분에서의 숱한 우려들을 해소시켜줬다는 점에서도 소중한 성과였다. 대회 일정을 마친 뒤 파리 현지에서 귀국을 준비하고 있던 은메달 주인공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11포인트로 정리해본다.

1. 우선 축하한다.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던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소감을 먼저!

박 :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 처음에는 정말 기뻤다. 하지만 조금 지나고 보니 그만큼 더 많은 기대를 받게 됐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감도 그 이상으로 생기고 있다. 지금은 빨리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음을 냉정하게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

이 : 은메달도 큰 거지만 결승전에서 너무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많다. 이렇게 말해선 안 되는 건가? 솔직하게 말해서 기자회견 때도 시상식 때도 그런 생각 때문에 기쁨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2. 둘이 호흡 맞춘 것은 처음인데 첫 느낌은 어땠나? 혹 이런 성적을 예상했는지?

박 : 처음엔 사실 좀 부담스러웠다. 기술적인 면을 떠나 상수가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라 내가 보조를 맞출 수 있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연습 시작하면서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상수가 리드를 정말 잘해줬다. 혼복에서 차지하는 남자선수 몫 그 이상으로 배려심도 뛰어났다. 파트너 기를 살리는데 자기 열정을 많이 쏟아 부었다고 할까? 덕분에 나도 마음 놓고 내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좋은 예감을 갖고 이번 대회를 치른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잘해 보이고 싶었다. 복식에는 나름 자신감도 있었고 뭔가 해내고 싶다는 욕심도 분명 있었다. 둘이 상의하면서 열심히 연습했던 게 기대보다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아서 좋다.

이 : 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이전부터 서로 친했고, 둘 다 공격적인 스타일이어서 기술적으로도 잘 맞았다. 그래서 열심히만 하면 어떤 상대를 만나도 승산이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연습 때부터도 아주 잘 맞았다. 우리 스타일은 누구한테나 이길 수도 있고 누구한테나 질 수도 있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따라서 장점으로 살리려면 심리적인 부분에서의 뒷받침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리고 영숙이 누나는 세 번째지만 나는 이번 세계대회가 첫 출전이었다. 복식에서 경험 부족으로 파트너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개인적으로 많이 노력했다. 잘 올라가놓고 마지막 결승전에서 바로 그런 부분을 놓친 탓에 패한 것이 그래서 더 아깝고 아쉽다. 영식(정, KDB대우증권)이와 함께 뛴 남자복식도 마찬가지다.

3. 중국과의 준결승전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차이나’를 이겼을 때의 기분도 듣고 싶다.

박 : 경기 전부터 긴장은 많이 되지 않았다. 중국이 앞선 경기에서 터키에게 4대 3까지 간 것을 보고는 해 볼 만하겠다는 자신감이 오히려 더 많았다. 아무리 중국이지만 단식과 복식은 다르다. 왕리친도 이미 예전의 왕리친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혼합복식은 여자가 같이 하니까 파트너를 믿고 내 할 몫만 잘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사실 중국이랑 시합할 때 긴장을 지나치게 하지는 않는 편이다(박영숙은 실제로 2009년 대회 단식에서 중국의 야오얀을, 2011년 대회 복식에서는 이은희와 함께 중국의 펑야란-무지 조를 이긴 경험이 있다. 중국킬러?). 그저 싸워야 하는 상대라고 생각하고 해야 내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이 : 처음부터 이기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중국도 국제무대에 많이 나오지 않은 여자선수가 같이 뛰니까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하자는 작전으로 들어갔다. 라오징웬이 핌플러버를 많이 사용하는데 긴 서비스로 리턴을 흔들어서 적극적으로 공격하자는 작전이었다. 여자를 흔들면 왕리친도 무리해서 실수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우리 스타일이 둘 다 공격적이어서 가능했던 작전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먹힌 셈이다. 기분? 이겨서 무조건 좋았다.

4. 결승전 얘기를 해보자. 북한 선수들과 싸울 때는 어땠나? 기자회견도 같이 하고 시상대에도 같이 올랐는데 인간적인 느낌도 들어보고 싶다.

박 : 이전까지 경기들은 빠른 박자에서 남자가 치고 들어오는데 북한의 시스템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와 고백하자면 결승 시작 전에 이상하리만큼 승부욕이 강하게 들지가 않았다. 그냥 선수 대 선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남북의 시합을 워낙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주변 분위기 탓에 좀 예민해졌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그쪽은 오랫동안 같이 뛴 조고 우리는 이제 막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이기면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어쨌든 그런 저런 이유로 혼란한 상태에서 ‘어~어’ 하다가 게임차가 순식간에 벌어져 버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려봤지만 결국 졌다. 심리적으로 투철하지 못했던 점이 상수에게 미안하다. 기자회견 때 정이가 울었다. 언어가 들리고 떨림이 느껴져서 같이 울컥했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나면 이길 것이다. 이길 자신이 있다.

이 : 결승에서 진 것은 욕심이 앞섰던 내 탓이다. 대개 혼복은 남자가 결정짓는 경우가 많은데 북한은 반대 시스템이었다. 혁봉 형이 만들어주고 김정 선수가 끝내는 스타일에 좀 당황했다. 반대로 내가 걸어서 끝내야 할 찬스에서 김정 선수의 블로킹이 자주 넘어왔다. 그러다보니 공격에 힘이 들어갔고 오버미스가 많아졌다. 우리는 둘 다 결정력을 갖고 있는데 가볍게 연결하면서 랠리를 이어갔으면 다른 결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미련이 남는다. 남북대결, 남북대결 하지만 나는 시합은 시합이니까 그런 느낌 배제하고 뛰려고 노력했다. 시상식 하고 기자회견 하고 그러면서 말이 통하는 같은 민족이라는 실감이 나더라. 하지만 어차피 스포츠는 승부다. 이번엔 졌으니 다른 기회가 있다면 이기기 위해 노력해야지.

5. 단식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는데 그런 관점에서 대회를 치른 소감은 어떤가?

이 : 단식보다 복식에 치중해서 연습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변명에 불과하다는 걸 안다. 게다가 64강전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타이완 창훙치)에게 패했다. 연습대로 플레이를 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 너무 아쉽다. 처음 출전한 세계대회라는 긴장감과 압박감이 둘이 뛰는 복식에 비해 훨씬 심했다.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다보니 범실도 많았고 작전대로 경기를 풀어가지도 못했다. 아시안게임도 있고 올림픽도 있는데 이런 경험을 미리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차후 그런 시합에 나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할 것이다. 세계대회 같은 큰 대회는 연습 때의 마인드컨트롤을 좀 더 과장해서 그려보고 적응하는 연습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 : 나 같은 경우는 개인전 세계대회가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2회전에서 중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강자들을 만났다. 랭킹을 끌어올리지 못한 탓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이번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고, 64강 상대였던 중국의 주율링은 신예였지만 빈틈을 별로 찾을 수 없었다. 아쉽긴 했지만 단식에서 일찍 떨어지면서 집중력을 갖고 남은 복식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합을 너무 일찍 포기했던 것은 분명 실수였다. 다음엔 단식에서도 더욱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6. 단식의 관점에서 기술적으로 느껴지는 ‘세계의 벽’ 같은 것이 있었나?

이 : 정교한 서브와 리시브를 다듬어야 할 필요는 항상 느낀다. 다른 기술들도 분명 보완할 점이 있지만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코스를 선택하고 공격 타이밍을 조절하는 등의 경기운영능력 만큼은 확실히 미숙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똑같은 패턴으로 싸우는데 상대는 내 약점을 간파해서 파고드니까 스코어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기술의 구사능력은 우리 선수들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중요한 것은 멘탈이다. 체력, 집중력, 여러 기술 훈련도 게을리 해선 안 되겠지만 심리적으로 밀리지 않을 수 있는 운영능력에 대한 연구도 병행해야 할 것 같다. 반드시 경험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박 :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권 강자들은 서브 넣고 혹은 리시브 하고 다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확실히 알고 경기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더 빨라지고 더 강해졌다. 반면 우리는 초구 준비가 늦는다는 단점이 있다. 연결이 되더라도 포어, 쇼트 늘 같은 패턴의 플레이만 한다. 상대들은 전후좌우 어느 코스에서건 자기 힘으로 잡아채서 득점으로 연결하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상대 실수만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3, 5구 혹은 2, 4구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상대 실수가 아니라 내 힘으로 득점할 수 있는….

7. 대표팀 세대교체 후 첫 메이저 도전이었다. 선배들의 공백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나?

이 : 분위기는 아주 의욕적이었다. 형들 없이 나가는 첫 대회고 직전 월드 팀 클래식에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좀 잘해보자 하는 의지들이 있었다. 힘든 체력운동과 랠리연습도 다들 서로 격려해가면서 잘해냈다. 각자 개인적으로 연구도 많이 했다. 의욕적인 준비과정에 비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은 아쉽다. 아까도 말했지만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심리적 문제도 있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형들의 빈자리가 분명 있었다. 이번에 좋은 경험을 했으니 이 분위기 그대로 밀고 간다면 다음부터는 훨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박 : 언니들이 없어서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언니들은 항상 어떤 식으로든 입상을 해왔는데 이번 대회는 후배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큰 시험 같은 느낌이었다. 선배들에게 쏠리던 시선이 우리에게 와있다는 부담감이 작지 않았다. 이전에는 그저 내 거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대회는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다들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했다. 효원(서, KRA한국마사회) 언니나 하정(석, 대한항공) 언니가 있었고 나는 중간쯤에 있었지만 작지 않은 책임감까지 갖고 뛰어야 했다. 언니들 공백은 그런 부분에서 작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고, 이번 대회는 좋은 경험이 됐다고 생각한다.

8. 정리를 좀 해보자. 이번 세계대회가 ‘나’에게 남긴 것은?

이 :  첫 번째 도전한 메이저대회였고 그만큼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많았다. 기술적인 보완점도 보완점이지만 심리적 부분에서의 도전의식과 경기운영 면에서의 멘탈에 관해 와 닿는 것들이 많았다. 막상 부딪쳐보니까 세계무대의 벽은 높았다. 하지만 넘지 못할 벽도 아니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도 됐다. 그런 모든 걸 토대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박 : 나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선배들에게 의지해왔던 후배 선수들이 힘들었지만 값진 경험을 한 대회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많은 걸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대교체라는 말은 결국 후배들이 자기들만의 힘으로 뭔가 해낼 수 있을 때 완성되는 거다. 우리가 거둔 성적이 그래서 더 보람되는 것도 사실이다. 더 잘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번 세계대회가 ‘나’에게 또는 ‘우리’에개 남겨준 것은 ‘자신감’인 것 같다.

9. 한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이 :  이렇게 말하면 또 뭐라고 하실 텐데…. (웃음) 빨리 돌아가서 연습하고 싶다. 이번에 배운 것을 내 걸로 만들고 싶다.

박 : 누나로서 충고한다. 쉴 때는 좀 쉴 줄도 알고 시작해야 능률도 오르는 거다. 너무 열심히 해도 탈이다. (웃음) 나는 얼른 돌아가서 떡볶이를 좀 먹었으면 좋겠다. (또 웃음)

10. 다음 일정, 이어질 다음 도전은 무엇인가?

이/박 : 사실 시합이 너무 많아서 긴 목표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훈련하고 연습하는 것의 연속이다. 당장 돌아가면 아산에서 실업대회가 있고, 6월 말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도 있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나가려면 선발전을 또 거쳐야 한다. 우선은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에 경험한 세계무대의 강호들과 다시 한 번 겨뤄보고 싶다. 그런 뒤에는 아마도 내년의 아시안게임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되지 않을까.

11. 팬들도 국내에서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보내줬다. 끝으로 인사 한 마디!

이 : 많은 응원에 감사드린다. 결승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인 것이 그래서 더 죄송스럽다. 이번 대회의 경험을 약으로 삼고 좀 더 철저히 연습해서 다음에는 은색이 아니라 황금색 메달을 딸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계속 응원해주십시오.

박 : 팬 분들이 선수들보다 더 세대교체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해주신다. 이번 대회를 통해 그런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로 고맙고 감사하다. 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감사합니다.

글_한인수 | 사진_안성호

(월간탁구 201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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