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호계체육관에서 선배들과 훈련 삼매경

KDB대우증권 탁구단은 기업팀들 중에서 삼성생명과 함께 남녀팀을 함께 운영하는 유이한 구단이다. 연습장인 경기도 안양 호계체육관을 가보면 언제나 넓은 플로어의 반을 나누고(반은 생활체육 동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쓰인다), 그 반을 다시 반으로 나눠 남녀 선수들이 각각의 코트에서 굵은 땀을 흘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KDB대우증권 탁구단은 최근 국내 탁구계에서 가장 ‘핫’한 구단이다. 지난해 말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남자팀은 개인단식 우승(정영식), 단체전 준우승 등 풍성한 수확을 했고, 여자팀도 단체전 결승에서 최강팀 대한항공에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었다. 지난달 끝난 국가상비군 선발전에서는 남녀팀 모두 가장 많은 4명씩의 선수들이 상비1군에 선발됐다.

오상은, 윤재영, 정영식, 서정화, 최덕화, 천민혁, 장우진 등등이 신구조화를 이루고 있는 남자팀의 선전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눈부신 약진으로 남녀 균형을 맞춘 여자팀의 활약은 특히 두드러졌다. ‘돌풍의 새내기 듀오’ 이시온과 이슬을 영입한 여자팀은 기존 주전들인 황지나, 송마음, 이수진 등이 동반 상승하면서 눈에 띄는 성과를 이뤄냈다. 올해 초에는 삼성생명에서 활약했던 국가대표 출신 노장 문현정까지 영입하며 더욱 안정된 전력을 꾀할 수 있는 퍼즐도 맞췄다. 대우의 돌풍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 대우증권 여자탁구단이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과시하고 있다. 지난 종합선수권대회 우승의 순간. 월간탁구DB(ⓒ안성호).

게다가 대우증권 여자팀에는 최근 또 하나의 플러스 요인이 생겼다. 출전규제가 풀린 막내 윤효빈이다. 윤효빈에게 국내외 대회 3년간 출전 금지라는 극약 처방을 내렸던 대한탁구협회는 지난달 정기총회를 앞두고 개최한 이사회에서 윤효빈의 출전규제를 조기에 해제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1년 동안 해외는 물론 국내 어떤 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었던 윤효빈에게 마침내 도전의 기회가 허락된 것이다.

지난해 안양여자중학교를 졸업한 윤효빈은 고등학교 입학 대신 실업 입단을 선택하면서 파문에 가까운 화제를 모았던 장본인이다. 그 선택은 어린 선수들의 학업 지속과 탁구계 시스템 질서 유지, 진로 선택의 자유와 빠른 성장을 위한 도전 등등 다양한 의견들의 충돌을 야기했다. 급기야 대한탁구협회는 윤효빈의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고, 소속팀 대우증권과 갈등을 빚었다. 대탁은 차후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정식으로 명문화했으나, 소급 적용의 부당성과 3년이라는 과한 징계에 항의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오른손 셰이크핸드 드라이브형인 윤효빈은 뛰어난 기량으로 해당 연령대를 평정하며 한국탁구 미래의 주역으로 꼽혀온 유망주다. 국정교과서에서 은퇴한 엘리트경기인 출신 윤기영 안양여고 감독의 딸로도 유명하다. 조기 입단을 선택한 윤효빈을 받아들인 김택수 대우증권 총감독은 학교에서의 수업에 버금가는 육성체계를 도입하여 선진형 클럽 시스템의 전례를 세워보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었다. 이에 동조하는 많은 팬들이 모임을 만들어 규제조치를 풀어달라는 청원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온 것도 잘 알려져 있는 일이다.
 

▲ (안양=안성호 기자) 마침내 도전의 기회가 허락됐다. 호계체육관에서 훈련 중인 윤효빈.

결국 대한탁구협회의 결정은 다양한 시선들을 폭넓게 수용한 일종의 ‘용단’이 된 셈이다. 원인과 과정의 시시비비를 떠나 어린 유망주의 앞길을 더 이상 막아서는 안 된다는 명분을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규정을 통해 차후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을 예방할 체계를 갖춘 것도 결단의 바탕이 됐다. 최초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중학교 졸업 후 실업팀 직행’의 주인공이 된 윤효빈은 ‘탁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최근 가장 뜨거운 팀 KDB대우증권 여자탁구단에서.

이제 윤효빈의 ‘성장의 열쇠’는 대우증권 탁구단으로 넘어왔다. 인성교육과 운동을 병행해서 세계적인 클럽을 만들겠다는 꿈을 본격적인 실천으로 옮겨야 할 때다. 대탁을 향해 있던 시선들은 이제 올곧이 대우증권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김택수 감독은 “우리 팀은 매주 스포츠심리학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영어교육과 사회에 필요한 인성 교육 등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병행 운영하고 있다. 가능성 있는 유망주가 제대로 커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1년은 윤효빈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시합에는 출전하지 못했으나 실업 선배들과 함께 꾸준히 훈련해온 윤효빈은 대탁의 규제조치가 풀린 것에 대해 우선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배워야지 하는 마음만 있었지만 시합을 나가지 못하면서 감도 잃고 점점 기량이 처지는 듯한 느낌 때문에 힘들었다. 하지만 후회를 했던 것은 아니다. 선배들에게 많은 걸 배웠다. 이제 뛸 수 있게 된 만큼 못한 시간까지 더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당당히 밝혔다.
 

▲ (안양=안성호 기자) 오는 4월 종별대회에서 실업무대 첫 도전에 나서게 될 윤효빈이다. 조심스럽게 개인전 4강의 목표를 밝혔다.

사실 ‘되는’ 팀은 ‘된’다. 윤효빈 스스로는 처지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으나 지난 1년간 기술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다는 것이 대우증권 코칭스태프의 판단이다. 실제로도 팀 내 연습경기에서 올해 상비군 선수들을 상대로도 적지 않은 승률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정신적인 아픔 속에서도 어느새 키가 167cm까지 자랐을 정도로 신체적인 성장 역시 멈추지 않았다. 약점이었던 파워가 눈에 띄게 보강됐다. 어쩌면 윤효빈은 ‘핫’한 구단 대우의 또 다른 비밀병기가 될지 모른다. 남들보다 일찍 겪은 정신적 상처가 ‘비 온 뒤 굳은 땅’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 말이다.

윤효빈은 현재 경기도 안양 호계체육관에서 훈련하고 있다. 가파른 성장세를 과시하고 있는 KDB대우증권 탁구단 선배들 틈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 출전제한이 풀리면서 마침내 날개도 달았다. 어린 실업선수 윤효빈이 첫 번째로 도전할 실업무대는 오는 4월 전주에서 치러질 제61회 전국남녀 종별탁구선수권대회다. 지난 시간 동안 함께 아파했던 팬들의 관심도 전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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